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일기
아빠가 혁우만 땡땡 피겨를 사줬다. 만화박물관에 못 가서 실망한 건 나도 마찬가진데 아빠는 혁우만 신경 쓴다. 서운했다.
9살 일기
아빠가 땡땡 피겨를 사줬다. 박물관은 못 갔지만 기뻤다.
기차를 타고 가 브뤼셀 중앙역에서 전철로 갈아탄 우리는 숙소가 있는 지하철 역에 내렸다. 여행기간 내내 부지런히 모았던 예약 대행 사이트의 포인트로 결제한 호텔이었다. 리뷰가 별로 없어 살짝 불안했지만 숙소의 상태는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훌륭했다. 아직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호텔이라 건물 내부 곳곳이 정비 중이었지만, 그것을 상쇄할 정도의 깔끔함과 친절함이 돋보이는 숙소였다. 객실 전망 역시, 비록 바다나 산 같은 자연 풍광은 아니었지만 고층 객실에서 내려다보는 시원한 시내 전망이 마음에 쏙 들었다.
쿠셋 좌석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호텔에 오니 천국이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놓고는 거리에 나섰다. 바로 어제 혁우에게 약속했던 땡땡의 캐릭터가 전시된 만화박물관에 가기 위함이었다. 우선 맥도널드에 들어가 간단하게 점심 요기를 했다. 이곳 맥도널드 역시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맥주를 주문할 수 있는 점이 특이했다. 유혹을 이기지 못한 채 시원한 맥주 한잔을 주문해 햄버거와 함께 먹었다. 술을 입에도 대지 않겠다는 약속은 하늘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대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다 왼쪽으로 돌아 조금 걸어가니 만화박물관이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폐점시간인 오후 6시가 다 된 시각에 도착하고 말았다. 관람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실망 가득한 표정의 혁우를 위하여 입장료 대신에 땡땡 피겨를 사줬다. 피겨의 가격은 우리 셋의 관람료를 합친 것보다 비쌌다. 하지만, 기뻐하는 혁우의 얼굴을 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왜 혁우만 사주는 거예요?"
"나중에 너도 사줄게."
"치.'
혁우가 기뻐하자, 이번엔 일우가 불만이다. 둘 다 사줄 걸 그랬나 보다. 아, 어렵다.
벨기에 만화 주인공인 땡땡과 그의 애견 밀루
근처에 유명한 와플가게가 있다기에 찾아갔다. 그곳에서 본고장 와플을 맛 본 후, 내친김에 감자튀김의 원조 가게라고 하는 '프릿 랜드'로 가서 맥도널드 프렌치프라이의 원조격인 '프릿'을 먹었다.
원래 '프렌치프라이'라는 말은 미국 3대 대통령 겸 독립선언서의 초안자인 토마스 제퍼슨이 처음 사용한 말로 이름 그대로 '프랑스식 감자튀김'이라는 의미였다. 미국의 대통령이 감자튀김의 원조는 프랑스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셈이었지만, 현재도 벨기에는 여전히 감자튀김의 원조는 프랑스가 아니라 자신들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두 요리는 감자를 튀긴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곁들여 먹는 소스에서 프랑스식은 케첩을, 벨기에식은 마요네즈를 쓴다는 점에서 달랐다. 프릿 랜드에서는 마요네즈 말고도 다른 여러 가지 소스를 고를 수가 있었다. 나는 '사무라이 소스'를 골라봤다. 뭔가 일본식 이름에서 느끼함을 잡아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느끼한 맛은 전혀 잡지 못한 채 그냥 애매한 맛이었다. 오히려 원래대로 하얀 마요네즈를 찍어먹는 쪽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그 유명하다는 오줌싸개 동상을 찾아 나섰다. 브뤼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시민이라고 불리는 60센티미터 남짓한 크기의 작은 청동상 주변에는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다. 이 청동상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있었다. 프랑스 루이 15세는 브뤼셀을 침략한 후 이 오줌싸개 동상을 가지고 돌아갔다. 그 후 프랑스는 브뤼셀의 요청으로 동상을 돌려줬는데 사과의 의미로 프랑스 귀족 복장을 입혀 보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벨기에와 수교하는 국가들은 관례로 그 나라의 아동복을 선물했다고 한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받은 몇 백 벌이나 되는 옷은 그랑플라스 광장에 있는 브뤼셀 시립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오줌싸개 동상의 작고 귀여운 모습
생장 광장을 지나 '예술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몬데 아츠(Mont des Arts)에 올랐다. 예술의 언덕은 브뤼셀 왕궁과 그랑플라스 광장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아름다운 그랑플라스 광장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벨기에 시내 전체를 조망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브뤼셀 왕궁 방향으로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 박물관이 있었다. 하지만 만화박물관과 마찬가지로 관람시간은 이미 지나있었다. 하긴 관람시간이었다 하더라도 다소 난해한 그의 작품들을 아이들과 함께 보는 건 무리였을 것이었다.
'예술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몬데 아츠(Mont des Arts)공원에 심어진 나무들은 바르셀로나의 구엘 공원 시장에 늘어선 기둥들과 비슷하게 하얀색 페인트로 일정한 높이를 맞추고 있었다. 보기에는 질서 정연한 아름다움이 돋보였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엄연히 살아있는 생명에 저렇게 인공의 색을 덧칠해도 되는지 걱정이 되었다.
혼자서 셀카를 찍고 있는 한국 아가씨가 보였다. 애써 다양한 각도로 찍은 후 화면을 확인하는데 사진이 원하는 만큼 잘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제가 찍어 드릴까요?"
"아! 고맙습니다."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안을 하자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카메라를 내게 건넸다.
"여기서 이렇게 좀 부탁드릴게요."
그녀는 촬영 장소와 구체적인 각도까지 지정했다. 나는 그녀가 지시한 대로 촬영했다. 그녀의 미소가 시원했다.
"저희 것도 부탁드려요."
카메라를 돌려주며 우리 삼부자의 한 컷도 부탁했다.
하얀색 페인트로 일정한 높이를 맞추고 있는 가로수들의 모습
잠시나마 그녀와 따뜻한 미소를 주고받아서였을까?
불쾌했던 어제의 추억이 희미해져 가고 있음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