제 입맛의 뿌리는 경상도 남쪽 바다 근처에 닿아 있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 속 식탁에는 늘 짭조름한 김치와 눅진한 젓갈류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소금에 절이고 삭힌 것들은 제게 '음식'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그것은 고향의 공기였고, 매일의 안녕을 확인하는 익숙한 루틴이었습니다.
심지어 입가심으로 찾는 간식마저도 달콤한 것보다는 혀끝을 톡 쏘는 짠 것들을 선호했습니다. 짭짤한 과자 한 봉지를 비워야 비로소 하루의 허기가 채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마흔이 넘은 지금도 저의 소울푸드는 단연 김치찌개입니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구울 때면 습관적으로 소금이나 새우젓을 듬뿍 찍습니다. 그래야 고기 본연의 맛이 살아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충직했던 혀와 달리, 정직한 제 몸은 더 이상 그 짠맛을 반기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습니다.
매년 받는 건강검진 결과표에서 혈압 수치는 미세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나이가 들면 으레 생기는 거겠지', '회사 선배들도 다 혈압약 한 알씩은 먹던데'라며 애써 무시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는 검진 센터에서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혔습니다. 혈압이 높게 나와 수차례 반복 측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보통 두어 번 다시 재면 정상 범위로 내려오곤 했는데, 그날은 이상했습니다. 재면 잴수록 수치는 야속하게 올라갔습니다. 결국 처음 측정했던 '약간 높은 수치'에 만족해야 했지만, 마음 한구석엔 서늘한 예감이 스쳤습니다. 다음번에 재면 더 높게 나올 것만 같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결국 AI 검색창에 떨리는 손으로 물었습니다. "고혈압이 걱정되는데, 혈압을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 해?"
화면 가득 쏟아진 답변의 핵심은 차갑고 명확했습니다. '식단 관리'. 나트륨 섭취를 대폭 줄이고 바나나, 시금치, 부추 같은 칼륨 식품을 늘릴 것. 그리고 흰쌀밥 대신 거친 현미나 잡곡밥을 먹을 것. 하나같이 평생을 지켜온 저의 식습관과는 정반대의 길이었습니다.
문제를 인식한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단순히 며칠 참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평생을 걸쳐 지켜온 취향과의 이별이자, 남은 생을 위한 강제적인 숙제였습니다. 짠 것을 그토록 사랑하는 저로서는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둘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답답하고 억울하기까지 했습니다.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싱겁게 끓이고, 입에 착 달라붙던 소금기 가득한 과자 봉지를 내려놓는 일. 현미의 까끌한 식감에 익숙해지는 과정은 분명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제 저만의 '싱거운 즐거움'을 찾아보려 합니다. 짜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는 식재료 본연의 풍미를 탐색하고, 잡곡밥의 고소함을 음미하는 법을 배워야겠습니다. 살기 위해서 시작한 숙제지만, 이왕이면 이 고요한 식탁의 변화를 즐겨보고 싶습니다.
마흔, 이제는 혀의 즐거움보다 몸의 평안을 먼저 살펴야 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조금은 싱겁고 투박할지 몰라도, 더 오래 건강하게 걷기 위한 저만의 새로운 방식을 찾아 나섭니다. 힘들겠지만, 기꺼이 즐겨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