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꺼번에 박물관을 두 군데나 구경해서 힘이 들었다. 아빠가 박물관을 그만 보겠다고 해놓고는 다시 전망대에 가자고 했다. 사기였다. 박물관이랑 전망대는 똑같은 거 아닌가?
9살 일기
오늘은 아빠 때문에 커다란 문을 몇 개나 봤다. 문 구경은 이제 그만!
그렇지 않아도 미라 때문에 이집트 유물들을 무서워했던 혁우는 조명까지 캄캄하니 완전히 얼어 있었다. 일우 역시 긴 기다림과 오랜 관람으로 지쳐 있었다. 피곤해하는 아이들을 위해 국립 회화관은 포기하고 숙소로 그냥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베를린 돔'으로 유명한 '베를린 대성당'을 발견하고 말았다.
"잠깐만 올라갔다 올까?"
"아이, 정말 힘든데."
"아빠, 박물관은 그만 보기로 했잖아요."
"응, 여긴 박물관은 아니고 전망대니까 금방 다녀올 수 있을 거야."
말하면서도 점점 옹색해지는 스스로가 느껴졌다. 하지만, 높은 곳에 올라가 베를린 시내 전망을 조망하고 싶은 내 욕심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입장료가 성인 한 명 당 7유로였지만, 가족권으로 구입하면 3명이서 10유로에 입장할 수 있는 점 또한 내 욕심을 자극했다.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그러했지만 베를린 역시 교통권에서 박물관 입장료까지 아이를 동반한 경우 아이의 비용을 따로 받지 않는 등 가족에 대한 지원이 매우 잘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낮은 전망대의 높이와 흐린 날씨 때문이었을까?
그토록 격렬했던 아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올라간 베를린 돔의 전망은 많이 실망스러웠다. 안전을 위해 전망대를 둘러싼 시커먼 철조망과 구름 가득한 하늘은 베를린의 풍경을 스산하게 보이기까지 하게 했다.
베를린 돔에서 바라본 베를린 시내의 풍경
돌아오는 길, 아이들에게 간식을 사주는 조건으로 브란덴부르크문에 들렀다.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이어지는 대로를 사이에 두고 러시아 대사관과 미국 대사관이 마주 보고 있었다.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었던 냉전시대의 유산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걸까?
브란덴부르크 문은 독일 제국의 통일을 꿈꾸던 프로이센 시절에 만들어져 베를린 장벽의 출입문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기구한 운명의 브란덴부르크 문이 한낮의 태양에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 거대한 크기에 압도된 우리는 거대한 시간의 문을 가만히 통과했다.
문득, 우리가 오늘 통과한 이슈타르의 문과 브란덴부르크 문 사이에 이천 년이 넘는 시간의 간격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오늘 우리는 이천 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온 걸지도 몰랐다.
문을 지나니 보리수나무 아래라는 뜻의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로가 펼쳐져 있었다. 원래 히틀러 시절에는 각종 관청과 궁전, 박물관들이 밀집해 있던 곳이었다고 한다. 연합군의 폭격으로 건물들이 모두 소실된 후, 동독 공산정권에 의해 군중집회 등을 하는 광장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훗날, 우리의 휴전선도 이렇게 두 발로 건너가게 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브란덴부르크 문의 모습
오른쪽 멀리 독일 민주주의의 상징인 연방의회 의사당의 투명 유리돔이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방문객들은 저 유리돔을 통해 의회 진행을 내려다볼 수 있다고 한다. 유리돔은 투명한 정치를 바라는 그들의 바람이 담겨있는 상징물이었다. 아름다운 외관과 그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오늘 같이 햇살이 강한 날 유리돔 아래에서 회의를 진행하는 일은 보기보다 고역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까지 버스를 타지 않고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모처럼 1일 교통권을 구입했는데 두 차례 사용한 게 전부였다. 아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내렸던 버스 정류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나 숙소까지 걸어서 가는 것이나 비슷한 거리였기에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걸어가는 도중, 2차 대전에서 희생된 유태인들을 기리기 위한 유태인 추모공원을 만났다. 다양한 형태로 놓인 회백색의 높이와 크기가 다른 네모난 돌들은 마치 시신을 갓 매장한 석관들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제법 큰 돌들은 성인 키 만한 거대한 것들도 있어 돌들 사이에 서 있으니 미로 속에 갇혀 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어떤 장소인지를 몰라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던 형제들도 내게 장소의 의미를 듣더니 금세 숙연해졌다. 아이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여행을 통해 성장하고 있었다. 공원 지하에 박물관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지만, 이미 충분히 박물관에 질려버릴대로 질린 아이들에게 차마 들러보자는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유태인 추모공원 속 형제들
슬프고도 엄숙했던 추모 공원을 나섰다. 숙소 근처 위치한 길가 간이식당에서는 독일의 대표음식인 카레 부어스트를 팔고 있었다.
체력적으로 지쳤던 까닭일까? 감정적인 소모가 컸던 탓이었을까? 아직 저녁 때도 멀었는데 배가 몹시 고팠다. 간이 테이블에 서서는 구운 소시지에 카레 소스가 올려진 카레 부어스트를 주문했다. 차가운 맥주 한 모금과 섞인 따뜻한 소시지 한 조각에 왠지 목이 메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