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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pr 21. 2018

불시착한 우주선 노트르담호

뤽상부르 정원- 팡테옹- 노트르담 대성당- 카루젤 개선문- 튈레르 정원

불시착한 우주선 노트르담호     

뤽상부르 정원- 팡테옹- 노트르담 대성당- 카루젤 개선문- 튈레르 정원          


11살의 일기

아빠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우주선을 닮았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혹시 아빠는 우리의 관심을 끌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9살의 일기

프랑스 사람들은 모두 예쁘고 잘생긴 것 같다. 나중에 크면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     




부르주아 - '성 안에 사는 사람들'


몇 방울의 비가 콧등을 두드렸다. 비를 피할 곳을 찾아 황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왼쪽으로 커다란 나무들이 모여 키 재기를 하고 있는 울창한 숲이 보였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원 방향으로 달렸다. '뤽상부르 정원'이었다. 프랑스어로는 뤽상부르지만 영어식으로 읽으면 실제 나라 이름인 룩셈부르크와 같은 이름이다.


뤽상부르 정원은 원래 궁전의 정원이었다가 지금은 공원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영국의 ‘에딘버러’, 독일의 ‘함부르크’,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까지 마지막에 붙는 ‘버러’, ‘부르크’, ‘부르’는 모두 성이라는 의미이다. 중세 성곽도시에서 출발한 기원이 도시의 이름에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어의 ‘부르(BOURG)’는 후에 시민계급을 뜻하는 '부르주아'의 어원이 되는데 '부르주아'는 ‘성안에 사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안전한 성안에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중세시대에서는 대단한 특권이었던 모양이다.


비 오는 흐린 날씨인지라 공원의 화사함을 느끼기는 힘들었지만 겨우내 얼었던 땅에서 피어오르는 촉촉한 내음이 이른 봄의 싱그러움을 후각으로 전해 오고 있었다.   

  

조금은 스산한 모습의 뤽상부르 공원의 겨울모습

 

공원을 지나 학생거리를 따라 올라가다 보니 그 유명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소르본 대학이 보였다

 

“어때 이런 곳에서 공부하고 싶지 않아? ”

“건물이 너무 오래돼서 싫어요. ”


일우는 나이를 많이 먹은 건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난 오고 싶은데. 헤헤 ”


혁우가 싱글벙글 웃는다.


“프랑스 여자랑 결혼할 거예요.”


둘째 며느리는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어쩌면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서는 국제결혼은 기본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저게 그 유명한 노트르담 성당이야.”


고개를 돌려 말을 건네는데 아이들이 사라지고 없다.


녀석들은 어느새 한 장난감 가게의 커다란 창에 붙어서는 캡틴 아메리카와 스타워즈 제국군의 피겨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하는 수 없이 가게에 들어갔다. 영화 설국열차의 원작이 프랑스 작품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프랑스 만화에 대한 기대감도 작용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이곳의 서가 역시 프랑스 만화는 별로 없었다. 서가의 대부분에는 미국이나 일본의 만화들이 채워져 있었다. 미국의 거대 자본은 세계화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각국의 문화생태계마저 파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파괴된 폐허 위에 그들의 슈퍼 히어로들을 자경단으로 올려놓았다. 오랜 세월 미국과 전 세계를 지켜왔던 슈퍼맨과 캡틴 아메리카는 이제 현실세계에서도 전 세계를 수호하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왠지 그들의 얼굴은 그들이 여태까지 맞서 싸워왔던 악당들의 그것과 묘하게 닮아있었다.

 

아침에 우산을 챙겨 나오지 못했다. 덕분에 비가 올 때에는 건물에 숨어 있다가 비가 그치면 걸어가기를 몇 번씩 반복했다. 센 강을 마주한 짧은 다리를 건너니 마침내 노트르담 대성당에 도착했다.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시테 섬은 서울의 노들 섬처럼 강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섬이다. 길이는 약 914m고 너비는 약 183m라고 하니 약12만 ㎡인 노들 섬과도 비슷한 크기다. 로마의 티베르 강에도 이 보다는 작지만 비슷한 형태의 티베르 섬이 있다.


