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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과 사람이 함께 살아온 도시

by 옥상평상


교토라는 도시를 처음 가는 것은 아니었다. 오래전 패키지여행으로 한 번, 그 뒤 혼자서 한 번, 총 두 번을 방문했지만 모두 하루나 이틀 정도로 짧게 다녀왔기에 항상 아쉬움이 있었다.


도쿄 한 달 살기나 오사카 한 달 살기란 말은 흔하지 않아도 왜 교토 한 달 살기란 말은 많이들 하지 않는가? 궁금했다. 도대체 교토라는 도시에는 어떤 매력이 있기에 사람들이 한 달이나 살고 싶어 하는지가 말이다.


유홍준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 편 3 교토의 역사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길에서 들은 얘기로 '도쿄에는 마을이 880개, 오사카엔 다리가 880개, 교토엔 절이 880개가 있다'라고 한다."


하지만 더 놀라운 점은 교토에는 실제로 3,030개의 절과 1,770개가 넘는 신사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불교는 신불습합(神仏習合) 즉, 불교가 일본고유의 종교인 신도와 융합된 형태로 전해 내려온 까닭에 교토의 사람들은 거의 5천 개에 가까운 각종 신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신전 또는 사당인 것이다. 죽은 자인 신들과 산 자인 인간들이 함께 숨을 쉬고 살아가는 도시, 겉으로는 인구 280만 명을 자랑하는 도쿄, 오사카, 나고야에 이은 네 번째의 도시이지만 사당에 모셔진 신들과 신이 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고 있을 죽은 자들까지 포함한다면 실은 1,200만 인구인 도쿄를 훌쩍 뛰어넘는 대도시가 아닐까?


우리나라와 당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 서기 800년 경에 도읍이 된 교토는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본의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로서 기능을 다해왔다. 그 오랜 기간 동안 이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질병에 죽거나 혹은 운이 좋으면 수명을 다해 죽었을 터였다. 이 도시 곳곳에 사람들이 건설한 5천 개가 넘는 사찰과 신사들은 그 오랜 역사 속 수많은 원혼들을 달래기 위함인지도 몰랐다. 물론 개중에는 우리의 신라로부터 건너간 하타씨 무리의 우즈마사 같은 도래인 계통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끔찍한 고통을 주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2차 대전의 수많은 전범들 역시 함께 포함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튼 이 오천 개가 넘는 신사와 사찰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버린 이 교토라는 도시가 그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켜켜이 쌓아온 고통스러운 기억을 감당하기 위해 스스로 고안해낸 유일한 생존방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우리의 경주에 죽은 사람들의 사연처럼 굽이굽이 펼쳐진 왕릉들의 그 수많은 능선들처럼 말이다.


사뭇 궁금했다.

교토라는 이 깊고 오래된 유기체는 과연 이방인을 어떻게 맞이할 것이며 그곳에서의 일주일 간의 삶은 또 어떤 모습일까?



교토의 곳곳에 있는 신사는 죽은 자들을 기억하는 묘비의 다른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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