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일기
참 나쁜 아저씨들을 만났다. 아빠를 돕고 싶었지만 무서웠다. 아빠가 불쌍해 보였다. 앞으로는 나라도 아빠를 많이 도와줘야겠다.
9살 일기
아빠랑 형이 화가 많이 났다. 저녁값이 너무 많이 나와서 그런가 보다. 하긴 내가 너무 많이 먹긴 했다.
숙소에서 나와 에센 역으로 향했다. 에센 역으로 가는 길은 평일임에도 너무 한산했다.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 삭막한 도로를 스산한 바람이 도망치듯 달려갔다. 내게 에센은 혼돈의 기억이었다. 역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길이었다. 여행기간 동안 잔뜩 모은 잡동사니로 배가 부를 대로 부른 트렁크는 에센과의 작별이 아쉽기라도 한 듯 자꾸만 역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내 몸을 끌어내렸다.
“아빠, 난 독일이 너무 좋아요.”
“삼촌네 동생도 너무 귀여워요.”
아이들 역시 트렁크와 마찬가지로 에센과의 작별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빨리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은 나뿐인 모양이었다.
유럽 대륙 5개국을 연결하는 고속열차 탈리스를 탔다. 프랑스의 고속열차인 TGV 계열에서 운영한다는 이유 때문인지 좌석 예약비가 유난히 비쌌다. 레고랜드를 가기로 한 형제들과의 약속만 없었더라면 절대로 타지 않았을 사악한 가격이었다. 이 열차에 오른 이유는 오로지 런던으로 향하는 유로스타 열차를 브뤼셀에서 타기 위함이었다.
유럽 주요국의 수도를 잇는 고속열차 '탈리스'는 요금이 비싼 대신 기내식을 제공했다.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의 남역에 도착했다. 숙소가 있는 '스하르베크 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갈아타야만 했다. 인터넷에는 굳이 새로운 표를 구입할 필요 없이 유레일패스로도 탑승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에 있는 정보를 그대로 믿기에는 아무래도 좀 불안했다. 스페인 톨레도에서처럼 인터넷 정보만 믿고 가다가 곤란에 처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근처에 역무원이 있었다.
"이 패스로 스하르베크 역까지 갈 수 있나요?"
그녀는 대답 대신 환한 미소로 답했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이번에 예약한 숙소는 기차를 테마로 한 숙소로, 야간기차의 침대 칸인 쿠셋을 객실로 만든 곳이었다. 저렴한 숙박비도 매력이었지만 이번 여행에서 야간열차를 이용해 보지 못한 아이들을 위한 일석이조의 배려이기도 했다. 홈페이지의 사진을 보니 야간열차를 타는 느낌이 충분히 날 것 같았다. 기대했던 대로 객실은 열차의 기분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쿠셋 침대는 마음대로 접고 펴고 오르내릴 수 있는 놀이터였다. 하지만 실제의 기차를 개조한 것인 만큼 먹고 씻는 등 생활을 하기에 객실 내부는 너무 비좁고 불편했다.
야간 열차 쿠셋과 똑같았던 트레인 호스텔의 숙소 한 낮부터 숙소에서 그냥 시간을 때우는 것이 아까워 브뤼셀 중앙역으로 나왔다. 몇 해 전 폭탄 테러가 일어나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던 곳이라 무장한 군인들이 거리의 모든 것들을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무장 군인들을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이곳의 군인들의 경계태세는 유난히 삼엄해 보였다. 아이들을 잡은 나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노숙자들이 잔뜩 모여있는 중앙 역을 빠져나와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칭송한 ‘그랑플라스’ 광장으로 향했다.
하늘로 뻗은 여러 개의 아름다운 첨탑을 가지고 있는 고딕 풍의 ‘시청사’와 '왕의 집'이란 이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왕이 살았던 적이 없다는 ‘왕의 집’은 충분히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세계 제일이라는 칭호를 의심 없이 받기에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다.
불현듯 엉뚱한 상상이 떠올랐다. 빅토르 위고는 이 그랑플라스 광장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기에 일부러 '세계 최고'라는 칭호를 부여해 망신을 주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그저 억측일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만큼 내게 있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찬사는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그랑플라스 광장의 모습그랑플라스 광장 근처 홍합 요리가 맛있다는 맛집을 찾아 나섰다. 골목길에 들어서자 인상 좋아 보이는 백인 남자가 한국말을 하며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한국사람이야?”
반말이 다소 거슬렸지만 친숙한 한국말이 고마워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우리 집 맛있어. 음료수 서비스 줄테니까 우리 가게에 한 번 들어와 봐.”
“아이들이 귀엽네.”
