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시 30분. 서울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같은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은 잠들어 있을 시각. 깨어 있는 이들 중에서도 이 시간에 이동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심야버스 안, 좌석이 절반 이상은 비어 있었다. 앉자마자 앞에 있는 그물바구니에 330ml 물을 넣었다. 가방에서 무선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고 노이즈 캔슬링 버튼을 눌렀다. 뒷좌석에 앉은 일행이 건네준 보온 안대를 꺼내 눈을 덮었다. 등받이를 완전히 뒤로 젖혔더니 불편했다. 기대는 정도로 조절했다. 눈을 감았는데도 정신이 쌩쌩했다. 차에 폰을 두고 내리는 바람에, 버스에 올라타기 직전까지 피비린내가 나도록 뛰어서일까. 잠은 오는데 잠이 들지 않는, 애매한 선상 어딘가에 있었다.
폰을 꺼내 오디오북을 열었다. 요즘 재독하고 있는 책이기도 한 『토지』 4권 중 한 부분을 틀었다. 30분 타이머를 설정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만들고 성우들에게 집중했다. 자야 하는데 잘 수 없었다. 정신이 맑아지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다음 장면을 그릴 즈음 성우 목소리가 멈췄다. 조금만 더 들을까, 자야 하니까 들으면 안 된다며 참았다. 그대로 잠들기 바랐지만, 커브길을 도는 버스가 몸을 깨웠다. 무릎도 서서히 아파졌다.
발앞에 놓인 발 받침대에 신발 벗고 양반다리로 앉고 싶었다. 발 냄새가 나면 안 되겠지 싶어 발로 차서 발걸이를 원래대로 올려놨다. 바닥에 발이 놓이니 무릎이 덜 아픈 것 같았지만, 이내 다시 통증이 올라왔다. 기사님 운전 속도도 거칠게 느껴졌다. 바퀴가 드르륵 도로를 긁는 진동까지 전해졌다. 초록색 칠판 위를 분필로 긋는 것처럼. 점차 버스 속도가 느려졌다. 커브길을 돌았다. 휴게소 진입이었다. 화장실만 다녀오고 나면 바로 출발한다는 안내 음성이 들렸다. 부스럭거리며 일어나는 사람이들 몇 명뿐. 다시 출발했다. 안대 속에 희미하게 스며든 불빛도 다시 꺼졌다. 한숨도 못 잤는데. 왔던 시간만큼 가면 도착인데. 자야 한다고 되뇌었지만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다. 도로 위를 달리는 속도와 발밑 진동은 머리끝까지 전해졌다. 꿈을 꾸는 건지 상상을 하는 건지 분간되지 않는 장면들이 오갔다. 아픈 무릎은 자세를 바꿔도 똑같았다. 잠자리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이토록 불편할 줄이야.
버스 움직임은 더 빨라졌다. 체감상 곧 서울에 도착할 것 같았다. 속도가 느려지고 연이어 커브길을 도는 느낌이 들자 도착인가 싶었다. 도착 방송이 나왔다. 두고 가는 짐이 없도록 다 챙기라고 했다. 안대를 풀자 버스 안에 불빛이 가득 들어왔다. 여기저기서 등받이를 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둔 가방을 안고 잠깐 멍하게 앉아 있다가, 안전벨트를 풀고 내렸다. 오전 4시 30분이었다.
오전 미팅 시작은 6시였다. 회의장에 도착하니 5시 10분. 정리하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사람들이 한두 명씩 들어왔다. 이내 50명 넘게 모였다. 밖은 아직 고요했고 어둠은 여전히 두꺼웠다. 그런데 이 안은 이미 밝았다. 누군가는 나처럼 새벽 버스를 타고 왔고, 누군가는 첫 차에 맞춰 나왔을 것이고, 누군가는 잠을 이기려 커피를 들고 서 있었다. 많이 잤든 덜 잤든, 잠을 설쳤든, 오늘을 시작하는 방식은 달랐다. 버스 안에서만 해도 이 시간에 이동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했는데 생각보다 많다. 우리가 자는 사이에도 세상을 켜는 사람들이 있었다. 버스에서 한숨도 못 잔 이유는, 불편이 아닌, 마음의 긴장 때문이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