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세트에 그런 함정이 있을 줄이야? 어린이 세트 선물로 책을 주는 건 반칙이다. 특히나 내가 읽을 수도 없는 프랑스 책을 주는 건 더더욱 말이다. 햄버거도 조금밖에 못 먹고 오늘은 정말 억울한 날이다.
9살의 일기
어린이 세트를 고르지 않기를 정말 잘했다. 아침에 나한테 화를 냈던 형이 벌을 받았다. 정말 통쾌한 날이다.
“다 준비됐어?”
“잠깐만요.”
“뭐 챙기는데?”
“장난감이요.”
“가지고 가도 놀데도 없는데 뭐 하러 가지고 가?”
“전철에서 놀려 구요. 야! 너 어제 빌려준 장난감 어디에 둔 거야?”
“형 가방에 놨는데.”
“없단 말이야! 찾아내!”
“응? 거기다 분명히 뒀는데?”
“너 그거 안 찾아내면 앞으로 절대 장난감 안 빌려준다.”
“아이씨 형은 왜 맨 날 나한테만 화내.”
“네가 맨 날 빌려가서 제자리에 안 갖다 놓으니까 그렇지!”
“너희들 자꾸 싸우면 둘 다 혼난다!”
한국에서 수없이 반복되었던 장면이 거의 만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 파리에서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었다. 되도록 아이들 싸움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던 나였지만 여행 스트레스 때문인지 평소보다 말투가 과격해졌다.
유레일패스를 사면서 사은품으로 받았던 파리 지하철 전철표인 카르네를 사용 개시했다. 교통비가 아깝다고 계속 걸어만 다니다가는 정작 여행할 체력마저 갉아먹어 전체 여정에 마이너스가 될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앙베르(anvers) 역에 내려 몽마르트르 언덕을 향해 올라갔다. 19세기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바닥으로 떨어진 국민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만들었다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아침 햇살에 하얀 몸을 빛내며 우리를 굽어보고 있었다. 3년 전에 왔을 때만 해도 소매치기와 흑인 강매꾼들이 우글우글했었는데 오늘은 테러 단속을 위해 배치된 경찰들 때문인지 흑인 서 너 명 정도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3년 전에 비해 호객꾼들이 많이 줄어든 몽마르트르 언덕
사크레쾨르 대성당으로 올라가는 길옆에 놓인 회전목마 앞에 아이들이 멈추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말들을 따라 아이들의 마음도 함께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면 바로 태워 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할 것 같았다. 한시라도 빨리 최면에 빠지기 전에 주문을 외쳐야 했다.
"런던 가면 레고랜드 가서 레고 장난감 사줄게."
다행히 아이들은 나의 말에 금세 정신을 차렸다.
"아빠 꼭 사줘야 해요."
아이들은 오래된 채권자인 양 당당히 요구했다.
성당 앞 광장에 울려 퍼지는 길거리악사의 타이타닉 주제곡 “ my hearts will go on"의 감미로운 하프 연주가 속삭이듯 귀에 감겼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검문검색을 마치고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황금빛 천장 한가운데 놓인 예수님이 양팔을 십자가처럼 벌린 체 방문하는 사람들을 하나 둘 맞이해 주고 있었다. 성당 곳곳에 놓인 노랗고 빨간 촛불들의 온화한 기운이 기독교 신자도 아닌 나조차도 기도를 하고 싶게 만들었다.
감미로운 하프 연주가 예술의 언덕의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아빠 기념주화 사줘요.”
“밖에 다니는 꼬마기차 타고 싶어요.”
아이들은 이런 성당의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사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성당에 왔으니 모두 기도해볼까?"
"아빠는 성당도 안 다니면서."
하는 수 없이 조용히 혼자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원하는 물건을 아이들에게 마음껏 사줄 수 있는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대성당을 내려와 화가의 거리 ‘데르트르 광장’에 멈춰 섰다. 카페들이 둘러싼 광장에 캔버스를 펼치고 앉은 화가들이 저마다의 작품에 열중하고 있었다. 몇몇은 관광객들과 그림 값을 놓고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 고흐도 세잔도 피카소도 한 때는 이곳에서 이렇게 그림을 그렸을 터였다. 그렇게 상상하니 눈앞의 화가들이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다. 영화 속 장면처럼 나를 중심으로 광장의 풍경이 빠른 속도로 돌아가더니 그들의 모습이 모두 고흐와 피카소 같은 유명한 화가들로 바뀌었다.