이 시테 섬은 바로 파리라는 도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고대부터 살던 켈트족을 로마군이 정복하면서 시테 섬에서 센 강 양 방향으로 도시가 확장되었다. 하지만, 게르만 족의 침입으로 도시규모는 다시 섬 안 쪽으로 줄어들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파리는 중세도시가 갖추어야 할 두 가지 요소인 왕궁과 대성당 모두를 갖추게 되었다. 궁전이 나중에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궁전 건물은 재판소가 되었다. 섬은 대략 2킬로미터 반경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지금의 루브르 박물관 자리는 당시 서쪽 성벽 건너에 있는 요새였다. 루브르 박물관 지하에 가면 그때의 유적을 직접 볼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당시 사람들이 시테 섬을 연결하는 남과 북의 두 다리 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는 사실이다. 피렌체에 있는 베키오 다리를 떠올리면 상상하기 쉬울 듯하다. 그 시절 시테 섬을 잇는 다리 위에는 서민들의 집이 통행로를 사이에 두고 빽빽하게 놓여 있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서민들의 공간은 그들의 주머니 사정만큼이나 협소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전쟁이나 도적의 습격, 굶주림 같은 치명적인 피해를 덜 입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안전한 성 안에 들어와 살아야 했기에 좁디좁은 주거공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흐린 날씨에도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가득한 노트르담 대성당

 

노트르담 대성당은 정면과 후면의 모습이 매우 다르다. 정면은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이 나란히 붙어있는 것처럼 다소 밋밋하게 보이는데 반해 후면은 건물에 붙어있는 날개 모양의 플라잉 버트리스 때문에 마치 발사 직전의 우주선처럼 보인다.


특히, 밤에 센강 유람선을 타고 가다 보면, 그 모습이 더욱 분명하다. 마치 금방이라도 불시착한 외계의 우주선이 아름다운 섬광을 번쩍이며 이륙할 것만 같다. 날개 모양의 플라잉 버트리스는 고딕 양식의 특징이다. 커다란 창이 필요한 스테인드글라스를 위해 건물 벽을 지탱하기 위한 내부의 구조물을 건물 바깥으로 내보낸 것이라고 한다.

밤에  센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보면 그 우주선 같은 이미지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고딕 양식에서는 길게 낸 유리창에 성경의 내용을 그린 그림을 새긴 스테인드글라스를 장식한다. 이는 글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성서의 말씀을 가르쳐주기 위함이었다. 특히, 설교가 진행되는 동쪽 벽면의 유리창에는 ‘장미창’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장미 모양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해 사제가 집도할 때 신비롭고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영화나 TV 같은 시각 매체가 없었던 그 시대에 노트르담 성당의 아름다운 장미창을 통해서 전해지는 그 황홀하고 장엄한 시각효과는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장미창으로 아침의 햇살이 들어왔다면 좀 더 장엄하고 눈부셨을 듯하다.
노트르담 대성당 방명록에 이름을 남긴 형제들

  

몇 년 전까지 자물쇠가 주렁주렁 달려있었지만 지금은 붕괴의 위험으로 모두 철거된 퐁데자르 즉 ‘예술의 다리[Pont des Arts]’에 도착했다. 퐁데자르는 돌로 만들어진 유명한 퐁네프와는 다르게 철로 만든 다리이다. 19세기 초반 통행료를 징수하는 상류층 사람들만을 위한 산책로로 만들어져 지금도 센 강의 다리 중 유일하게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자 전용 다리다. 철거된 자물쇠들은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시민들에게 되팔거나 고철로 재활용해 그 수익금을 난민 구호에 썼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은 연인들을 이어줬던 자물쇠를 세상을 이어주는 사랑으로 만들었다. 과연, 낭만과 사랑의 도시 파리답다는 생각을 했다.

루브르의 피라미드를 살짝 들어보는 혁우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했다. 내일 관람할 예정이라 오늘은 그냥 겉에만 보기로 했다. 루브르 박물관 앞에 있는 카루젤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에투알 개선문을 짓기 전에 만든 작은 개선문이다. 원래는 베네치아에서 약탈해 온 네 마리의 황금빛 말 동상이 위에 놓여 있었으나 베네치아에 반환된 후, 지금은 말을 탄 황금빛 여신과 병사의 동상으로 바뀌어 있다.


카루젤 개선문과 이어진 튈르리 정원에는 많은 시민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아마도 비가 그치면서 구름 사이로 드러난 모처럼의 햇살을 쐬기 위함인 듯했다. 분수대를 둘러싼 벤치에 우리도 이곳 시민들 모양으로 앉았다. 힘차게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들이 답답하고 메말랐던 가슴을 두드리는 듯했다. 잊고 있던 마음속 감성들이 하나둘씩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이 얼마만의 여유인가?


“아빠! 심심해요. 빨리 가요.”


아이들과의 여행에서 혼자만의 낭만은 사치였다.

     

아이들 손에 이끌린 나는 다시 내키지 않은 발을 내디뎠다. 잠시 후, 오벨리스크가 있는 콩코드 광장에 다다랐다. 도시 한복판에 있기에는 비현실적으로 커 보이는 거대한 관람차가 햇살 가득한 새파란 하늘 위를 무심하게 돌고 있었다. 그 속도가 너무 느린 까닭에 마치 누군가 재생 중 정지 버튼을 누른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내 여행의 시간도 함께 정지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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