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지팡이, 영국박물관에서-1

킹스 크로스 역 - 영국 박물관

by 옥상평상

11살 일기

아빠가 마법 지팡이를 사줬다. 아빠가 화난 거 같아서 박물관에서 조용히 있었다.


9살 일기

마법 지팡이를 샀다. 이제는 뚱뚱한 아빠도 공중에 날릴 수 있다. 윙가르디움 레비오사!!




영화 해리포터로 유명한 킹스크로스 역에 도착했다.


"와, 해리포터다!"

"아빠, 우리도 사진 찍어요."


놀랍게도 해리포터가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향하는 기차를 탔던 9와 4분의 3번 승강장이 실제로 있었다. 킹스크로스 역에서 기념촬영을 위해 특별히 만든 관광명소였다. 해리포터와의 추억을 남기기 위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데리고 가지 못한 미안한 마음도 있던 터라 얼른 줄의 맨 끝에 붙어 섰다.


동양 사람들은 카메라 앞에서 좀처럼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어서 더욱 그러한 것 같았다. 그에 반해 확실히 서양 사람들은 촬영 과정을 즐기는 모습이 가볍고 자연스러웠다. 기질적인 차이에서 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교육과 환경의 차이가 더 큰 원인으로 보였다. 여행을 하는 동안 지켜본 유럽 사람들은 대체로 희로애락 등의 감정 표현에 있어서 일반적인 동양인보다 좀 더 자유롭고 자연스러웠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적절한 교육을 받은 결과로 보였다.


우리 아이들 역시 예외적인 동양인은 아니었다. 수레의 손잡이를 잡은 형제들은 마네킨처럼 굳어 있었다.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내가 앞에 서서 아무리 웃겨보아도 녀석들의 로봇 같은 표정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다. 다행히 점프 촬영이 있을 때 사진을 찍어주는 여자 직원이 분위기를 띄워주어 가까스로 웃는 얼굴을 담을 수 있었다.


9와 4분의 3번 승강장 앞에서

촬영을 마친 아이들은 그 길로 기념품 샵으로 뛰어 들어갔다. 해리포터 마법 지팡이를 발견한 것이었다. 아이들은 각자 마법 지팡이를 하나씩 집어 들었다. 아이들이 원해서 사촌형제의 선물까지 하나 더 구입했다. 하지만, 미처 가격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막대기 하나의 가격은 놀랍게도 6만 원이 넘었다. 정말 사악한 가격이었다. 파운드화 현금이 모자라 근처 ATM기까지 가서 현금을 인출해야 했다. 가격으로만 놓고 보면 정말 작은 마법 하나라도 일으켜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비용만 놓고 생각해보니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가는 것이 더 좋을 뻔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비싼 물건을 사게 되니 슬그머니 짜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지팡이 하나씩을 들고서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차마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여행이 며칠 안 남아 예산의 속박에서 조금 자유로워진 까닭도 있었다. 며칠만 참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마법 지팡이가 담겨 있던 상자에 선명하게 찍혀있는 'MADE IN CHINA'라는 글자는 진정되던 내 속을 다시 한번 뒤집어 놓았다.


'적어도 이 정도 가격에 플라스틱 막대기를 팔려면 최소한 자기 땅에서 만든 걸 팔아야 하는 거 아냐?'




영국박물관으로 향했다. 어릴 적 내게' 영국박물관'은 '대영박물관'이었다. 그 시절 대영박물관은 그 이름만큼 가장 크고 위대한 박물관이었다. 대영박물관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 세계 각국에서 약탈하거나 훔쳐온 진기한 보물들과 유물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워낙에 다른 나라의 유물 비중이 높아 대영박물관에서 영국 것은 경비원과 건물뿐이라는 비아냥도 있었다. 어쨌든 그 유물의 질과 양, 그리고 유명도에서 바티칸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불리는 루브르 박물관조차도 대영박물관에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적어도 어린 내게는 박물관 중의 박물관이었다. 이제 더 이상은 '대영 박물관'으로 부르지는 않지만 어릴 적 꿈의 공간이었던 그곳으로 아이들과 입장했다.


