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상희 Mar 04. 2022

왜 열심히 살지 않느냐

 나는 작년 12월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올해 1월부터 집에서 쉬고 있다. 어제는 퇴근한 남편이 집에서 쉬는 내게 하루를 어떻게 보냈냐고 물었다. 계획표대로 적당히 보냈다고 말하자, 남편이 왜 열심히 살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고 적당히 살았냐고 말했다. 남편 말의 속뜻은 빨리 돈을 벌어 더 잘 살고 싶은데 왜 도와주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남편은 내가 일을 그만둔 것을 탐탁히 여기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오해한 채 결혼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졸업한 학과와 관련된 일을 10년이 넘게 해왔다. 20대에는 직장을 여기저기 옮기는 바람에 중간에 쉬는 기간도 있었다. 쉬는 기간에는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편하게 쉬었다. 서른되는 해에 남편을 만나고 그 이후로는 쉰 기간이 없었다. 서른 여덟이 될 때까지 안 쉬고 쭉 일했다. 항상 마음속에 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한 채로 억지로 끌려다니듯 일을 해왔다. 

 남편은 일하는 내 모습만 쭉 봐왔다. 남편은 내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직업적으로 성장하는 데 보람을 느끼는 사람인 줄 알았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남편은 형편이 넉넉지 않은 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무능력했고, 어머니는 아팠다. 남편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과외 강사로 돈을 벌어 집에 생활비를 보탰고, 혼자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되자 아버지와 어머니를 분리시켰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자력이 부족한 어머니의 생활비를 꾸준히 댔다.

 나는 남편이 우리 집과 비슷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게 마음에 들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니까 부자는 너무 먼 꿈이라 부자되기 보다는 별일 없는 소소한 하루를 보내는 게 목표인 줄 알았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다행히 이 문제로 우리가 싸우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기에 우리는 너무 서로를 안쓰러워 하는 것 같다. 나도, 그도 척박한 환경에서 힘겹게 자란 서로를 애틋하게 여긴다. 그래서 내가 너무 힘들다고, 일하러 갈 때마다 차라리 교통사고가 나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다음 날 일하러 갈 생각을 하면 죽어야 이 일이 끝날 거 같아서 죽고 싶어진다고, 고백하자 흔쾌히 일을 그만두라고 얘기했을 것이다. 


 그래도 간혹 어제처럼 일이 너무 힘들었던 날은 남편의 마음속에 화가 치미나 보다. 이렇게 혼자 벌어서 어느 세월에 나도 일을 그만둘 수 있을까. 내가 평생 이렇게 힘들게 돈을 벌어야 하나. 남편의 생각도 이해는 간다. 


 남편의 날이 선 왜 열심히 살지 않았냐는 말에 솔직하게 나는 대답했다. 


 “나는 내가 엄마처럼 될까봐 무서워요. 50대에 부자가 된다 한들, 내가 엄마처럼 투석을 하고 배가 나오면 그 돈이 다 무슨 소용이에요. 저는 제 건강 관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요.”


 라고 하자, 남편이 더는 말하지 않았다. 나도 안쓰럽지만, 남편도 안쓰러웠다. 


 아버지는 엄마가 아프기 시작하고 몇 년 지났을 때, “친정에서 더러운 병을 들고 왔다”고 욕을 했다고 한다. 엄마가 해준 얘기인데, 엄마의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지만 그 말을 내게 했을 때의 분위기로 봐서 그런 비슷한 말을 하긴 했던 것 같다. 부부가 서로를 미워하기 시작하면 저런 말도 주고 받는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남편 옆에서 힘을 빼고 편하게 사느라 눈치가 보인다. 간지러워서 사랑한다고는 절대 얘기하지 않지만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틈날 때마다 항상 얘기해줘야겠다. 그러면 또 착한 남편은 괜찮다고, 괜찮다고 얘기해줄 거다. 그 거짓말이 나는 또 고마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은 우리 친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