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상평상 Apr 20. 2018

여행의 첫 번째 기술,  불행은 빨리 잊자!

인천공항-파리 드골공항-파리 이비스 버짓 포르테 도를랑

   

인천공항-파리 드골공항-파리 이비스 버짓 포르테 도를랑  

   

11살의 일기     

아빠는 내게 영어를 잘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오늘 들은 아빠 영어는 발음도 이상하고 너무 느렸다. 아빠가 거짓말을 한 걸까?

     

9살의 일기     

게임만 할 수 있다면 비행기는 백만 시간도 탈 수 있을 것 같다. 게임기가 있는 비행기는 너무 좋아!

           





“아빠! 가방에 꽂아뒀던 보온병이 없어졌어요.”


 짐을 두었던 미니버스 뒷자리를 뒤져보았지만 검은색 보온병이 보이지 않았다. 이른 새벽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무사히 도착하는가 싶었는데 그만 배낭 옆에 꽂아뒀던 보온병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호텔 직원이 짐을 올리고 내리는 와중에 분실된 모양이었다.  


따뜻한 물을 넣어두면 하루가 지나도록 온도가 유지되는 까닭에 유난히 아끼던 물건이었다. 아까운 마음에 속이 쓰렸지만 먼 길 떠나기 전 액땜으로 생각하고 얼른 잊기로 했다. 계획한 80일 가까운 여행기간 동안 생길 여러 가지 일들 중 이 정도 일은 나쁜 축에도 끼지 못할 터였다.

 

평일 새벽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흩뿌려진 검정콩 마냥 공항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세 시간이나 일찍 왔는데 설마 제시간에 체크인을 못하는 건 아니겠지?’


급한 마음 비교적 짧아 보이는 자동 발권기 줄에 얼른 달라붙었다. 조금 기다리니 차례가 되었다. 여권을 자동발권기 화면에 갖다 댔다. 하지만 아무리 예약번호를 입력해도 발권기도무지 인식을 하지 못했다.


 ‘예약을 잘못한 걸까?’


E티켓을 꺼내어 눈앞에 들고 아무리 살펴봐도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발권기 옆에 서 있는 안내 담당 직원에게 물을까도 했지만 그쪽은 더욱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녀 앞에도 나와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사람 몇몇이 초조한 표정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다른 기계로 해 봐야겠다.’


하지만  다른 기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빠, 왜 그래요?”

 "아, 아냐."


 ‘이러다 오늘 출발조차 못 하는 거 아냐?’


불길한 예감에 머리털마저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바보처럼 전자티켓을 스크린에 떼었다 붙였다 하고 있는데 한 직원이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녀도 기적을 일으키지못했다. 몇 차례 스캔해도 기계가 반응이 없자 그녀 또한 고개를 갸우뚱했다. 불길한 예감이 초조한 가슴속을 마구 휘젓기 시작했다.


 “잠시 이곳에서 기다려주세요.”


 그녀가 내 티켓을 들고선 황급히 다른 직원이 있는 곳으로 사라졌다.


 “아빠, 뭐 잘못된 거예요?”


 “우리 유럽 못 가는 거야?”


 초조한 내 마음을 읽었는지 아이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한 마디씩 했다.


 “조금만 기다려보자.”


 잠시 후 그녀가 돌아왔다. 천만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웃고 있었다.


 “알아봤더니 이 티켓은 공동운항 편이네요. 고객님은 저희 항공 카운터가 아니라 에어프랑스 카운터로 가셔야 합니다.  에어프랑스 카운터는 저쪽입니다.”

 

'분명 대한항공 홈페이지에서 예약했는데'

 

공연히 시간과 노력을 허비한 것 같은 마음에 짜증이 올라왔지만, 막상 한산한 에어프랑스 항공사의 체크인 창구를 보니 그런 마음은 눈 녹듯 녹아내렸다.


반면, 대한항공 쪽 카운터는 여전히 길고도 복잡한 줄이 지그재그로 겹쳐져 흡사 수십 마리의 뱀들이 서로 뒤엉켜 다투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거의 12시간 넘는 지루한 비행 끝에 파리에 도착했다. 이전 여행에서 조를 받 듯 심사를 받았던 영국의 그것과 달리 프랑스의 입국심사는 신속하고도 간단했다. 입국심사대를 벗어난 우리는 짐 찾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현지 시간은 오후 두 시였다.  눈꺼풀이 감겨오기 시작했다. 서머타임 실시 전인 프랑스와 우리의 시차는 여덟 시간, 한국시간으로 밤 10시가 넘어가니 졸릴 때도 되었다. 비행기에서 미리 자둔 것은 그다지 소용없었다. 9살 혁우는 눈을 껌뻑거리며 졸고 있었다.


"아빠, 언제 집에 가?"


졸려서 짜증을 내던 혁우는 벌써부터 집에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 어린애를 데리고 앞으로 어떻게 여행을 하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짐을 찾은 우리는  시내로 들어가는 기차 노선인 rer b선을 탔다. 거리의 예술가들이 솜씨를 부린 그라피티로 장식된 기차의 외관과 달리 낡은 기차의 객실 내부는 기본적인 청소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지저분한 모습이었다. 객실의 시설들은 중간중간 페인트 칠이 벗겨져 녹까지 슬어있었다. 안전에 대한 염려조차 되는 풍경이었다.


객실 바닥으로 누군가 버려 놓은 1회용 플라스틱 컵이 남은 커피를 토해내기 직전의 모습으로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기차의 요동에 맞춰 춤이라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선진국으로 알던 프랑스의 기차가 이토록 허름하고 지저분한 것에 놀라는 눈치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영국의 지하철 튜브도 타보았지만 이것과 비교하면 신상이나 다름없었다. 


 숙소에 도착했다. 직원에게 와이파이 잘되는 방으로 달라고 특별히 부탁을 했다. 직원은 유쾌하게 웃으며 자기네는 모든 방이 와이파이가 잘되니 걱정 말라고 한다. 불안했지만 그의 미소를 믿을 수밖에는 없었다. 방에 들어가자 갑자기 피로가 밀려왔다. 침대에 누웠다.


  “드디어 도착했다.”

몸안에 갇혀있던 모든 긴장과 피로가 유체 이탈하는 영혼처럼 하늘로 피어올랐다. 이대로 침대 속으로 가라앉을  수 있다면 그러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곳 시간으로 6시가 조금 넘었으니 한국시간으로는 새벽 2시, 한국을 떠난 지 벌써 20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대로 뻗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아이들을 모른 체할 순 없었다. 혼자 온 여행이었다면 한 끼 정도는 거르잤겠지만 아이들과의 여행인지라 그럴 수 없었다.


 숙소에서 나와 사과, 방울토마토 등의 과일과 시리얼을 사고서는 서둘러 돌아왔다. 숙소에 남겨진 아이들이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시리얼을 프랑스 우유에 말아 먹인 후, 세면대에서 속옷이랑 양말 빨래를 했다. 방이 좁았던 까닭에 빨래를 하며 생기는 물방울이 아이들이 놀고 있는 침대 쪽으로 자꾸만 튀어 올랐다.


‘물가 비싼 파리에서 1박에 8만 원 하는 방이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애써 마음을 달래 봤지만 가슴 한 구석에서 불안감이 피어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여행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