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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크로치 Dec 21. 2022

배려하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은 때의 현자타임 



오늘 기분은 눈도 내리고 날도 춥고 우중충한 것이 마치 내 마음 같다. 주로 잠이 부족한 때에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이해력도 하락하여 본의 아니게 찝찝한 일이 생기고는 하는데 하필 그게 바로 오늘일 줄이야. 오늘도 잠을 4-5시간 정도 잔 상태의 수면부족의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의 느낌은, 큰 일은 아니겠지만 무언가 사소하게 일이 있을 것 같다 하는 생각이 든 정도? 원래 잠을 잘 못 자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기에 하루의 느낌도 그렇게 다가오곤 했기에. 


몇 달 전만 하더라도 학교에 소속되어 있을 때에는 보는 사람들만 봤다. 주변에는 이미 수년간, 최소 몇 달간은 서로 알고 지낸 친구들, 박사님, 교수님들이 계셨으니 그들을 제대로 알지 못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변수에 대한 위험부담은 적은 편이었다. 그런데 입사한 이래로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 동안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 잘 알지 못하는 낯선 이들 혹은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일회성의 업무관계자들 뿐이었다. 이들 속에서 지낸 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업무 지시를 받고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내 머릿속에 남은 생각은 이거였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똑같은 시스템을 공유받지 못한 상호가 소통하는 과정에서는 배려와 인내를 치트키로 사용할 새도 없이 나의 세계가 얼마나 왜소했는지, 상대가 나와 얼마나 다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단순히 회사 생활을 하면서가 아니라, 오래된 학창 시절의 친구들과 대화할 때에도 그들을 잘 안다고 가정하고 내린 생각이 틀릴 경우에도 잦은 불통과 오해는 생겨났다. 



EP. 1


학술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사수께서 나에게 협력업체에 행사 프로그램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면서 계약여부를 확인해달라고 하셨고 함께 프로그램 안을 메일로 보내주셨다. 여기서 나는 프로그램 안을 보내주셨으니 '협력업체에 보내드리라는 거구나! 협력업체에 메일을 드릴 때 함께 첨부하여 보내서 이해를 도우면 좋겠다'라고 단정적인 생각을 했고 곧 실행에 옮겼다. 협력업체에 메일을 보낼 때는 사수를 늘 참조로 넣어서 보냈으므로 평소와 같이 사수를 참조하여 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몇 분 후, 사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참조로 보낸 메일을 확인해봤는데 첨부파일로 보낸 프로그램 안 마지막 페이지에 민감한 정보가 들어있다고, 내가 협력업체에 프로그램 안을 보낼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셨다. 즉각 협력업체에 연락하여 받으신 프로그램 안에 민감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으니 유출에 주의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물론 중대한 회사의 기밀사항이 빠져나갔다거나 법적 처벌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사수께서도 나도 적잖이 당황을 했었던 해프닝이었다.


프로그램 안을 첨부하면 협력업체에서 행사개요에 대한 이해가 빠르실 테니 도움이 될 것이라 가정한 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1) 프로그램 안 파일을 확인하면서 민감한 정보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였고, 2)  프로그램 안 파일을 첨부하여도 되는지를 사수께 여쭙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 


1) : 민감한 정보인지 분별을 하지 못했다는 건 치명적이다. 내가 사전에 파일을 미리 확인하고서 보내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한 이유에는 내부용이어도 외부에 공유하는 경우가 있었고, 과거에도 같이 일한 적이 있는 오랜 관계의 협력업체이니 공유해도 문제없겠지란 안일함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단순하게 내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경험한 관대함을 처음 근무하는 이 회사에서 동일하게 적용될 관대함이라 멋대로 가정했던 것이다. 나의 실수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나 자신과 타인의 실수를 비효율적이라 생각하고 최소화해야지라고 생각해왔던 나였는데 이런 실수를 저질러버리니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다. 


2) : 지금 일하는 연구원 직전에 일했던 교내 연구원에서는 외부유출이 되면 안 되는 정보에 접근하지 않아도 되는 포지션이었고, 인수인계도 없었으므로 사수도 없었기에 전적으로 내 판단에 의해서 행정을 처리했었다. 그리고 나는 같은 사회과학계열 연구원이므로 대개의 프로세스가 별반 다를 것 없겠거니 하고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내 안에서 고착화시켰다. 나는 이 사실을 위와 같은 해프닝을 한 차례, 두 차례 겪으며 비로소 알게 된다. 과거에 일했던 교내 연구원과 이 연구원은 절차가 아예 달랐다. 물론 지금의 연구원에 들어올 때도 인수인계 따위는 없었으니 더욱 혼란이 가증되었던 점은 사실이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욱 하나하나를 사수께 여쭙고 진행했어야 했다. 



 EP. 2


오래된 고등학교 친구와 정말 오래간만에 만나기로 하고 날짜를 정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만나기로 한 당일 오전에 내가 자격증 시험이 있었고, 친구는 나에게 시험을 다 보고 나서 만날 때를 정하자고 했다. 내가 시험에 최대한 집중하게 해주고 싶었던 친구였기에 시험이 끝날 때까지 카톡 답하지 않아도 되니까 시험 끝나고 내 컨디션을 보고 이야기하자고 했다. 


