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을 안 간지 꽤 되었다.
물론 코로나 유행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낭신 때문에 섭취하는 물의 양이 많아서 화장실을 자주 들락날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하루에 대략 3ℓ 넘게 물을 마시는 편이다. 화장실은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왔다갔다 한다. 잘 때는 물의 양을 좀 줄였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또 왕창 마신다. 그래서 극장에 두시간 정도 가만히 앉아서 영화를 보기가 어렵다.
영화를 보기 전 한두 시간 전부터 물을 안 마시다가 영화가 끝나면 물을 많이 마실 수도 있는데 그러자면 4시간 동안 물을 안 마셔야 한다. 오락을 위해서 내 건강을 시험대에 올리고 싶지 않다. 그래도 나는 사실 영화를 좋아한다.
영상물 자체를 좋아한다.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등. 20대 때는 극장에 자주 다녔고, 영화제에 놀러가서 하루에 3편씩 영화를 달아보기도 했다. 그런 날은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는데 그래서 지금 내 콩팥이 이 모양 이 꼴인가 싶기도 하다.
극장에 가지 않는 대신 집에서 잘 보고 있다. 집에서는 잠시 멈춤 버튼을 눌러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물컵을 가득 채울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까 편하다. 눈에 보이는 곳에 고양이, 강아지들이 있으니까 영화를 보다가 잠시 집중도가 떨어졌을 때 마음 한켠에 스물스물 올라오는 미안함도 덜하다. 다낭신 때문에 못하는 것도 생기지만 또 좋게 보면 좋은 것들도 있다.
어제는 영화 〈주디〉를 봤다. 여주인공 르네 젤위거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탄 작품이라 이전부터 기회가 되면 꼭 봐야지, 봐야지 벼르고 있었는데 넷플릭스에 업데이트 되었길래 마침 시간이 나서 봤다. 보면서 통곡을 하는 바람에 남편이 무슨 일이냐고 나와서 의아해하기까지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한 2년 전부터 엄마를 볼 때마다 했던 생각이 있었다.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엄마를 볼 때마다, ‘인생은 참 가혹하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이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참 가혹하다.
누군가에게는 산다는 게 참 구차스런 일이다. 끝나기를 빌어도 끝이 나지 않으니 계속 살아야 한다. 그래서 가혹하다. 구차스러워서 끝내고 싶은데 끝내기 쉽지 않으니.
20대에 엄마에게 표지가 이쁜 고급스런 일기장을 선물했었다. 엄마가 그걸 쓰는지 마는지 관심을 두지 않다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펴봤다. 엄마는 일년에 한 두 편씩 일기를 썼었다. 엄마의 마지막 일기는 한 장을 가득 채우도록, 어지럽게 여기저기 여러 번 쓴 ‘안락사’라는 단어였다. 엄마 스스로도 구차스러워서 끝내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던 듯하다.
나는 죽고 싶은 사람을 왜 굳이 살리려고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이 어떻고 떠드는 걸 보면 당신 인생이 존엄하다고 하여 왜 내 하찮은 인생을 끊낼 수 없는지 궁금증만 생긴다. 산다는 게 참 구질구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