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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크로치 Mar 19. 2023

왜 프리랜서가 되려는지 이제야 알겠다

퇴근 이후의 시간이 회사 때문에 무너지지 않기를



며칠 전,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일 저녁의 나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유튜브를 켰다.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영상들을 쓱쓱 내려가니 나의 눈길을 격하게 사로잡는 썸네일이 있었다. 썸네일 속 그녀는 무언가에 화난 얼굴로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고 있었다. 다른 한 손에는 출입증 같은 걸 들고 있었고, 영상의 제목에도 가운데 손가락이 들어가 있네? 총체적으로 내 눈길을 잡아끈 것은 1) 가운데 손가락과 2) 제목에 적힌 '우울증'이라는 단어였다. 그 영상을 누르지 않을 수 없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유투버 '93년생 김태희'의 최근 영상 중 하나. 그녀의 영상을 보고 싶다면 여기로. (https://youtu.be/0qidisQ0VMg)


그녀는 공무원이 된 후, 특정 직원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고 결국 병원에서 우울증을 진단받았다고 했다. 우울증까지 겪고 몸과 마음이 삭아가 결국 본인의 의사로 퇴사를 하기에 이른다.(공무원의 퇴사는 의원면직이라고 부른다.) 면직을 선택하게 된 그녀에게 있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나로서는 감히 일말의 감도 잡을 수 없었다. 영상을 찍으면서도 당시의 일이 생각나 감정적으로 버거워하던 그녀를 보며 마음 한편에 스며드는 씁쓸함을 지워낼 수가 없었다. 분명 나도 그녀와 같은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한 명의 시청자로서 앞으로의 그녀의 행보를 응원하는 한편, 직장인으로 반년을 지내온 나의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왜 내가 최근 들어 회사에서 말이 없어지게 되었는지, 나 스스로는 이유를 알고 있지만, 회사 동기들이나 친한 동료에게도 쉽사리 전부 다 들어낼 수 없으므로 홀로 마음속에 담아 온 생각들을 털어내보려고 한다. 익명성을 이용해서 내가 경험한 특정 직원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솔직하게 쓰면서 홀가분해지고 싶었다.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에는 전적으로 유투버 '93년생 김태희'씨가 공유해 준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이 소중한 일요일 저녁에 다른 할 일들도 많은데 굳이 시간을 내어 글을 쓰고자 함은 나의 이야기를 글로 털어놓음으로써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공유하고,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이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공감과 위로를 느끼길 바라기 때문이다. 석사 졸업 이후, 계약직 회사원으로 근무한 지 벌써 6개월이 다 되어간다. 그 시간들 속에서 최대한의 갈등은 피해 보고자 노력해 왔으나 도무지 그들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어 그 관계를 방치한 지 한 두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오늘은 이 관계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볼까 한다. 사실 내일이 출근이라 그들과 함께 회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무지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인 탓이 제일 컸다.


첫인상


시작은 이 모든 관계들의 시작인, 처음의 만남이다. 나의 직급이 가장 낮았으므로 직원 A는 나보다 위인 직급이며 나이 또한 나보다 많다. 회사에 대략 5년 정도를 몸담았다는 직원 A의 첫인상은 이랬다. 실제로 그랬다는 것이 아닌, 그간 여러 사람들을 경험하며 쌓아온 데이터에 기반하여 추측한 성격을 말해보자면, 그는 예민하고 자기가 기분 나쁠 때는 상대를 봐가며 티를 내고, 일을 완벽하게 하는 것은 아닌데 아랫사람한테는 완벽을 요구하고, 자신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최대한 피하는 사람인 거 같았다. 좋게 말하면 똥은 잘 피하는데, 나쁘게 말하면 영악할 것 같았다. 다만, 영악한 만큼 자신이 자세를 낮춰야 할 더 높은 직급의 사람들 앞에서는 자신의 추한 모습들을 잘 숨길 것 같았다. 회사에서 돌아가는 일은 자기가 다 알고 있어야 하고, 남들보다 우위에 있고 싶어 하는, 호랑이의 탈을 쓰고 싶어 하는 존재.


그리고 나의 예상은 시간이 지나며 모두 맞아떨어졌다.

