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직후 졸업생의 심야다이어리
2022년 8월의 마지막 주다. 졸업식이 있었던 주다. 근 한 달 내로 기숙사도 나가야 하고, 자취집을 구하고 이사를 하는 와중에 취업의 길도 뚫어야 한다. 오늘은 기숙사 관리사무소에 퇴거 신청서를 내고 왔더니 새로운 자취집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과 부담에 아주 조금은 귀차니즘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번주에 부동산 두 곳과 접선하여 어디라도 집을 구하면 되겠지. 이번 학기부터는 비대면이 아닌, 대체로 대면 형식의 수업들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지금 이 시점에서 집을 구한다는 것은 퀄리티 좋은 상태의 집은 기대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이미 개강을 한 후에 집을 구하는 것이라서 별로, 특별히 내가 원하는 상태의 집을 구할 것이라는 높은 기대는 접어두었다.
기숙사 퇴거일이 9월 말이다 보니 10월에 입주해야 한다. 미리 준비하는 타입인 나는 지난 달인 8월에 부동산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집주인들이 한 달의 공백을 꺼려하기에 9월 초에 다시 연락을 달라는 게 부동산 측의 설명이었다. 뭐, 이해는 한다. 어쩔 수 없지. 집주인 입장도 이해가 가고, 성격상 깔끔한 상태의 자취방을 구하고 싶지만 뜻대로 안 되는 일들이 있는 법이니까. 비싸지만 말아라.
졸업하기 전부터 졸업논문을 완성하자마자 취업시장에 뛰어들었다. 연구직을 희망했기 때문에 공고가 난 관련분야의 A연구원에 지원했다. 문제는 전공과 관련이 있기는 했지만, 큰 관련은 없었고 공고가 난 포지션은 내 관심사도 전공도 아닌 부서였다. 지원서를 쓸 때, 관심을 쥐어 짜내서 어떻게든 드러내긴 했다. 다만, 배우지 않았고 자주 접하지 않았던 분야를 배웠다고 거짓되게 작성할 수 없어서 솔직하게 적은 게 패인이었을까.. A연구원은 서류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A연구원은 1차 서류심사, 2차 발표면접, 3차 심층면접으로 채용과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설사 서류심사에 붙었더라고 하더라도 발표면접과 심층면접을 준비하느라 녹초가 될 게 눈에 보였다. 특히, 내가 관심을 두고 연구해 온 분야가 절대 아니었기 때문에 면접에서 나의 부족함이 크게 부각될 위험부담도 너무나도 컸다. 즉 자신감으로 어필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이를 고려한다면, 나는 서류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사실에 감사를 표해야 할 판이었다.
실제로도 서류불합격 안내를 받자마자 1시간도 되지 않아서 행복하기까지 했다. 내가 넘보지 못할 나무라고 비유해도 부족함이 없었달까. 물론 석사과정 이후 지원하는 첫 번째 취업시도였기에 가슴 한 편에서 쓰라림을 조금 느끼기는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나에게도, A연구원에게도 잘 된 일이다.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A연구원에 지원했었고, 이어서 B연구원에도 지원했다. A연구원은 정규직 석사급 연구원을 뽑는 공고라면 B연구원은 비정규직 석사급 연구원을 뽑은 공고를 냈다. 더구나 B연구원은 내 전공과도 특출 나게 부합하는 분야를 다루고 있었다. 부담이 덜했다. 아직 B연구원의 서류심사 결과는 업로드되지 않았다. 안내문에는 이번주 내로 홈페이지에 올려준다고 했는데, 오늘이 월요일인데도 안 올라오는 거라면 화-금 중 업로드가 될 때까지 조마조마하며 지내지 않을까.
지금도 긴장되고 불안하다.
불안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던 때가 있었느냐 만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 자란 나는 늘 돈에 고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간 20살 때부터 나와 다른 이들과의 격차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며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번다는 행위가 나에게 우선순위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그런 내가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선택한 학문의 길이 나를 배곯게 하도록 만들고 싶지 않다. 이 길이 힘들어진다면, 나는 결국 나만을 위해서 돈을 벌게 될 것 같아서다.
