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글쓰기 수업에서 스승님이 말했습니다.
"내 하루에서 잉여시간 2시간만 빼서 뭘 하겠다고 작정하면 삶이 바뀐다." 그 말을 받아 적으면서, 나한테도 적용 가능할까, 내 하루에 그런 시간이 존재할까 생각해 봤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미라클 모닝에 빠져있던 적이 있었습니다. 3년 이상 새벽 시간을 운동과 독서로 채웠죠. 지금은 그렇게 살고 있지도 않은데 여유가 없습니다. T형 인간으로 사는데 왜 매일 '오늘도 정신없었다.'라는 말만 하는 걸까요.
하루를 쪼개보기로 했습니다. 24시간을 일하는 시간, 그 외 시간, 잠자는 시간 등 3등분 했죠.
첫 번째로 일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소득과 직접 연결되지 않아도 일과 관련된 건 전부 범위에 넣었습니다. 온라인 강의, 글쓰기, 글쓰기 수업, 독서, 회의, 티 클래스 강의까지.
두 번째로 남는 8시간에 하는 일과를 적었습니다. 차 우리기, 마시기, 신문 읽기, 전화 통화, 요가, 카톡, SNS, 청소, 빨래, 설거지, 정리, 요리, 식사, 샤워, 운전, 아이들 숙제 봐주기, 보드게임 등. 떠오르는 모든 걸 목록에 담을 수 있을 만큼 가득하지만 이걸 다 합쳐도 8시간은 채울 수 없었죠. 대체 내 시간은 어디로 새고 있는 걸까요. 다이어리에는 매일 해야 할 일이 칸을 넘어 적혀있습니다. 괄호에 예상 시간까지 적어뒀고요. 촘촘하게 박음질한 만큼 되도록 다 실행합니다. 놓친 부분은 주말에 다 채우고요.
손목에 있는 워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트를 눌러 수면시간을 봤습니다. 범인은 여기 있었습니다. 저는 대체로 자정을 버티지 못합니다. 오전 7시 반에 일어나지만, 한 시간 정도 낮잠도 잡니다. 사람들의 평균 수면 시간인 8시간을 넘기는 날이 많은 셈이죠.
KTX 승무원의 스케줄은 사무직과는 달랐습니다. 새벽 출근, 새벽 퇴근이 있었고, 밤 10시에 퇴근해서 다시 출근하는 날도 매달 있었으니까요. 부산에서 출발해 막차로 서울에 도착하면 밤 12시. 씻고 누우면 새벽 1시였습니다. 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다시 부산행 첫차에 오르는 날도 흔했죠. 잠을 쪼개어 자는 법에 익숙해야만 했습니다. 깊이 잠들면 일어나지 못할까 봐 걱정했고, 혹시 늦어서 기차를 놓치진 않을지, 승객들보다 늦게 도착하는 일이 생기진 않을지, 근태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지 늘 긴장했죠. 승무원 두 명이 같이 움직이는 스케줄은 그나마 덜했지만, 혼자 움직이는 스케줄이면 예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7년이 넘도록 8시간 동안 한 번도 깨지 않고 자는 날은 드물었습니다. 선잠. 긴장. 그게 내 수면의 기본값이 되어버린 거죠.
임신 기간에도 비슷했습니다. 아이가 편안할 수 있게 왼쪽으로 누워 자는 자세에 적응해야만 했죠. 출산 후, 두세 시간 간격으로 울리는 아이의 울음 신호만 들려도 일어났습니다. 20개월 터울로 태어난 둘째는 특히 잠이 없었습니다. 조리원에서 나온 이후로 새벽 5시면 눈뜨는 아이 곁에 있을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수면이 주는 의미를 제대로 충족하지 못한 사람으로 살아왔습니다.
아이들이 크면서 그 결핍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틈만 나면 잤습니다. 낮잠까지 챙기면서요. KTX에서 일할 때도 역 밖으로 외출은커녕 숙소로 갔습니다. 30분이든 한 시간이든 잠을 자야 내려오는 열차에서 덜 피곤할 테니까요.
그때의 나처럼, 요즘도 일주일에 세 번은 낮잠을 잡니다. 넷플릭스를 보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SNS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바빠죽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며 살고 있었을까요. 적어보기 전까진, 정확히 몰랐습니다. 잠이 범인이었다는 걸요.
하루에 잉여시간 2시간을 어떻게 쓰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지만, 저는 당분간 조금 더 자는 데 그 시간을 쓰고 싶습니다. 대신, 눈뜨고 있는 동안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보려고요. 2시간이라는 양보다 밀도가 더 중요할 때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