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발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신발을 사 모으는 걸 좋아한다. 그것도 조금 특이한 디자인으로. 옷은 심플하게 입는 편이다. 타임이나 마인처럼 모던하고 도시적인 분위기 위주로. 색도 크림, 아이보리, 베이지가 대부분이다. 튀지 않으면서 단정한 쪽으로.
그런데 신발은 다르다. 독특한 디자인, 색, 굽이 있는 걸 선호한다. 타일처럼 각이 진 굽, 꽃그림이 박힌 굽, 세모처럼 뾰족한 굽. 색도 황토색 스웨이드나 하늘색 부츠처럼, 옷장에 없는 계열을 골라 담는다.
문제는 집과 공방 위주만 다니다 보니 신고 갈 데가 없다는 거다. 운전할 때 신기에는 불편하고, 오래 걷기에는 발이 아플 게 뻔하다. 일 년에 한 번 신을까 말까 하다는 걸 알면서도, 또 산다. 신지 않을 신발을 또 채운다. 그러면서도 막상 나갈 때마다 신을 게 없다며 한탄한다.
가끔가다가 신는 날도 있다. “역시.” “그런 건 대체 어디서 사?” “너니까 가능하지.”라는 반응이 오는 걸 알면서도.
올해 들어 독서모임에서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재독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악역인 홍씨 부인 이야기가 나왔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화장을 고치고 덧대면서 얼굴 치장에는 유별나면서, 신발은 왜 늘 더럽냐는 말이었다. 그랬더니 어떤 분이 말했다.
“홍씨가 그랬나요? 아직 그 부분은 안 읽어서 몰랐어요. 그런데 저는 원래 사람들 보면 신발을 먼저 봐요. 신발이 얼마나 깔끔한지 보거든요. 그리고 이상하게 신발에 사람의 진짜 모습이나 감정이 담긴 것 같아서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내 신발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나도 신발에 뭔가를 숨겨두고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신발장을 열 때마다 “신을 게 없다"라고 한숨 쉬면서도, 결국 늘 같은 신발을 꺼내 신는다. 그러면서도 알고리즘이 띄워주는 신발 사진을 보면 또 눌러본다. 안 살 거면서 구경하고, 구경만 하려다가 한 켤레를 마음속에 들여놓는다.
지난주에는 친구가 아울렛에서 샀다며 신고 온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주황 바탕에 고리 모양 무늬가 가득했고, 굽은 낮아 보였다. 나도 일상에 신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시선이 너무 오래 머물렀는지, 친구는 매장에 전화해서 재고를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아직 연락은 없다. 그 신발은 생각보다 빨리 잊혔다.
오늘, 고등학교 친구들과 경주로 벚꽃 구경을 갔다. 여느 때와 같이 베이지 톤으로 단정한 옷을 골랐다. 신발은 흰색에 갈색 테두리가 있는 걸 신고. 심플하면서도 포인트가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