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빠에게 처음으로 맞았다. 충격이었다. 물론 우리가 잘못을 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아빠가 미웠다. 사과를 하는 아빠가 불쌍하기도 했다.
9살 일기
아빠가 나한테 두 번째로 폭력을 썼다. 아빠는 처음이라지만 나는 네 살 때 아빠한테 엉덩이를 맞은 걸 확실히 기억한다. 아빠는 거짓말쟁이다.
아침에 조식을 먹는데 나처럼 아들과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일본인 남자를 보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난 아이가 둘, 그는 하나라는 점이었다. 소년의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를 보니 그들의 오랜 여행기간이 짐작되었다. 수프를 먹고 있는 우리 형제들의 머리 역시 덥수룩하게 많이 자라 있었다. 열흘 후 한국에 도착하면 머리부터 잘라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늘은 독일 '에센'에 있는 후배 J를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열차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하지만 오늘따라 아이들은 유난히 늑장을 부렸다. 각자 짐을 챙긴 후, 옷을 갈아입으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내가 짐을 싸는 내내 장난감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여행 초반에는 이런 경우가 자주 있었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잘 해왔던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났는지도 몰랐다. 결국 나는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화를 내기 시작하자 그동안에 쌓여왔던 스트레스가 화산 폭발하듯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내 화난 모습에 겁을 먹고 당황한 아이들에게 나는 급기야 손찌검까지 하고 말았다. 아파서 겁에 질린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나 또한 어찌할 바를 몰라 한동안 멍하니 선 채로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아이들에게 손을 댄 일은 물론, 이렇게 무섭게 화를 낸 일 역시 처음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부끄러움과 자괴감이 올라왔다. 내 앞에서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측은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교육을 위한 목적이라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었다. 두려움과 당혹감으로 상기된 아이들의 얼굴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상처받아 떨고 있는 아이들을 안으며 사과를 했다.
" 얘들아, 미안해. 아빠가 정말 잘못했어."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했지만, 아이들은 물론 내게도 그렇게 쉽게 잊혀지지 않으리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