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나이 들어간다는 건

by 소믈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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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 내가 11살 때부터 좋아했던 가수 노이즈 콘서트에 다녀왔다. 나처럼 부부가 같이 온 집도 있었고, 아이들과 같이 온 집도 있었다. 내 자리 근처에는 30년 지기 골수 팬들이 가득했다. 나도 팬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 옆에 있으니 그냥 즐기러 온 사람 정도로 느껴졌다. 앞쪽 좌석에 앉아 있으니 호흡소리, 지친 표정, 얼굴에 맺힌 땀방울까지 다 보였다. 그들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립싱크가 대세였는데, 쉰이 넘은 나이에 라이브와 댄스를 같이 하려니 힘들 수밖에. 그런데 그들은 그걸 숨기지 않았다. “힘들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그 상태 그대로 객석과 소통했다. 그 모습이 더 인간적이었다.

무대 위에서 그들이 숨이 차오르는 만큼 나도 숨이 찼다. 앉아 있는데도 내내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고 박수 치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런데 옆 사람도 비슷해 보였다. 같이 늙어간다는 게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내가 노이즈를 좋아하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그때 우리 집에는 TV가 한 대 있었는데, 그마저도 안방에 있었다. 엄마는 공부해야 한다며 TV 시청 시간을 줄이는 대신 라디오를 사줬다. 그렇게 하면 내가 공부할 줄 알았겠지만, 엄마 바람대로 되지는 않았다. 침대 매트리스 위에 둔 라디오와 거의 한 몸으로 지냈으니까.

매주 토요일 밤을 기다렸다. KBS 2FM <FM 인기가요>를 들으려고. 밤 10시부터 12시까지 노이즈가 DJ를 맡던 날이 있었다. 그 시간만 되면 볼륨을 맞추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음악이 나오고, 멤버들이 떠들고, 사연을 읽어주면 뭐가 좋은지 연신 웃었다. 그게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 시절에는 연예인을 다루는 잡지도 많았다. 한 달에 한 번 나오던 잡지를 사서 사진과 인터뷰를 읽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은 가위로 오려 투명 파일에 넣었다. 우리 동네 근처에 그들이 온 적도 있었다. 작은 키로 어른들 어깨 너머로 보려니 잘 보이지 않았다. 대신 멀리서 노래와 응원소리만 들었다. 그걸로도 충분했다.

노이즈는 4인조였고, 나는 특히 천성일이라는 멤버를 좋아했다. 작사와 작곡 능력이 남달랐다. 관심이 그에게로 쏠리다 보니 그가 만든 다른 음악도 찾아 들었다. 그가 참여한 다른 가수 앨범도 사 모으며 초등학생 시기를 보냈다.

그러다가 프로그램 진행자가 바뀌었다. 그룹 푸른 하늘 출신 유영석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그룹이었지만, 혹시나 노이즈가 게스트로 나올까 싶어 매일 들었다. 노이즈 노래가 나오면 공테이프에 녹음했고, 게스트로 나오면 그날 방송을 통째로 녹음했다. 청취자 통화 찬스가 있는 날이면 방에 전화기가 없는 걸 탓했다. 그렇게 “나올까 봐” 듣던 라디오였는데, 어느새 내 마음에 유영석이라는 가수가 밀고 들어왔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또 다른 시대가 왔다. 젝스키스와 H.O.T가 등장했고, 애들 사이에서는 편이 갈렸다. 그 흐름에 올라타며 나는 젝스키스 팬이 됐다. 노이즈는 그렇게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2016년, 1월. <슈가맨>이라는 프로그램에 노이즈가 나왔다. 추억 소환 프로그램이었는데, 전혀 예상 못한 그들이 나와서 정말 놀랐다. 돌도 지나지 않은 둘째를 안고 방방 뛰었다. 두 아이 엄마가 잠깐 10대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토요일 밤 10시에 듣던 라디오, 파일 속 사진들, 늘어지도록 들었던 카세트테이프가 생생하게 살아났다.

같이 나이 들어버린 그들은 여전히 노래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고마웠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난주 토요일, 나는 그들을 보러 서울에 갔다. 4명 완전체를 만나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여전히 그들의 음악을 듣고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에 남편도 말했다. “오랜만에 공연 같은 공연을 봤다”고.

가까이서 같이 노래하고, 호흡하고, 잘하면 잘하는 대로, 실수하면 실수하는 대로 즐긴 시간이었다.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준 공연이었다.

어쩌면 나에게는 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한때 미친 듯 좋아했던 가수와, 잊고 있던 10대의 나를 같이 만났으니까. 2시간 30분 동안 그 추억을 꺼내 볼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다. 비록 같이 늙어가지만, 그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노이즈 음악을 다시 들었다. 다음에도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혼자 조용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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