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작가면 아이들도 글을 잘 쓸까. 미리 말하건대, 우리 집은 아니다. 식탁 위에 노트북을 펼쳐서 글쓰기 수업을 듣고, 책을 읽고, 글 쓰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게 전부다. 더러는 같이 앉아 수업 듣고, 내가 쓴 글을 읽고, 책 표지만 살핀다. 한 번쯤은 같이 끄적일 법도 한데 그럴 생각이 없다.
첫 번째 책이 나왔을 때, 지인들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가 작가니까, 너희들도 글 잘 쓰겠네." 씩 웃기만 하던 아이들. 의미가 있었던 걸까. 엄마가 노트, 펜, 노트북과 함께 하는 모습에 익숙한데도, 왜 자신들은 쓰려고 하지 않을까. "너희들도 글 써야지?" 하면, 못 들은 척 지나가거나 "왜요?" 하며 쳐다본다. 수시로 이런 얘기를 들어온 첫째는 이제, "그럴 시간이 없는걸요?"라며 응수한다.
7월 19일.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아이들의 독서와 글쓰기에 관여하지 않았는데. 이번만큼은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5학년인 첫째 아이 방학 숙제 중, 독후감 다섯 편 쓰기가 있다. 담임 선생님은 이 숙제를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교실 청소를 시킬 거라고 선포했다고 한다. 청소와 친하지 않은 아이라 당연히 독후감을 쓰겠거니 했는데, 안 쓰기로 했다며 큰소리친다. 너만 안 쓰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니, 나 같은 애들이 13명이나 더 있단다. 함께 구역을 나눠 청소하기로 했다나 뭐라나.
"그래도 그건 아니지. 방학 숙제고, 다섯 편만 쓰면 되는데 왜 안 하려고 하지?"
"쓰는 게 너무 싫어요. 그리고 친구들이랑 안 쓰기로 약속했어요."
33명의 학생 중, 남자 학생이 17명. 그중 14명이나 안 쓰기로 했다니. 어이없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건가.
"분명히 쓰는 애들이 더 많을걸? 저번에 우리 집에 놀러 온 너의 반 친구들도 독서 학원에 다닌다며. 거기서 다 써올 거야. 그리고 너는, 엄마가 작가인데 좀 그렇지 않아?"
며칠 뒤, 독서 학원을 운영하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른 일로 대화하다가 통화 끝에, 우리 아이들을 부탁하면 어떨지 물었다. 지도상으로는 다소 멀지만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시부모님 댁에서도 가까워 한 달 정도는 픽드롭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단호한 의사를 눈치챘는지, 흔쾌히 허락했다. 한 달 동안 글쓰기에 대한 부담도 덜고, 가능하다면 속독, 편독하는 습관도 잡으면 좋겠다고 하니 최대한 지도해 보겠다고 했다.
다음 날, 아이들을 보냈다. 원장님이 엄마 친구이자 작가라는 데에 다소 긴장한듯했지만, 해볼 만했다고 답했다. 그날 저녁 친구로부터 오색찬란한 포장, 미사여구는 걷어낸, 솔직한 피드백을 받았다. 알고 있던 사실이라 놀랍지 않았지만, 그동안 내가 너무 안일했다는 후회와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엄마가 작가라서 글을 제법 쓰겠다는 말도, 아이들에게서 빈 종이와 연필을 멀리한 건 아닐까.
일주일에 한 시간씩, 두 번 참여하는 것만으로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건 안다. 그저 글쓰기를 향한 마음의 벽을 낮췄으면.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도 내려놓았으면 바랄 뿐이다. 엄마가 작가라서 잘 쓰는 아이도 있겠지만, 나의 두 아들은 아닌 걸로. 중이 제 머리 깎을 수 없다는 말은 이런 상황에서도 통하나 보다. 이번 방학 동안은 마음의 장벽을 내려놓고, 엉망인 글이라도 일단 써보는 아이들이 되길 바라며 방학 끝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