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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목욕탕

가모가와 강변에서

by 옥상평상





교토에 가면 아이들과 무엇을 할까?


어차피 관광이야 하는 것이니까 뭔가 특별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비싼 비용을 들여 고급 음식점을 간다거나 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그럴 돈도 없을뿐더러 그건 너무 뻔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것은 일본에서의 대중목욕탕 체험이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다음의 장소였다. 우리 숙소 근처에도 대중목욕탕이 있긴 했지만 외국인을 싫어하는 단골손님들이 있다는 리뷰가 있어 이곳을 선택했다. 우메유 즉 매화탕이란 뜻의 이름이다. 인근 어딘가에 매화나무가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아이들과 가도 되는 곳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아이들과 가기 전에 나 혼자 들러봤다.



입구의 카운터에 있는 종업원이 코로나로 인해 한 시간만 입욕을 허용한다는 말을 했다. 어차피 한 시간이나 있을 생각도 없었기에 내겐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목재 신발장에서 목욕탕이 건너왔을 오랜 세월이 느껴졌다. 어쩌면 나보다 형님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욕탕은 온탕이 한 개, 열탕이 한 개, 전기탕이 한 개, 냉탕이 한 개였다. 이렇게 얘기하면 실내가 굉장히 넓은 것 같지만 탕의 개수만 많을 뿐 각 탕의 크기는 두 세명만 들어가도 꽉 찰 정도로 협소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건식 사우나는 7명 정도가 다닥다닥 붙어 앉아야 할 정도로 정말 작았는데 그마저도 꽉 차 있어 밖에서 기다렸다 이용해야만 했다.


하지만 한 가지 신기했던 건 그렇게나 좁은 욕탕이었음에도 사람들의 동선이 겹치거나 사소한 부딪힘 같은 일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NBA농구스타 제임스 르브론같은 근육질의 흑인과 영화배우 드웨인 존슨 같은 거구의 백인 문신남까지 있었음에도 사람들은 물 흐르듯 그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상대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일본 특유의 문화인 소위 '메이와쿠'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듯 보였다.



며칠 후,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같은 목욕탕을 찾았다. 아이들은 다행히 좁은 욕탕도 불편해하지 않고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했다. 일우는 전기탕의 찌릿찌릿함을 무서워하면서도 즐겼다. 혁우는 문신을 한 외국인들이 목욕을 하는 장면을 신기해했다. 하지만 아쉬웠던 건 사우나에 사람이 너무 많아 결국 사우나 이용을 못했던 점이었다.


어땠어? 일본 목욕탕은?
뭐 여기도 나쁘진 않지만 울 제주 목욕탕이 훨씬 좋긴 해요.
좁긴 하지?
난 좋았는데. 외국인들이랑 목욕도 하구.


다행히 혁우는 이곳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좋아하는 이유가 이해는 잘 안 되었지만.


우리 삼부자는 목욕탕에서 산 흰 우유와 주스, 콜라를 마시며 찬 바람이 부는 가모가와 강변을 따라 걸었다. 따뜻한 곳에 있다 나오니 겨울 강바람의 차가움조차 견딜만하게 느껴졌다.


정지용의 시 '압천'이 떠올랐다. '압천'은 즉 우리가 지금 따라 걷고 있는 가모가와강을 말한다. 시인 정지용은 윤동주가 다닌 것으로 알려진 도시샤 대학에서 1920년 대에 유학을 했다. 윤동주보다 20년가량 선배인 셈이다. 그는 유학시절 초기, 그의 시 향수로 유명한 고향땅 충북 옥천에 대한 그리움을 이 가모가와강을 바라보며 달랬다.



鴨川(압천)

정지용

鴨川 十里ㅅ벌에
해는 저믈어...... 저믈어......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
목이 자졌다...... 여울 물소리......

찬 모래알 쥐여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여 짜라. 바시여라. 시언치도 않어라.

역구풀 욱어진 보금자리
뜸북이 홀어멈 울음 울고,

제비 한 쌍 떠ㅅ다,
비마지 춤을 추어,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

鴨川 十里ㅅ벌에
해가 저물어......저물어......


불현듯 오늘이 우리 여행의 마지막 날이란 사실이 떠올랐다. 여행이 끝나감은 아쉬웠지만 그 옛날 정지용과는 다르게 이곳을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새삼스런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어서 집에 돌아가야겠다.



시인 정지용이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워했던 압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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