상대를 무척이나 배려하는 이 친구라면 내가 시험이 끝나고 컨디션이 별로일 때 약속을 미룬다고 해서 서운해하지 않고 되려 쉬라고 했을 테니까, 그런 의도에서 시험 끝나고 내 컨디션을 보고 말하자고 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시험을 보고 나서 나는 추운 날씨와 피곤 때문에 집에서 쉬고 싶어 져서 친구한테 '이번주 말고 혹시 다음 주에 시간이 되면 만나는 게 어떨까?'라고 보냈다. 


그런데 계속 이야기를 해보니 친구가 의도한 것은 시험이 끝난 바로 직후에 한두 시간 정도 내가 쉬고 싶을 시간을 주고 싶었다던 거였더라. 나는 친구가 의도한 몇 시간을 며칠로 확장하여 생각한 것이었고, 간만의 만남을 기다리다가 말이 잘 안 통하는 친구(나)를 이해하려고 애쓴 친구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나는 내가 왜 그 친구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지 자문하기 시작했다. 


다른 지역에 살고 있어서 자주 못 보는 친구라 어쩌면 내가 자주 보았던 몇 년 전의 모습대로만 그 친구를 생각한 것일 수도 있고, 그 친구에게 있어서는 시험 직후 바로 무언가를 하기 전에 쉬어가는 시간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에게도 쉴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이유가 작용한 복합적인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다음부터는 상대의 말이 내가 생각한 것과 맞는지 재확인을 여러 번 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EP. 3 (번외)


이번에도 학술행사를 준비하던 때였다. 행사에 필요한 자료가 완료되어 인쇄업체에 퀵을 보내서 받아오려고 했다. 퀵 업체에 연락하기 전에 인쇄업체에 먼저 전화를 해서 '퀵을 보내려고 하는데 언제 찾아가면 되겠느냐?'라고 물었고 업체 관계자 분께서는 '오후 6시 이전에만 아무 때나 오시라'며 짧은 전화를 끊었다. 그래서 나는 퀵 업체에 인쇄업체의 주소를 전달하고 여유롭게 점심을 먹고 양치를 하러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에서 열심히 이를 닦고 있는 상태에서 퀵업체로부터 전화와 문자가 왔지만 양치질을 마무리해야 했기에 나중에 전화드리겠다는 문자를 남겼고, 자리로 복귀하여 퀵업체로부터 상황을 전달받았다. 기사님께서 인쇄업체를 방문하셨는데 인쇄업체 측에서 '접수번호'를 말하지 않으면 자료를 줄 수 없다고 했고, 기사님께서는 화가 나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처음 상황을 듣고 나는 '접수번호? 접수번호면 퀵 예약할 때 받아야 하는 건가? 전화로 예약할 땐 언급하신 게 없었는데?'의 혼돈의 카오스 상태였고, 퀵 업체와의 전화를 끊고 인쇄업체에 다시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다시 설명받았다. 자료의 제작을 주문할 때 생성되는 주문번호가 필요하단다. 자료에 대한 주문은 우리 회사가 한 게 아니고, 중간에 다른 디자인 회사가 한 것이기 때문에 우선 디자인 회사에 전화를 걸어 주문번호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아까 인쇄업체에 전화할 땐, 내가 퀵 보낸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업체 관계자는 주문번호를 말해야 퀵 기사님께 자료를 줄 수 있다고 왜 언급하지 않았는가? 일전에 우리 회사랑 여러 번 협력한 업체도 아니고, 이번에 처음 연락을 한 -그것도 디자인 회사가 중간에 낀, 한 다리나 건넌 사이의- 업체인데, 그 업체 관계자는 당연히 자료 수령할 때 주문번호가 필요하다는 걸 내가 알고 있으리라 가정한 것인가? 아니면 나랑 전화했을 때에만 주문번호가 필요하다고 언급하는 것을 잊은 것인가?


이러나저러나 분의 퀵 기사님의 기분을 상하게 해 드렸고, (비록 몰랐다고 하더라도) 퀵을 예약한 우리 회사의 이미지는 부정적으로 다가오셨을 것이다. 세상만사 귀찮다는 듯이 축 쳐진 목소리의 그 인쇄업체 관계자 분께서 조금의 배려를 보여주시어 주문번호에 대한 한 마디의 언급만 해주셨다면 여러모로 죄송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사소한 틀어짐이 여러 사람의 시간을 빼앗고 감정적 소모를 하게 만든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일이다.




이 외에도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내 식대로 해석한다든지의 이유로 발생한 일들이 여럿 있다. 그럴 때마다 나에 대한 자책과 함께 추후 발생하지 않도록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늘 고민하게 된다. 아직도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려면 멀었구나 싶기도 하면서 무언가 지능이 퇴화하거나 정체하고 있다는 느낌 하에 사고하기를 귀찮아하는 나의 모습을 찾게 되기도 한다.  


되도록이면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갈등을 최소화하고 먼저 베풀고 다가가려고 하지만, 간혹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때가 있다. 그럴 때마저도 최대한 많은 이들이 감정적, 물리적 타격감을 갖지 않도록 좋게 해결할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 꾸준히, 부지런하게 각성하고 발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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