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최고의 반찬!

브뤼셀- 런던

by 옥상평상

11살 일기

드디어 영국에 왔다. 이제 레고랜드에 가는 일만 남았다.


9살 일기

레고랜드에 가면 무슨 레고를 사지?




유로스타는 영국의 도버와 프랑스의 칼레 사이에 위치한 도버해협을 수중으로 가로지르는 국제열차이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프랑스 쪽에서는 도버해협을 칼레 해협이라고 부른다. 프랑스의 유명한 조각가 오귀스트 로뎅의 작품 '칼레의 시민'에 나오는 칼레가 바로 이 도시이다. '칼레의 시민'은 영국 왕 에드워드 3세가 칼레를 점령했을 때 다른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나선 6명의 시민대표를 기리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

로뎅의 조각 '칼레의 시민들'(출처:Wikimedia Commons)

유로스타를 타기 위해선 공항 검색대와 같은 엄격한 검색 시스템과 입국 심사를 마쳐야만 했다. 영국의 입국심사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비교적 간단했던 프랑스의 입국심사와는 다르게 숙소의 위치나 여행 목적 등을 구체적으로 물어가며 꽤나 긴 심사를 했다. 길다고 해 봐야 5분 정도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무표정한 얼굴에 연이은 질문은 꽤 긴장을 하게 만들었다. 마치 수사기관 같은 데서 취조를 받는 기분이랄까?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공무원들은 불친절했다. 프랑스에서 만났던 지인 중 한 분은 유럽 사람들 특히, 프랑스 사람들은 친절 같은 부가적인 서비스보다 본질적인 서비스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며 애써 그들을 감싸는 이야기를 해줬다. 본질 이외의 것은 해줄 생각도 없을뿐더러 원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물론 친절을 너무 강요하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적당한 정도의 친절은 자칫 경직되기 쉬운 사회생활에 따뜻한 윤활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유럽에 와서 보니 한국에서 그동안 받아왔던 친절한 서비스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엎드려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때때로 어떤 것들은 멀리 떨어져서 볼 때 그 가치를 확실히 알 수 있는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긴장되었던 입국심사대를 무사히 통과한 후 탑승 대기 공간에 짐을 내려놓았다. 그제야 배가 고파왔다. 미뤄둔 아침식사를 위해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사러 갔다. 따뜻한 커피와 샌드위치를 입안 가득 베어 물고 앉아 전광판에 우리가 탑승할 열차가 표시되길 기다렸다. 드디어, 전광판의 열차 플랫폼 표시에 불이 들어왔다. 사람들이 질서 정연하게 열차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유로스타 객실의 좌석이 좁다는 이야기를 봐서 많이 불안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내 옆자리가 비어있었다. 나는 모처럼의 행운을 만끽하며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자세로 바다 밑을 가로질러 영국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맡겼다.

아침 일찍 서둘러 나와 피곤했던 탓일까?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영국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 여행의 종착지이자, 한 세기 가까이 세계의 4분의 1을 지배하며 호령했던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고향에 드디어 도착한 것이었다.


"와! 드디어 레고랜드에 갈 수 있다~"

"아빠 해리포터 스튜디오도 가면 안 돼요?"


역사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영국은 그냥 해리포터와 레고랜드가 있는 나라였.


숙소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지하철 승차권을 구입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일우와 혁우 모두 12세 이하였던 까닭에 런던의 교통비는 무료였다. 하지만 성인인 나는 비싼 런던의 교통비 때문에 할인기능이 제공되는 교통카드를 반드시 구입해야 했다. 간편한 충전식 교통카드인 오이스터 카드를 구입할지 관광지 입장료 할인 기능이 있는 트래블 카드를 사야 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나름 힘든 고민 끝에 결국 트래블 카드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관광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한 명의 요금으로 두 명의 입장도 가능한 2 for 1 서비스를 제공했던 트래블 카드의 장점이 결정에 가장 크게 작용했다.


트래블카드는 자동발권기가 아닌 창구에서 직접 구입해야 했다. 세인트 판크라스 역의 승차권 매표창구를 찾아갔다. 이곳에서 트래블카드를 구입할 수 있는지 묻자 무표정한 흑인 여자 직원이 사무적이고도 빠른 영어로 대답을 했다. 그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다시 물었지만, 그녀는 한결 귀찮다는 표정으로 속사포 같은 랩을 내뱉었다. 한번 더 물어보기가 민망했던 나는 일반 상점도 아닌 기차 매표소에서 사기를 치진 않겠지 하는 마음에 넉넉하게 100파운드짜리 지폐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줬다. 그녀는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거스름돈과 트래블 카드를 내게 던지듯 건넸다. 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는 중년의 동양인 남자에게만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만난 입국심사대의 직원부터 이 매표소 직원까지 영국의 공무원들은 유난히 불친절했다.


원래 시내권인 2 존(zone)까지를 커버하는 7일짜리 트래블 카드의 가격은 33파운드 정도였지만, 우리 숙소가 위치한 컬리어스 우드(COLLIERS WOOD)는 3 존(zone)으로 43파운드를 내야 했다. 하지만,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에서 7만 원이 안 되는 돈으로 3 부자의 일주일치 교통비를 해결하는 것이었기에 더 이상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이로써 런던 여행에서 제일 걱정했던 숙소와 교통비가 해결되었다. 홀가분한 기분에 그제야 긴장이 풀려왔다.

“아빠 전철이 왜 이렇게 작아요?”

“장난감 같다.”

아이들이 지하철 승강장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오는 ‘튜브(Tube)'라고 불리는 작고 알록달록한 런던의 지하철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이 튜브를 타고 이동할 첫 목적지를 '런던 브릿지'로 정했다.

템즈강의 모습( 멀리 타워브리지가 보인다.)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Falling down, falling down"


런던 다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내용의 가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흥겨운 멜로디의 노래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을 흥얼거리며 런던 브릿지역에 내렸다.

“아빠 내가 생각하던 런던 브릿지가 아닌데요?”

“런던 브릿지는 다리가 막 올라가고 내려가는 거 아닌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 역시 그제야 알게 되었다. 아이들도 나도 모두 런던 브릿지를 타워브릿지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런던 브릿지로 착각했던 다리는 배가 지나갈 때 다리가 올라가는 도개교 형태의 타워브릿지였고, 이곳 런던 브릿지는 그냥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일반 형태의 석조 다리였던 것이었다.


길가 푸드트럭에서 ‘피시 앤 칩스’를 팔고 있었다.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해서 ‘피시 앤 칩스’를 사주었다. 새벽부터 움직여 허기가 져서였을까? 이건 내가 몇 해 전 이 런던에서 먹었던 맹숭맹숭한 피시엔 칩스의 맛이 아니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던 직원이 대충대충 만들어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간이 밴 탱탱한 대구살 튀김은 쫀득쫀득하니 맛이 있었다. 아이들 역시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빠, 또 사주면 안 돼요?"


역시 최고의 반찬은 시장이었다. 템즈강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하기 짝이 없었다.

예상외로 맛있었던 푸드트럭의 피시 앤 칩스



2017.4.21.브뤼셀-런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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