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잘했어."

빅토리아 역- 레고랜드- 빅토리아 역

by 옥상평상

11살 일기

드디어 레고랜드에 왔다. 모든 게 다 레고로 만들어진 나라였다. 신기했다. 하지만 이제 며칠 있으면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니 아쉬웠다. 마트에서 계산할 때 아빠를 도와줬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9살 일기

운전면허를 땄다. 한국에 돌아가면 엄마 차를 운전해 봐야지.



런던에서 서쪽에 있는 레고랜드로 가기 위해서는 빅토리아 역에서 버스를 타야 했다. 오늘은 어제 구입했던 트래블 카드로 2 for 1 할인을 받을 예정이었다. 두 명분의 자유이용권을 구입하면 한 명을 무료로 이용하게 해주는 제도였다. 교통권을 오이스터 카드가 아닌 트래블 카드로 구입한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빅토리아 역사에서 빠져나와 그린라인 버스 정류소로 향했다. 정류소 앞으로 레고랜드와 해리포터 스튜디오 이용권을 판매하는 상점이 보였다. 일단 가격 정도나 트래블 카드 할인에 대해 묻기 위해 상점에 들어갔다. 트래블 카드를 보여주며 2 for 1 할인에 대해 물었더니 직원의 얼굴은 마치 트래블 카드 같은 건 처음 본다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트래블 카드보다 패키지 상품이 더 저렴하다며 자신들의 상품을 권유했다.


결국 레고랜드 입장권 가격이나 물어보려고 들어갔다가 버스승차권과 입장권 모두 구매하고 나오게 되고 말았다. 그녀에게 속는 건 아닐까 하는 기분도 들었지만 레고랜드에 도착했는데 입장권 할인을 전혀 못 받게 된다면 그 또한 낭패인지라 이곳에서라도 30퍼센트 할인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처음에 계획했던 50퍼센트의 할인은 아니었지만 일단 이 정도라도 할인을 받은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버스는 영국 왕실의 별장인 윈저성과 명문 사립학교로 유명한 이튼스쿨을 지나 두 시간을 넘게 달렸다. 드디어 레고랜드에 도착했다. 티 없이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레고랜드는 그야말로 레고 블록으로 만든 거대한 놀이동산이었다. 오래되어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낡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 낡은 느낌조차 어릴 적 다락방에 소중하게 모아둔 장난감의 그것처럼 친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와, 레고랜드다!"


이곳이 레고랜드입니다!!!


두 달이 넘는 여행기간 동안 아이들이 매일 노래처럼 부르던 레고랜드가 눈앞에 있었다. 아이들이 기뻐하는 만큼 내게도 묘한 감동이 전해졌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있어 '레고랜드'는 이번 여행의 종착지였다. 나 또한 가장 중요한 미션을 완수한 것 같은 성취감에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도착할 수 있을까?'


간혹 여정이 중단되면서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지만, 결국 아이들을 이곳까지 무사히 데려올 수 있었다. 모처럼 나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아빠! 어서 들어가요!"


하지만, 나의 감동은 딱 거기까지였다.


스타워즈 미니랜드 전시관을 관람하고 어트랙션을 타려는데 대기하는 줄이 너무 길었다. 토요일이어서인지 관람객들이 너무 많았다.


‘주중에 올 생각을 왜 못 했을까?’

레고블럭으로 사실적으로 표현한 동물들

주말을 피하지 못한 아쉬움이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나마 대기 줄이 짧은 어트랙션을 타기 위해 줄을 옮겼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스타워즈 관람을 막 마친 혁우의 눈에 스타워즈 레고 장난감이 들어온 것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흥분한 혁우는 계속 장난감을 사달라고 졸라댔다. 독일에서의 교훈 때문에 참는다고 참았지만 결국 혁우에게 화를 내고야 말았다. 레고랜드에 무사히 데려고 와 모처럼 좋은 아빠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화를 내버리는 통에 모두 망가져 버리고 말았다. 좋은 아빠, 현명한 아빠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혁우는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한참을 징징대며 울었다. 그렇게 울다가 지칠 즈음 형이 다가갔다. 일우가 혁우를 데리고 운전학교라고 쓰인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보였다. 어린 혁우가 운전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참견 않고 그냥 일우에게 맡겨 두기로 했다.


걱정은 쓸데없는 기우였던 모양이었다. 막상 운전대를 잡은 형제들은 금발의 영국 아이들을 능숙하게 제치며 씽씽 달렸다. 한없이 해맑아진 혁우의 표정은 도저히 방금 전까지 대성통곡을 했던 아이의 얼굴로는 보이지 않았다. 운전을 마친 아이들이 갓 발급받은 따끈따끈한 어린이 운전면허증을 들고서 내게 달려왔다. 아이들은 진짜 운전 면허증을 딴 것 마냥 몹시 기뻐했다. 특히, 혁우는 언제 울었냐는 듯 즐겁고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역시 아이는 아이였다.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잠시나마 무거웠던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우리는 국가대표 레이서라구!

픽사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나 나올법한 궁전 같은 모습의 레고랜드 리조트를 지나며 혁우가 말했다.

“아빠, 다음에 올 때는 우리 여기서 자요.”

“응. 그러자. 그때는 네가 아빠를 재워줘.”

"윽. 그건..."


떠올려보니 여행 초기 스페인의 세비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혁우와 나눈 기억이 있었다. 아마 알폰소 호텔을 지날 때쯤이었을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후 벌써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흘러 버렸다. 언제 여행이 끝날까 싶었는데 벌써 여행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나는 여행이 끝나가고 있음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레고 블록으로 만든 빅벤과 런던아이

저녁이 다 되어서야 빅토리아 역으로 돌아왔다. 빅토리아 역사 안의 '세인즈베리' 마트에서 저녁거리를 샀다. 다른 곳보다 저렴한 가격에 계획에도 없던 빵이나 케이크, 과자 같은 잡다한 간식들을 많이 사버리고 말았다. 카운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어 그나마 대기줄이 짧은 셀프 계산대 이용을 시도했다. 하지만 낯설고 어려운 조작방법 탓에 결국 계산에 실패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카운터 직원 쪽 줄에 다시 섰다.


"하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우가 계산대의 여자 점원에게 밝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점원이 일우에게 미소를 지어주며 친절하게 계산을 해주었다.

“아빠, 내 덕분이죠?”

일우가 자랑스러운 듯 내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잘했어. "


나는 잠자코 일우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는 같은 말을 스스로에게 한번 더 건넸다.


"그래,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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