20대 초반부터 말도 안 되는 경제적 제약을 나 스스로에게 부과하며 돈에 억눌린 삶을 몇 년간 유지하며 살았고, 20대 후반이 되어서는 연애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면서는 상대를 위해서도 아끼지 않는 생활도 지속해 보았다. 지금은 먹는 것에서 만큼은 부족함이 없도록 지내며 조교, 연구보조 등으로 얻는 수입으로 적당히 적금을 넣으며 지낸다. 그러니까 모아둔 돈이 다 떨어지기 전에는 분명 취업의 길을 뚫어야 할 것이다.
아무래도 플랜 C, D까지 준비해서 연구직이 아니어도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음 일기를 쓰게 될 때는 B연구원의 서류심사 결과가 나온 후이겠지?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다음을 위해 무너지지 말고 끝까지 나아가자.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 요즘 정말 많이 생각하는 말 중 하나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쏟아날 구멍은 있다’는 속담보다 더 직관적이고 간결해서 자주 되뇐다.
2-3주라는 기간 동안 기숙사에서 벗어나 월세집으로 이사를 했고, 기관 B의 서류전형 결과가 나와서 지난주에는 면접도 보고 최종불합격의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내일 또 다른 면접을 앞두고서 제대로 정신을 차리려고 시도하였으나 차린 것은 아닌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많은 시간들을 유튜브, 넷플릭스, 쿠팡플레이로 흘려보내던 와중에 전자책을 읽었는데, 우연히 이석원 작가의 에세이를 접했다. 그의 글은 쉬우면서도 유의미했다. 어려우면서도 술술 읽혔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를 통해 내가 보이기도 해서 도무지 쉽사리 책을 놓을 수가 없었기에 단숨에 읽어버렸다. 요즘 관심이 가는 작가가 이석원 작가이기도 하다. 오래전 ‘보통의 존재’라는 베스트셀러를 썼다고 익히 알려져 있지만, 밀리의 서재에는 올라와 있지 않기에 아쉬운 요즘.
내일 면접인데 나는 와 이라노.
그렇다. 나는 내일 면접이다. 준비를 해야 하는데 와이라고 있노. 내가 와 이라노. 기관 B에 2개의 다른 포지션으로 지원을 했다. 어차피 둘 다 비정규직이고 1년 이내의 근무기간인 점이 비슷해서 어느 쪽이 되든 상관이 없었다. 일주일 정도 먼저 지원을 했던 첫 번째 포지션의 면접을 지난주에 봤었고 최종단계에서 붙지 못했다.
웃긴 건, 핸드폰으로 면접 결과를 조회하다가 화면이 너무 작아서 다른 면접자의 지원번호를 내 번호로 착각하여 몇 분 간은 내가 예비 합격자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미 결과가 나기 전에 내가 떨어질 확률은 크지 않다고 생각을 강하게 해왔었는데, 다시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니 최종합격자도 예비합격자도 아니었다. 머쓱했다.
머쓱한 이후로 잠깐의 시간은 좌절과 허망이 감돌았다. 그 이유들은 아래와 같다.
1) 대안 몰색의 어려움 : 내가 간절히 바란 곳은 아니었지만, 분명 최선이 없는 상황에서 이 기관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이 차선임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알아본 옵션들 중에서의 차선이겠지만. 이 기관에서 날 받아주지 않는다면, 한국에서 전공분야로 계속 일하거나 연구할 수 있는 곳을 찾기란 포도알 속의 진주알 찾기 격이었다.
2) 준비기간 동안의 생활비 마련 필요 :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흙수저이기 때문에 당장 돈이 나올 구석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시급했다. 그런데 다시 취준 기간이 길어지게 되는 것이었으므로 귀차니즘과 황망과 무기력이 몰아쳤다. 지금 하는 알바는 이번 달까지만 생활할 수 있게 해 주므로 11월을 먹고살려면 단기 알바라도 뭐라도 다시 구해야 한다.
