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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Jul 21. 2024

아이들 방학은 엄마의 개학이라고?

"와! 드디어 오늘 방학한다! 너무 좋다! 근데, 엄마는 싫겠어요. 우리의 방학은 곧, 엄마의 개학이니까요!"

매 학기 마지막 날마다, 둘째 아이는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렇지 않은 거 같다고 말하면, 나름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한다.

늦게 잘 거고, 늦게 일어날 거고, 아침 먹고, 간식 먹으며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질 거라 엄마가 피곤할 거라나.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시간의 필름을 되감아보면 방학이라고 해서 내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의  중요한 일과는 대부분 이른 시간에 끝난다.


오전 5시 30분쯤 일어나서 할 일을 점검하고, 운동 가방을 챙겨 수영을 다녀온다. 오는 길에 집 앞에 있는 떡집에 들러, 금방 나온 꿀떡이나 송편을 사 온다. 접시에 나눠 담고 우유와 함께 준비해 놓으면, 미리 일어나서 준비를 끝낸 아이들의 아침 식사가 이어진다. 5분 남짓 동안 먹고, 양치와 세수를 마치고 현관문을 나서면 7시 30분. 다시 내 시간이 시작된다.

집을 정돈하고, 다시 식탁에 앉는다. 독서모임 사람들과 매일 읽어야 하는 분량의 책을 읽고, 밤새 올라온 SNS와 이메일을 점검하고, 영어회화 공부를 마친다. 내가 운영하는 단톡방에, 오늘의 명언을 카드 뉴스로 만들어 공유한다. 이어서 두 번째로 읽을 책을 읽고, 강의 준비를 하며 중요한 일과를 매듭짓는다.


아이들이 방학을 했다고 해서 나의 오전 일과가 달라질까.

오전 수영을 마치고 돌아오면 7시 20분. 방학이면 보통 9시에 일어나는 아이들이라, 오히려 흐름이 끊기지 않고 집중할 수 있다.

이번 달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으려 독서시간을 늘린 터라 오전에는 주로 책 읽기에 집중한다.

내 운명은 고객이 결정한다. 기초부터 배우는 보이차, 홍차의 세계사 그림으로 읽다, 불변의 법칙 토지 13권 등,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독서 겸 공부로 천천히 읽기 최고의 조건이다. 이러한 시간이 확보됐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푸근하다.

강의 듣기, 강의 준비, 글쓰기, SNS, 운동과 같은 것들은 아이들이 학원에 가 있는 낮 시간 동안 하면 된다. 이렇게 시간분배를 해놓으면, 아이들이 집에 있어도, 전반적인 나의 일상에는 변화가 없다. 굳이 하나를 꼽아본다면, 주방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 하지만, 곳간이 넉넉하고 레시피만 구하기 쉽다면 그것도 수월하게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아이의 방학은 엄마의 개학이라는 말. 엄마의 일상에 큰 변화만 없다면 글쎄다.

방학하면 하는 대로,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시간을 잘 분배한다면 내 일상의 주체는 여전히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같이 붙어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집안 일과 아이들에게 더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 것도 맞다. 그렇지만 그래봐야 일 년에 두세 달 뿐인 것을.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해낼 거니까. 방학이라는 상황에 개의치 않고, 나만의 루틴과 페이스를 재정립해서 잡아갈 테다. 그래서 한 달 동안 기존의 일상에 큰 변화가 없는 날들을 보내리라 기대해 본다.




에필로그)

사실, 올해 8월은 나름 많이 분주할 계획입니다. 글쓰기와 티 수업을 할 공간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을, 그냥 마음으로만 품고 살다가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장소를 구했습니다. 8월 1일이 되는 날부터, 그 공간을 꾸미고 커리큘럼 구성하는데 온 정신과 체력을 다 쏟아부을 계획이라 시작도 전에 이래저래 조금씩 분주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방학이라 여유 있을 아이들과 달리, 새로운 일을 준비하기 위해 낯선 과제들을 넘고 넘어야 하기에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보낼 예정입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고 맞이하는 9월이야 말고, 아이들과 저의 진짜 '개학'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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