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선사(난젠지), 수로교, 그리고 청수사
비와호의 물은 이곳을 거쳐 철학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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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18. 2023
식당 로리안에서 든든하게 배를 채운 우리는 남선사에 도착했다. 남선사는 거대한 삼문의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일본의 전통극인 유명한 가부키 산몬고산노키리에서 주인공인 도둑 이시카와 고에몬은 이 삼문에 올라 이곳 일대의 경치에 감탄하며 "절경이구나!!"를 외쳤다고 한다. 도둑마저 감탄했다는 경치가 궁금해 삼문에 오르려 했지만 가족들의 호응이 전혀 없었다. 역시 여러 명이 함께 하는 여행은 쉽지 않았다.
https://maps.app.goo.gl/VDTsjzrto4B3XovM7
하는 수 없이 수로교로 향했다. 일본정부가 도쿄로 수도를 천도한 후 수도의 지위를 잃은 교토는 정치 경제 전반으로 위기를 겪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교토시는 도쿄에서 공부하던 대학생 '다나베 사쿠로'의 논문 비와호 소수계획을 채택해 비와호와 교토를 연결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약관 23세의 공대생 다나베 사쿠로는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채용되고 그의 주도 하에 이 개발계획은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는다. 교토시는 이곳으로 흐르는 비와호의 물을 이용해 수력발전소를 지었으며 그로부터 풍부한 공업용수 및 전력을 얻어 다시 한번 비약적으로 발전을 하게 된다.
수로교의 양식은 로마에서 본 것과 동일한 아치형식을 띠고 있었다. 건축된 지 이제 백 년이 넘었을 뿐인데 군데군데 낀 이끼와 얼룩으로 이천 년이 다 되어가는 로마의 수도교와는 또 다른 운치가 있었다. 사진명당인 터널이 겹쳐 보이는 촬영 포인트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수로교 위에 올라가 봤다. 졸졸졸 힘없이 흐르고 있을 거라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비와호로부터 출발한 물줄기는 생각보다 많은 양이 거칠고도 힘차게 흐르고 있었다. 하긴 이 물줄기로 수력발전을 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이 힘찬 물줄기는 이곳 수로교 위를 미끄러져 내려가 우리가 오전에 부지런히 걸어왔던 철학의 길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https://maps.app.goo.gl/RAmxkwN3umLZUtncA
교토 시민의 휴식터 마루야마 공원의 야타이(포장마차)에서 파는 길거리 음식으로 적당히 끼니를 때운 우리는 고대사 앞에 있는 공원에 이르렀다. 오전부터 출발해 6시간 정도를 걸었더니 제법 피곤했다. 피곤해하는 아내도 쉬게 할 겸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중학생 아들들은 피곤하고는 전혀 상관없었던 모양이다.
"형, 나도 이번에 닭싸움 대표로 나가서 6명을 쓸었다고."
"아무리 그래도 넌 나한테 안돼."
"여기서 한번 해볼까?"
"이게 까불고 있네. 그 도전받아주지."
혁우가 닭싸움에 일가견이 있는 형에게 도발했다. 중학생들은 한 다리를 들어 닭싸움 자세를 만들더니 서로를 노려보았다. 이름하여 '고대사 공원 혈투'였다. 결투는 5번의 혈투 끝에 결국 형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패배에 분개하는 혁우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얼른 길을 나섰다.
고구려 도래인들이 세웠다는 '야사카의 탑'을 지나 니넨자카에 도착했다. 넘어지면 수명이 2년밖에 남지 않게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 말로는 2년 고개정도가 될 것이다. 근데 문제가 발생했다. 니넨자카에서 청수사로 이어지는 길 위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었다. 신년맞이 인파와 관광객이 한꺼번에 몰린 탓이었다.
"아빠 그만 가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오늘은 그만두고 청수사는 다음에 봐요."
"애들 말대로 오늘은 여기서 멈추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아침부터의 강행군이 무리를 일으킨 모양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가족들을 데리고 청수사 입구에서 발길을 돌렸다. 청수사에서 오조대로로 내려가는 길 역시 사람들로 가득 차 서로 부딪히지 않으려면 피해 다녀야 할 정도였다. 어떤 구간은 외나무다리처럼 마주 오는 상대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지나가기도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앞으로의 일정상 이곳 청수사 즉, 기요미즈데라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우리의 교토 동쪽 여행은 어마어마한 인파로 인해 그렇게 아쉽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https://maps.app.goo.gl/Ab5JUoL49Ch2YzS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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