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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pr 29. 2022

이건희 컬렉션

바로 공항으로 가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근처 사는 친구에게 연락을 할까도 했지만 휴일 불쑥 전화해 만나 달라는 것도 경우가 아닌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갑자기 근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건희 컬렉션이 하고 있던 게 떠올랐다. 하지만 왠지 끝났을 것 같은 불길함 역시 동시에 일어났다.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도 4월 13일에 끝나기로 한 전시가 6월 6일까지 연장되었다고 한다.

뭔가 횡재를 한 것 같은 기분에 광화문 역에서부터 한달음에 달려갔다. 비행기 시간까지는 세 시간 남짓, 아무리 온라인 체크인을 했다곤 해도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간과 검색대를 통과하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빠듯했다. 심지어  나는 근처 청진동 해장국집에서 해장국도 한 그릇 챙겨 먹을 생각이었다.


코로나19가 한참 심했을 때에는 사전예약제로 운영되어 예약하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였다고 한다. 사이트가 열리자마자 수 분만에 매진되는 것이 반복되자 나이 드신 분들은 손이 빠른 손자들에게 예약대행마저 부탁했다고 한다. 다행히 이번에 연장 전시를 하면서 사전예약제를 폐지하고 현장 접수로 바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전시된 작품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제도에는 일장 일단이 있는 법, 코로나 감염 방지를 위한 전시 인원 100명 제한 규정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던 까닭에 관람을 위한 오랜 기다림이라는 또 다른 과제는 여전히 존재했다.

120분 푯말을 지나서 왔던 까닭에 50분 대기 푯말은 애교처럼 느껴졌다. 실제 대기 시간은 이보다는 짧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오랜 시간 동안 기다리는 일은 확실히 쉽지 않았다. 서서 기다리기 지친 사람들은 중간중간 배치된 벤치에 앉아 다리의 피로를 풀기도 했다. 시간이 아까웠던 나는 유튜브 검색을 통해 이곳 국립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가 작품을 설명하는 영상을 봤다.

한 시간 남짓 기다렸을까?

드디어 전시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래 기다린 맛집의 음식이 더욱 맛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묘한 감동마저 솟구치며 전시된 작품 하나하나가 더욱 소중하게 다가왔다.

변관식 '산수 춘경'
이상범의 무릉도원, 변관식  산수춘경에 관한 설명
이상범의 '무릉도원'

중국의 유명한 무릉도원에 대한 설화를 그린 작품이다. 오른쪽 끝에 보이는 어부는 동굴을 지나 막 무릉도원에 도착했다. 그런 그를 반갑게 맞는 것은 200년 전부터  나이조차 먹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온 이곳 주민들이다. 어부는 그들에게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전하고는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며 바깥 세계로 나간다. 하지만, 입구를 찾지 못한 어부는 두 번 다시 이곳 무릉도원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고 만다.

백남순의 '낙원'

유명한 여류작가 나혜석과 더불어 프랑스에서 유학을 한 여성 작가 백남순의 유일한 작품이다. 1936년 경 근무를 했던 오산학교에서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동양의 병풍 형태의 종이에 그린 서양의 유화라는 점에서 특이했다. 앞서 본 이상범의 '무릉도원'과도 대비되며, 그 크기와 색감이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에서 보았던 천장화인 '천지창조'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작가인 '나혜석'의 '화령전작약'


변관식의 '무창춘색'

앞선 '산수춘경'을 그린 변관식의 '무창춘색'이다. 봄 풍경을 뜻하는 '춘색'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가을 무렵에 전주 지방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동양의 수묵화는 서양의 풍경화와는 다르게 실제의 풍경을 보고 그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책에서만 보아왔던  작품들을 실제로 볼 수 있어 매우 좋은 경험이었다.  더 나아가 서양 미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알아왔던 우리 근, 현대 미술에 대해  감동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결국 청진동 해장국은 먹을 수 없었다.

모처럼 문화적 허기가 충족된 까닭일까?

그다지 배고픔이 느껴지지는 않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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