하지만 잠깐의 상상은 왁자한 소리에 이내 산산조각 나 버리고 말았다. 삽시간에 나타난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 덕분에 고요했던 광장은 시장통으로 바뀌고 말았다. 우리는 그들을 피해 도망치듯 광장을 빠져나왔다.
비탈진 길을 내려와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섰다. 색색의 꽃들로 장식된 꽃집부터 중국요리를 전문으로 파는 식당까지 골목 양 옆으로 다양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몽마르트르 묘지로 들어서는가 싶었는데 지도와는 다른 골목이 튀어나왔다. 다시 길치병이 도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한참을 길을 헤매다 간신히 몽마르트르에서 제일 번화하다는 클리시 거리로 빠져나왔다. 풍차 날개가 펼쳐 있는 낯익은 빨간 건물을 발견했다. 그 유명한 물랭루주였다.
채석장이 있던 자리인 맞은편 블랑쉐 광장에서 관광객들이 립스틱처럼 선명한 빨간색 풍차 건물을 배경으로 즐겁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요즘도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쇼를 공연한다고는 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온 내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배고파요.”
“아빠, 밥은 먹고 여행합시다.”
여행을 오니 평소보다 부쩍 식욕이 왕성해진 형제들이었다.
물랭루주 옆에 붙어있는 프랑스 패스트푸드점 ‘quick’에 들어가 어린이 세트 하나와 햄버거 세트 두 개를 시켰다. 일우는 어린이 세트를 주문하면 맥도널드처럼 장난감이 선물로 나올 것을 기대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린이 세트 선물은 장난감이 아닌 프랑스어가 쓰인 만화책이었다. 일우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실망 가득한 얼굴로 몇 페이지 걷어보더니 책을 바로 자기 가방에 집어넣었다.
“ 순례길 가면 가방도 무거울 텐데 읽지도 못하는 책 여기에 두고 가면 안 될까?”
일우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버리기는 또 아까웠던 모양이다.
빨간색이 인상적인 물랭루주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했다. 입장권 줄이 너무 길어 우선 오디오 가이드부터 빌리기로 하고 오디오 가이드 줄에 섰다. 하지만 오디오 가이드 이용권인 줄 알고 구입한 티켓은 입장권이었다. 어린이는 입장료가 무료였던 까닭에 굳이 어린이 표는 구입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분명히 어린이 두 명이라고 이야기했음에도 성인 입장권 3장을 준 매표소 직원이이해가 되지 않았다. 환불에 관한 문의를 하기 위해 인포메이션 센터로 갔다. 팔짱을 낀 채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직원이 내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환불은 안 된다며 잘라 말했다. 내 이야기를 오해한 것 같아 다시 한번 이야기했으나 똑같은 대답만이 들려왔다. 방금 구입한 티켓을 환불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처음 구입했던 창구로 가 줄을 섰다. 마침내게 표를 팔았던 직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니 의외로 흔쾌히 환불을 해주었다. 아마 처음 표를 살 때 그녀와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았다. 그런데 인포메이션 센터 직원은 왜 그렇게 단호하게 안된다라고만 말했을까?
어쨌든 여행지에서 곤란한 상황에 처할 때는 되도록 여러 사람에게 물어야 한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 아니 이건 여행에서 뿐 아니라 인생 전체에 적용되는 법칙일지도 몰랐다.
오디오 가이드 대여 장소는 각 관 출입구 옆에 별도의 창구에 마련되어 있었다. 표를 따로 구매할 필요는 없는 대신에 신분증을 맡기고 결재하면 바로 대여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닌텐도 게임기로 만든 오디오 가이드가 나로서는 조작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평소 게임에 익숙했던 아이들은 나와는 다르게 게임을 즐기듯 능숙하게 조작했다. 결국 사용을 포기한 나는 일우의 안내를 따라 루브르 유물들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쉴리 관으로 들어가 그 유명한 ‘밀로의 비너스’와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보고 ‘스핑크스’ 같은 고대 이집트 유물들과 ‘함무라비 법전’과 ‘라마수 석상’ 등의 바빌론의 유물들을 관람했다.
드농관으로 넘어가서는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과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감상했다. 솔직히 모나리자는 감상을 했다기보다 인파를 뚫고 들어가 인증샷만 간신히 찍고 오는 정도였다.
엄청난 크기의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이 인증샷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파를 뚫었는지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박물관을 나섰다. 한국에서 유레일패스를 구입할 때 사은품으로 받았던 바토무슈 유람선을 타러 갈 계획이었으나 아이들이 너무 지쳐있어 포기해야 했다. 티켓이 아까웠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억지로 다그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휴대폰 만보계를 보니 어제에 이어 오늘도 3만보를 돌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