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좁은 건지, 내 세계가 좁은 건지
열흘동안의 치앙마이의 여행에서는, 몇 년 전과 다른 소소한 이벤트들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날들을 꼽자면 한국지인들과 함께한 시간들이다.
출발 전에 신청한 렌터카를 건네주러 회사 사장님이 공항으로 직접 나왔다. 한국인의 환영을 받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했는데, 인상까지 좋으셔서 긴장마저 풀 수 있었다. 렌트를 위한 서류를 주고받는데, 남편이 자꾸 낯익은 얼굴이라고 중얼거렸다. 우리의 사투리를 들으며 사장님이 고향을 물었고, 이내 동네주민임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남편 지인의 지인이었다. 한국이 좁은 건가, 세계가 좁은 건가, 호탕한 웃음을 내쉬며 시원한 바람과 한 몸이 되어 산뜻하게 출발했다. 여행 중간중간 궁금한 점이 있어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해 주셨다.
토요일 저녁에는 식사도 함께 했다. 처음 만나는 분이지만 세 시간이 넘는 시간은 초침이 고장 난 마냥 빠르게 흘러갔다.
5년 전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를 할 때, SNS로 소통을 시작한 이웃이 있다.
내가 아는 아들 둘 엄마 중에 가장 강철 체력을 가진 소유자다. 정신도 건강도 모두.
만날 운명이었을까. 작년에 출간을 앞두고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리자마자, 그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나와 같은 출판사에서 같은 해 봄, 공저로 책을 출간했다며 반갑다 했다. 에세이를 출간하는 수많은 출판사 중 같은 곳에서 출간했다니. 몰라봐서 미안했고, 축하해 줘서 고마웠다. 이번 겨울에 다시 치앙마이로 여행을 간다 했다. 나와 엇갈리는 일정이라 아쉬웠지만, 현지에서라도 만날 수 있었으면 했다. 여행준비하다 막히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말에, 쉽사리 구해지지 않는 렌터카 문제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소개받은 분이, 앞에서 말한 동네주민이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분은 채식주의를 알리고 작가로의 첫 발을 디디기 시작한 필명 '베지감로안'이라고 불리는 작가다. 그분과는 작년 가을. 서울에서 처음 만났다. 2021년 가을. 하브루타 자격증 과정을 취득한 일곱 명과 공저로 책을 출간했었다. 그 경험을 나누고자 2022년 가을. 서울의 한 카페에서 출간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알릴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공저 출간을 계획 중인 그분을 만나게 되었다. 연말에 출간을 했다며, 한 달 전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오셔서 책을 선물해 주셨다. 자녀 두 명을 어엿한 어른이 되도록 키운 작가님의 보조개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과 선한 인상, 그리고 중저음의 목소리가 멋있게 다가왔다. 치앙마이에 한 달 이상 머물 계획이라는 말을 듣고, 거기서 만나자는 막연하지만 짙은 약속을 했다. 여행 중 맞이한 토요일 낮. 숙소에서 십여분 남짓한 위치에 머물고 있는 그분을 찾아가 동네구경도 하고 차도 한잔 했다.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간 터라, 여유시간은 두시 간 남짓했다. 내가 겪는 시간, 과정, 고충을 먼저 살아본 인생선배처럼 편하게 대해주었다. 콩꼬투리 안에 있는 이야깃거리들을 하나 둘 꺼내다 보니, 두 시간은 속사포처럼 줄어들었고 아쉬움을 남기고 헤어졌다.
같은 취미가 있고,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이를, 나의 생활권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난다는 것. 여기서만큼은 서로가 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어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았을까. 자비 없이 흘러가는 시간들은 다음 만남을 정할 수 있는 핑곗거리를 만들어주었다.'여행'이라는 키워드를 넘어 '인간적'이고 '선한' 성품을 가진이들을 타지에서 만났다. 그 추억들이 치앙마이의 쨍하고 강렬한 햇살만큼이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었으면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