가장 직급이 낮은 나에게는 자신의 본래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입사한 처음에는 직원 A가 나에게도 잘 보이려고,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나이스'한 사람으로 비추어지려고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입사 후 3주쯤 지났으려나, 나는 직원 A가 시킨 업무를 하고 그에게 제출한 후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그간 한 번도 들려준 적이 없던 '기분이 상당히 나쁘니까 나 건들지 마'라는 듯한 목소리를 깔며, 보내준 서류에 오탈자가 너무 많으니까 다음에는 확인하고 달라고 하는 것이다. ('너무'라는 수식어를 붙일 정도로 우수수 많았던 것이 아닌, 실상은 몇 개 정도였다.) 분량이 많았던 서류에 오탈자를 다 꼼꼼히 걸러내지 못한 나의 잘못이었기 때문에 우선 사과를 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고 나서 나를 대하는 직원 A의 태도는 변했다.


여기가 바로 틀어진 관계의 시작이었지 않았을까? 상사인 직원 A의 태도가 차갑게 변했고, 나는 의아했지만 그냥 사무적으로 그렇게 지냈다. 직원 A 본인도 자신의 태도가 변한 걸 스스로도 인식한 듯 보였다. 나 스스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본인 입으로 오탈자 확인을 자주 놓치는 사소한 실수를 한다며 혹여 그러더라도 걱정 말라더만, 정작 나에게 들이대는 잣대는 더럽게 엄격했다. 사소하더라도 실수한 거는 실수한 건데, 회사에 손실을 끼친 중대한 실수도 아닌 일에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건 뭐지? 직원 A가 그런 태도로 나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 본인이 할 일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어서다. 그래도 업무는 업무니까 가장 말단인 나부터 잘하는 게 좋겠지란 생각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그때부터 이유는 확실하게 모르겠는데, 직원 A와는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친근하다는 말을 많이 들을 정도로 특히나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더 마음을 열고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는데, 이 모든 노력들을 왜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 사람이었다. 입사한 지 3개월째가 되었을 때는 다른 층을 사용하고 있던 내 자리가 다른 직원들과 직원 A가 사용하는 오피스로 옮겨지게 되었다. 안 그래도 부담스러워서 마주치고 싶지 않았는데 같은 공간이라니 진짜 싫었다. 싫었지만 어찌할 수 없으니.


하나의 공간


부담스러운 이 관계는 같은 공간을 사용하면서 더욱 악화된다. 사실상 내가 같은 공간에서 보고 들은 것들로 인해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은 셈이긴 하다. 내가 첫인상에서 예측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면, 직원 A의 험담 스킬이 엄청났다는 사실이다. 그냥 대화의 반 이상이 험담이라고 해도 무색할 정도로, 누구는 이랬고 누구는 저랬다는. 마치 욕을 하면서 '그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됐었을 텐데' 등의 사족을 갖다 붙이며, 본인은 그들보다 더 나은 사람인처럼 결론지었던 직원 A회사 내에서 일어났던 그리고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자신이 가진 인적 네트워킹을 통해 듣고 전파하는 일에 힘을 썼다. 나는 그 공간에서 내가 알고 있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직원 A가 전파하는 누군가의 내용에서 칭찬은 없었다.


직원 A가 전파하는 험담에 나를 제외한 다른 팀 직원들 모두는 공감하거나 동조했다. 반면,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런 이야기들이 듣기 싫어서 업무 내내 이어폰을 꽂으며 귀를 원천차단했다. 개인적으로 회사에서 누군가에 대해 말을 할 때는 칭찬이 아니면 그 대화에 섞이지 않으려고 한다. 말로 죄를 짓고 싶지 않아서의 이유가 가장 크고, 특히나 회사일을 하면서는 최대한도의 이해심을 내포하려고 한다. 내가 아는 사람들의 험담 중에서는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경우도 있었고, 과장이 된 경우도 있었다. 혹여 내가 귀를 차단하지 못했거나 사무실이 아닌 공간에 있었을 때, 직원 A는 내가 아는 사람들에 대한 험담을 하면서 나에게도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말해도 된다'라는 유도하려는 식의 멘트를 던졌다. 그런 적이 여러 번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니라고 웃어넘겼다. 그리고 직원 A는 자신의 말에 동조해주지 않는 나를 보며 웃음기 없는 시선을 보내왔다.