보통 식당에 가기 전, 나는 구글 지도를 검색해 평점을 확인한 후에야 입장을 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전날 숙취가 남아있던 까닭인지 방심한 체 그를 따라나서고야 말았다. 메뉴판의 메뉴들은 우려했던 대로 상당히 고가의 것들이었다. 도로 나갈까도 싶었지만 귀찮은 마음에 세 명이서 먹을 수 있는 8만 원 정도 되는 가격의 메뉴를 주문했다. 이조차도 우리 형편으로는 제법 무리를 한 가격이었다.
점원이 주문을 받으면서 내게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프랑스 억양의 영어라 명확히 들리지 않아 그냥 적당히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한 실수였다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났다. 커다란 접시에 육즙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퍽퍽한 스테이크와 마른 랍스터가 대충 뒤섞여 나온 요리는 모양부터가 별로였다. 하지만 심하게 배가 고팠던 나와 아이들은 그조차도 맛있게 먹어치웠다. 점원은 계속 우리에게 다가와 친절한 얼굴로 더 필요한 건 없냐고 물었다. 나는 목말라하는 아이들을 위해 탄산음료 두 개를 부탁했다. 식당에 들어오기 전 모든 음료는 무료라고 했던 그의 말을 기억했기에 부담은 전혀 없었다.
이때까지는 몰랐다. 이것이 내 생애 최고로 비싼 요리가 될 줄은.
식사를 모두 마친 후 계산서를 확인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음식 값이 무려 160유로가 나왔던 것이다. 우리 돈으로 거의 이십만 원이 넘었다. 계산서를 자세히 보니 내가 시키지도 않은 요리와 서비스로 준다던 탄산음료나 물 따위가 잔뜩 적혀 있었다. 나는 화가 나 항의를 했다. 그러자 그렇게 밝게 웃던 점원이 무서운 표정으로 돌변했다. 그 모습은 반전 장면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주인공의 연기에 못지않았다.
"이 모든 게 다 네가 주문한 거잖아."
그제야 아차 싶었다. 아까 주문을 받던 점원이 얼버무리듯이 길게 뱉었던 말들이 모두 이 메뉴에 관한 말이었던 모양이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는 상황에 몽둥이로 뒤통수를 맞은 것만 같았다. 제대로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일단 정신을 단단히 챙긴 후, 계산서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분명히 음료는 무료라고 이야기했으니까 여기 계산된 탄산음료 값은 줄 수가 없어."
일단 서비스로 준다고 했던 음료 값 15유로는 못 내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들도 못 이기는 척 음료 값은 빼주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다른 메뉴에 대해서는 내가 주문을 한 것이라며 한 발자국도 양보하지 않았다.
'경찰이나 대사관에 신고를 할까?'
하지만,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고 서류를 작성하는 등 손해를 봐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바로 그려졌다. 기껏 여행을 와서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돈을 위해 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아이들은 내 뒤에 붙어선 채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결국, 팔짱을 낀 채 노려보고 있는 녀석들에게 145유로를 던지듯 주고는 서둘러 식당을 빠져나왔다. 등 뒤로 점원이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녀석의 턱에 주먹이라도 꽂고 싶었지만 상상일 뿐이었다.
그랑플라스 광장으로 나와 숨을 가다듬으며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다시 가게로 쳐들어가 따져 볼까?'
한국에서라면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이곳은 머나먼 타국이었다. 아무래도 경찰이나 대사관 직원까지 출동하는 상황은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요 며칠 계속 생겨나는 일들로 놀라고 불안해하고 있는 형제들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우리에겐 돈도 중요했지만 시간과 안전 역시 소중했다. 결국, 그냥 깨끗이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행자들의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 사기를 치고 있는 녀석들을 용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구글 지도를 열어 녀석들의 가게를 검색했다. 당연하게도 가게의 평점은 매우 낮았다.
'들어가기 전, 한 번이라도 검색을 해볼걸......'
후회와 자책감이 밀려왔다. 나는 평점을 기재하는 란에 우리가 겪은 일을 그대로 상세하게 적었다. 적어도, 한국 사람들 만큼은 우리 이후로 다시는 녀석들에게 사기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였다.
“우리 내일은 땡땡이 전시되어 있는 만화박물관에 가 볼까?”
불안해하는 아이들의 기분 전환을 위해 나는 만화 박물관 방문을 제안했다.
“와! 좋다. 우리 그럼 땡땡 보러 갈 수 있는 거예요?"
“아까 그 아저씨들 너무 나빠요.”
어린 혁우는 금세 기분이 좋아지며 전환되었지만 일우는 좀처럼 화가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 역시 아이들 앞에서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억울하고 분한 마음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우리 여행 최고로 비싼 저녁을 먹은 브뤼셀의 밤은 유럽에서 겪었던 그 어떤 밤보다 무겁고 우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