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바다 건너 이집트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뽑혀 온 오벨리스크가콩코르드 광장 한가운데 외로움을 딛고서 고고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저 오래된 이집트의 돌은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프랑스 대혁명으로 처형된 사람들의 피가 개울처럼 흐르던 단두대가 있던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멀리 에트왈 개선문을 가운데 두고 플라타너스 나무와 마로니에 나무들이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도로 양 옆으로 도열해 있었다. 그 유명한 샹젤리제 거리였다.
“여기가 샹젤리제 거리야.”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오 샹젤리제’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에는 좀 아이러니한 사연이 있다. 발랄한 샹송의 대표 격 같은 느낌의 이곡은 실제로는 프랑스 노래가 아니라 영국의 노래였다. 원제는 '워털루 로드(waterlooroad)'로 같은 이름의 런던 거리를 소재로 한 곡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 노래가 유명하게 된 것은 '조 다싱(joe dassin)'이라는 프랑스 가수가 '워털루 로드'란 원래의 이름 대신 '샹젤리제'란 제목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면서부터였다. 이후 '오 샹젤리제'는 세계적으로 대 히트를 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워털루는 샹젤리제 거리의 개선문을 만든 나폴레옹의 군대가 영국군에게 대패했던 벨기에의 지역 이름이기도 했다. 만약, 죽은 나폴레옹이 개선문 앞 거리에 워털루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노래가 계속 울려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샹젤리제의 명품 가게 따위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 아이들 덕분에 빠르게 개선문까지 도착하는가 싶었는데 뜻하지 아니한 곳에서 복병을 만나고 말았다. 바로 아이 가진 모든 부모들의 '개미지옥'인 장난감 가게 ‘디즈니 스토어’였다. 아이들은 디즈니스토어를 보자마자 몽유병 환자처럼 뛰어들어 가더니매장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이들이 양손에 장난감 몇 개씩을 집어 들고 나타났다. 그러더니 내게 불쌍하고 애절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었다.
“장난감을 순례길 내내 들고 다닐 순 없잖아?”
“들고 다닐 수 있어요. 자신 있어요.”
“자신 있다는데 왜 우리를 못 믿어요.”
장난감에 정신이 마비된 아이들의 공격을 막는 일은 힘든 일이었다. 이성적인 설득에 실패한 나는 결국 아이들을 강제로 끌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욕구가 눈앞에서 좌절된 아이들의 얼굴은 불만으로 가득해 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과연 이런 아이들과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개선문을 들르고 나서 에펠탑으로 향했다. 에펠탑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해 잠시 헤맸다. 덕분에 뜻하지 않게 프랑스 한국문화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들어가서 살펴봐도 되나요?”
프랑스 한국문화원 앞에서의 형제들
“예 물론이죠.”
따뜻한 미소로 응대해주는 문화원 직원의 미소가 반갑고 고마웠다. 지하로 내려가니 어색한 발음으로 우리말을 따라 하는 외국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프랑스 사람들을 위한 한국어 강좌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가슴속에서 묘한 뿌듯한 느낌이 올라왔다.
"아빠, 책 좀 볼게요!"
아이들이 도서관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그곳에서 만화책을 읽는 동안 나는 복도 한쪽 벽면에 가득 붙어있는 한글로 된 포스트잇들을 하나하나씩 읽어갔다. 정성 가득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적혀있는 한글에서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곧 한국 첫 여행 할 수 있게 해주세용!”이라고 적혀 있는 포스트잇이 눈에 띄었다. 우리가 그토록 방문해 보고 싶어 하는 낭만의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 역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이처럼 오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나라는 우리들의 생각보다 훨씬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곳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 파리 시민의 소망이 꼭 이루어지길
프랑스 문화원을 나와 에펠탑으로 향했다. 강 건너에 뿌려진 유람선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드디어 에펠탑에 도착했다. 에펠탑의 설치를 반대했던 프랑스의 소설가 '모파상'은 정작 자신의 점심 식사를 에펠탑 2층 식당에서 즐겨 먹곤 했다고 한다. 이유인 즉, 파리 시내에서 흉물스러운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장소라는 까닭이었다. 어쩌면 모파상은 실은 에펠탑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싫어했던 이성과 계속 만나면서 차츰 좋아하게 된 경우처럼 말이다. 애초에 설치를 반대했기에 말로는 싫다고 하면서 계속 속마음을 감춘 것일지도 몰랐다.
매표소의 줄들이 너무 길어 그나마 짧아 보이는 줄에 붙어서 표를 끊었다. 알고 보니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만 걸어 올라가는 입장권이었다. 어쩐지 사람도 없고 저렴하다 싶었다.
“내가 먼저 올라갈 거야.”
“해보시든지!”
하루 종일 걸어서 지쳤을 법도 한데 힘든 기색도 없이 성큼성큼 뛰어 올라가는 형제들이 대견하고 고마웠다. 문득 아까 장난감을 사주지 못한 일이 미안해졌다.
에펠탑의 레이저쇼를 보기 위해 맞은편 트로카데로 광장으로 이동했다. 에펠탑을 감싸고 있는 수 억 개의 전구에는 아직 불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 갑자기 혁우가 짜증을 내기 시작하더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쉽게 시차에 적응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다.
하는 수 없이 혁우를 가슴에 안아야 했다. 삼십 분 정도 기다리자 전구에 하나둘씩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에펠탑이 천천히 화장을 하며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화장실 이용 TIP
최근 공공 화장실의 숫자가 좀 늘어났다고 하지만 유럽에서 무료 화장실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인 경우, 미리 준비를 해두지 않으면 화장실을 못 찾아 난감한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다. 우리는 백화점이나 기차역 같은 곳에서 무료 화장실이 눈에 띄면 용변이 급하든 안 급하든 무조건 아이들과 함께 볼 일을 보았다. 그렇게 미리 처리해두어야 화장실을 발견할 수 없는 곳에서도 그나마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로고가 엉덩이를 닮은 이유로 형제들이 농담 삼아 '엉덩이 집'이라고 불렀던 맥도널드는 고맙게도 무료 화장실을 제공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므로 관광지 부근 맥도널드 위치를 잘 파악해두는 것 역시 필요하다. 요즘은 맥도널드도 화장실에 번호 키를 다는 추세인데, 번호키가 설치된 경우에는 저렴한 커피 한 잔을 구입한 후 영수증에 찍힌 번호를 누르고 이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