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타르의 문과 브란덴부르크 문 1

페르가몬 박물관- 신 박물관

by 옥상평상

11살 일기

박물관에서 오래 기다려 힘이 들었다. 박물관 구경은 좋을 때도 있지만 가끔 많이 힘들다.


9살 일기

얼굴과 목만 있는 이집트 왕비가 무서웠다. 깜깜해서 더 무서웠다.



어제 구입하려다 실패했던 1일권을 지하철 역에서 드디어 구입했다. 7유로의 가격에 성인 한 명, 동반 어린이 3명까지 무료였다. 왠지 모를 든든한 기분에 세상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처음에는 지하철을 이용할까도 생각했지만 여러 번 환승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한번에 바로 갈 수 있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페르가몬 박물관 입장을 기다리는 줄은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포기하고 다른 곳을 갈까 하고도 생각했지만 이것 말고 달리 계획한 일이 없었던 까닭에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넘었을까? 우리 뒤에 얌전하게 서 있던 한국인 가족 중 어린 남자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그늘도 없는 곳에서 따가운 햇볕을 맞아가며 기약 없이 기다리는 일은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큰 울음소리에 당황한 아이의 아빠가 엄하게 야단을 쳤다.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자 아빠도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 그 심정 나도 알지. ’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세상만사 포기한 듯 땅바닥에 주저앉아서는 태평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울고 짜증 내 봐야 아무 소용없어. 그냥 신경 끄고 놀다 보면 좋은 날은 와.'


형제들의 뒷모습은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아마도 여행 3개월 차의 경험이 주는 여유이리라. 그 모습이 고맙고 대견했다. 아이들의 손에 동전 몇 개를 쥐어줬다.


" 먹고 싶은 거 사 먹어. "

" 아싸! "


아이들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뭘 사 오나 기다렸더니 한눈에도 맛없게 보이는 프레첼과 콜라를 사 왔다.


'맛있는 것 좀 사 오지.'


내 것까지 사 오라고 시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휴일이어서인지 박물관은 관람객으로 가득했다.

삼십 분을 더 기다리고 나서야 가까스로 페르가몬 박물관에 입장할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거대한 이슈타르 문이 우리를 압도했다. 이 거대한 문조차도 원래 이중으로 설계된 두 개의 문 중 작은 쪽이라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 큰 것은 얼마나 더 컸을까?'


이 이슈타르의 문은 북쪽 성벽의 일부분으로 도시의 출입문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천 오백 년 전에 지어진 신 바빌로니아의 도시가 얼마나 거대하고 장엄했을지 좀처럼 상상이 가질 않았다.


신 바빌로니아 도시의 추정 인구수는 15만 명으로 기원전 5세기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였다고 한다. 참고로 당시 우리나라는 고조선 시기였고 중국은 공자가 출현하기 직전의 춘추시대였다. 이 도시를 건설한 ‘네브카드네자르 2세’가 유대 왕국을 침략해 유대인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가 노예로 만들었다는 성서의 바로 그 ‘느부갓네살’이다. '느부갓네살'이란 이름을 또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들이 탔던 비행선의 이름이었다.


이 이슈타르의 문이 있는 성벽 위로는 말이 끄는 마차 두 대가 서로 교차하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넓은 도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차선 도로 너비의 두께를 가진 성벽이라니 분명 어마어마한 방어력과 내구력을 지녔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거대하고 견고한 성벽을 가졌던 신 바빌로니아조차도 기원전 6세기 오리엔트 세계를 통일한 페르시아 제국에게는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다.

DSC00759.JPG 이슈타르의 문 상상도 ( 영국박물관 소장 )

거대한 크기와 육중한 무게로 인해 이슈타르의 문을 비롯한 이곳에 전시된 유물들은 한 번에 독일로 운반해 올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유물을 조각내서 가져오는 방법이었다. 유물을 해체한 후 각 조각에 번호를 붙인 후 나누어 실어왔다. 다 옮긴 후에는 다시 퍼즐을 맞추듯 역순으로 조립하는데 그렇게 완성한 것이 바로 이 이슈타르의 문이다. 타국의 유물을 가져온 것에 대한 비난은 별개로 하고, 유물 보존에 대한 그들의 열정과 기술력에는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 거대한 이슈타르의 문을 조각을 내어 운반해 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맞은편 입구로 들어섰다. 오리엔트 세계의 바빌론 문명과 대척점에 서 있던 유럽 문명의 원류 그리스 문명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가 방금 들어온 입구는 고대 그리스의 최대 도시 밀레토스의 시장 입구에 세워진 '밀레토스의 시장 문'이었다. 2차 세계 대전 중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다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밀레토스의 시장문

페르가몬 박물관을 나와 곧바로 신박물관으로 입장했다. 주로 이집트에서 가져온 유물들을 전시한 곳이었다. 유물들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저 유명한 네페르티티 흉상이었다. 네페르티티는 파라오 아크나톤의 부인으로 그 유명한 투탕카멘의 계모이기도 했다. 아크나톤은 신왕국 시대 이후로 파라오 왕조의 수호신이었던 아몬을 섬기는 것을 금지하는 대신 태양신인 아톤만을 숭배하도록 명령했다. 다신교가 전통이었던 이집트 왕조 최초의 유일신 숭배 정책이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 투탕카멘이 왕위에 오르면서 아몬은 다시 파라오 왕조의 수호신으로 복귀하고 아크나톤이 세운 아톤 신전은 파괴되어 버리고 만다.


유물을 보호하기 위한 어두컴컴한 조명 때문에 흉상이 미완성 상태라는 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왼쪽 눈이 그려지지 않은 미완성 유물이라는 것은 관람 후에야 알 수 있었다. 미완성 상태에서도 이토록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기까지 했다. 과연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왔다'는 뜻의 '네페르티티'라는 이름을 붙일만했다. 정면을 향한 몸통에 얼굴의 옆모습만 그렸던 평면적인 이집트 회화만 봐 오다가 이토록 사실적이고도 입체적인 네페르티티 흉상을 보니 신선한 충격이 느껴졌다. 신박물관은 아름답고 부드러운 목선이 돋보이는 네페르티티 흉상을 볼 수 있던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네페르티티 흉상 촬영은 금지되어 있었다.(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keyword
이전 01화타이타닉 인 베를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