누군가가 누군가의 험담을 할 때 드는 생각은 그것이다. 저 사람은 나에 대한 험담도 하겠지란 것. 인생을 살아보니 99.9%의 확률로 그런 사람들을 당신을 욕할 역량을 갖추고 있다.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나는 무의식적으로 직원 A와 멀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나에게 쓸데없이 말을 걸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 직원 A는 같은 공간에서 알게 모르게 추잡한 행동들로 나를 신경 쓰이게 했다. '빡'치게 말이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와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내 얼굴 뚫어지게 쳐다보는 건 기본이요, 내가 팀 예산으로 산 탕비실 물품 중 하나인 특정 탄산음료 000을 마시고 있었는데 옆자리 직원한테 '왜 요즘 000가 줄어들었죠?'라는 나직한 목소리로 대화를 문을 열고, 내가 접근할 수 없는 위치의 캐비닛의 열쇠를 잃어버렸을 땐 내가 가져갔을 수도 있다며 물어보라던가(당시 나는 그 열쇠의 존재조차도 몰랐다), 내가 부순 적 없는 캐비닛 열쇠구멍을 내가 부순 것 같다면서 고장 내놓고 그냥 두고 갔냐고 다른 직원과 속닥거리질 않나(아니, 나도 다른 곳에서 업무 보다가 돌아와 보니 누군가가 고장 내놓은 걸 발견했는데 나겠냐고)이 모든 걸 내가 버젓이 맞은편 책상에 앉아있는데 행했다. 이것 말고도 적어보라면 많다. 자신의 업무를 몰아주는 건 기본인데 업무의 범주이고 내가 말단이니까 우선 딱히 언급은 안 하겠다.


그러니까 본인 이미지를 생각해서 나한테 직접적으로 말은 건네지 못하고, 다른 직원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본인의 생각에 먼저 동조를 구하는 동시에 나한테도 눈치를 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의 험담에 동조해주지 않는 내가 아니꼬왔을까? 나는 특히 직원 A가 많이 험담을 하는 상사 중 한 명과 다른 누구보다 친한 편인데 그걸 그녀도 알고 있다. 이런 생활들을 뭐 몇 달하니까 나름 적응이 되면서도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직원 A의 험담에 적극 동조하고 가장 친한 직원 B와도 거리를 두는 것이 좋겠다 판단하여 그렇게 하고 있다.


앞으로


뭐, 곧 계약만료니까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 같달까. 아직까진 내가 이 정도의 상태라는 것을 나와 친한 회사 동료들과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들 그냥 내가 같은 직급의 동료들에 비해서 팀에서 유독 업무를 많이 받고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참기가 힘들다. 내가 직원 A한테 직접적으로 이상한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고 제3자와의 대화식으로 은근히 돌려 까이는 정도로만 당하고 있지만, 내일 그들과 팀회식을 같이 가서 점심을 먹어야 하나란 생각에 정말 기분이 나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직원 A, 직원 B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도 할 말이 없다. 나 혼자 말을 최대한 아끼며 밥만 먹을 바엔, 그들이라도 편하게 먹으라고 내일부터는 매주 월요일 점심마다 있는 팀회식을 당분간 안 가겠다고 말할 계획이다.


회사 때문에 마음과 정신이 무너지는 사람들을 보면 보는 나도 아프다. 우울증이라고 명확하게 의학적 진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살면서 사람들 때문에 매일을 울고 지냈던 잠깐의 시간을 겪었던 나로서는 아프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면, 그리고 객관적으로 본인이 잘못한 일이 아니라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설사 잘못을 했더라도 사람이니 실수를 할 수 있지 않은가. 그 실수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고 재발을 방지하려는 의지와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주에는 회사 내부인지 외부 사람인지는 모르겠는데, 누군가가 직원 A를 두고서 '싸가지 없다'라고 컴플레인을 건 일이 사무실에서 이어폰을 꽂고 지내던 내 귀에까지 들어왔었다. 그 정도로 평가를 하고 화가 났다면 분명 협력업체이거나 회사 내부 사람일 텐데, 그걸 보면서 사람 보는 눈들은 똑같구나 생각했다.


나는 지금껏 그래왔듯이, 직원 A와 직원 B를 신경 쓰지 않고 지내려고 노력할 것이다. 만약 앞으로 남은 계약기간 동안 직원 A가 나에게 불합리한 말들을 내뱉는다면 과거에도 그랬듯 나는 어떤 식으로든 나를 지켜낼 것이다.


정규직은 꿈이지만, 이왕이면 프리랜서처럼 사람을 만나며 똥을 밟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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