박물관 입장료가 무료인 런던인지라 레고랜드 이후로는 계속 박물관 일정만 잡아놓은 상태였다. 무료입장이 아니었다면 박물관을 이렇게 부담 없이 다니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의 물가에서 박물관 무료입장은 우리처럼 주머니 가벼운 배낭 여행객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반가운 정책이었다.


하지만 예상되는 그 많은 수입을 포기하고 영국 정부가 박물관 무료입장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국 시민들이 부담 없이 문화를 즐기게 하려는 의도가 그 첫 번째 이유이겠지만 그것 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자국 국민들의 문화 향유를 위한 목적이라면 영국 국민들의 입장료에 대해서만 할인 혹은 무료로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국 정부는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무료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확실히 여기에는 다른 고려가 있는 듯했다.


세계 각국에서 가지고 온 유물들에 대한 반환 청구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설득력 있게 들렸다. 문화재의 본국에서 보존하는 것보다 이곳 런던에서 보존하는 쪽이 전 세계 사람들이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을 즐기는데 유리하다는 논리의 연장이었다. 문화재를 빼앗긴 나라로서는 어이없어하며 '그걸 왜 너희들이 신경을 쓰느냐?'라고 반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공짜로 즐기는 제3국의 국민들을 중립 혹은 자기편으로 만들게 하는 지능적인 전략이기도 했다.


아무튼 영국 정부의 박물관 무료입장 정책은 주머니 가벼운 전 세계 여행자들을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으로 불러 모으는 데 톡톡한 공헌을 하고 있었다. 유물들이 시대와 대륙별로 전시된 영국 박물관은 관람객 중심의 직관적인 구성으로 관람하기가 수월했다. 직원들의 응대하는 태도와 유물에 대한 안내까지 모두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비하여 친절하고 편리했다. 루브르 박물관의 유물에 대한 설명이 프랑스 어였던 반면, 이곳은 익숙한 영어로 설명이 되어 있어 더욱 그렇게 느꼈는지도 몰랐다.


아이들과 함께 인류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유물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세계사 책에서 보았던 최초의 철기문명 히타이트를 몰아낸 아시리아의 왕 아슈르바니팔의 사자 사냥 벽화의 느낌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벽화도 인상적이었지만 이렇게 거대하고 정교한 벽화를 통째로 뜯어서 가지고 온 영국인들의 집념이 놀랍고 무서웠다. 하긴 그 거대한 이슈타르 문을 잘게 잘라서 운반해 온 독일 사람들도 있었다.


사자 사냥은 왕의 스포츠였다고 한다. 일반 민중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사자를 죽이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고 한 것이었다. 살아있는 사자를 죽이는 일은 위험했기에 실제로는 다 죽어가는 사자를 가져오면 왕이 화살로 마무리했다고 한다. 거의 3000년이나 전의 벽화임에도 사자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과 탱탱한 근육의 묘사는 요즘의 작품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아시리아의 왕 아슈르바니팔의 사자 사냥 벽화
화살에 맞은 사자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사자들의 죽어가는 모습

강물 속에서 군인들이 수중작전을 펼치는 벽화가 있었다. 아시리아의 군인들은 가죽 주머니를 일종의 산소호흡기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벽화는 초 고대 문명이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증거일지도 몰랐다. 초고대 문명 혹은 외계 문명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인간의 문명은 점진적으로 발전해 온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고대의 첨단 문명은 인류의 기억 저 편에 조용히 묻혀 있는지도 몰랐다.

가죽 주머니를 산소 호흡기처럼 사용하고 있는 아시리아 병사


그럴 개연성은 충분히 있었다. 인간은 그만큼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이었다. 개인들은 매일매일 많은 기억을 잃으며 살아가고 집단의 역사는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해 오고 있었다. 인간의 기억은 먼지처럼 가벼웠고 사상누각처럼 위태로운 것이었다.


심지어 저 거대한 이집트의 건축물 스핑크스조차 모래에 파 묻혀 사라져 있다가 천년 뒤 발견된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집트의 왕 투트모스 4세가 스핑크스를 발굴한 시기가 기원전 14세기라고 한다. 기원전 24세기의 건축물인 스핑크스는 천년 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다가 기원전 14세기에 그 모습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에 되살아난 것이었다.


기록된 기억은 쉽사리 왜곡되고,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금세 잊히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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