3) 전방위적 미래전략 재고 필요 : 이미 최선이 아닌 차선이라고 가정한다는 것은, 현재의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실하게 모른다는 의미와 상통했다. 어떤 이유로 떨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다시 앞으로 내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제고하고 재고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부여해야 한다.
이 모든 고민들을 짊어지고 또 다른 일주일을 보내고 있는 오늘이고, 내일은 이 기관에 지원한 두 번째 포지션의 면접이 있다. 그런데 이미 첫 번째 포지션 면접에서 떨어져 버리니 힘이 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어떻게 해서 으쌰으쌰 힘을 낸다고 하더라도, 만약 내가 온 에너지를 끌어모아 낸 힘이 결국 무용지물이 되면 어쩌나 하는 회의감으로 이어지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그래서 우예 할 건데? 참고로 경상도 출신은 아니다. 작성하다가 헬스장을 다녀왔고, 바쁜 일이 있어서 처리하고 이어서 쓴다. 아직 하루는 지나지 않았고 내일 오후에 면접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이다. 면접 질문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소개 외에는 딱히 준비할 게 없다. 기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긴 하지만, 그건 오전에 일어나서 할 예정이고. 지금은 미래, 취업, 면접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충분히 지친 상태이기 때문에 몸도 상당히 피곤한 상태이다. 생각이 많아 어젯밤에도 잠들지 못하여 버티고 버티다가 피곤의 마지노선인 새벽 6시쯤 잠이 들었던 오늘이기도 하다. 긴장감 때문에 오늘도 편히 잠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일찍 자보려고 노력할 것이긴 하다.
밤새고 책상 앞에 앉아 면접 질문을 열심히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든다. 그런데 만약에 준비했는데 준비한 질문 하나도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라는 걱정은 필요 없다. 만약 내가 준비했던 질문이 하나라도 나온다면? 나는 밤새 준비한 것에 대해 정말 잘했다고 생각할 테니까.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노력하는 거니까.
최대한 면접 질문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하고, 예상질문을 5-10개 정도 정리해 본다. 그리고 그에 따른 예상답변을 2-3 문장 정도라도 짧게 정리해 두겠다. 뭐라도 해야, 더 이상의 후회가 없겠지. 내일 면접이 끝나고 나면, 새로운 구직정보를 찾아서 1-2곳에 더 지원을 해둘 생각이다. 1순위로 전공분야와 최대한 맞는 기관을 검색하고 2순위로는 내가 하고 싶었던 글쓰기나 출판, 편집 분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박사과정을 시작한다는 것을 가정에 둔다면, 그 이전에 한 업무가 전공과 관련이 있었으면 하기에 최대한으로 1순위를 알아보려고 한다.
지난주에 본 면접은 준비를 그다지 하지 않고 들어갔고, 답변을 월등하게 유창하게 잘한 것은 아니었지만, 제대로 된 대답은 했다. 조금 떨리기는 했지만 정신은 차리려고 했고. 이 날은 정석으로 위아래 모두 검은 정장을 입고 갔지만 내일은 회색 정장을 입고 갈 생각이다. 너무 딱딱한 이미지를 준 것이 아닌가 하여. 물론 착용한 복장으로 면접의 당락이 쉽사리 결정이 났겠느냐만은.
작년 8월 졸업을 하고 불안한 심정을 가득 담아 9월 간 세 곳에 지원을 했다.(엄연하게 두 곳에 지원했고 한 곳에서 2개의 포지션을 지원했다.) 그 중 세번째로 지원했을 때 합격하여 비정규직으로나마 근무하게 되었다. 연구직으로 가고자 한다면, 박사급이 아닌 이상 석사급에서는 직접적으로 연구에 참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프로젝트 연구원이라면 직접적으로 연구를 지원하고자 하는 목적의 포지션이라 직접적인 연구참여가 가능하겠지만, '석사급 연구원'이라고 한다면 절대로 'researcher'와 등치되지 않는다. 되려 'administrator'에 가깝다. 내가 몸담고 있는 곳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접적으로 연구내용에 접근할 수 있으니 이마저도 감사해하며 다니고 있는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