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잘 보이려는 노력을 포기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을 적잖이 곤혹스럽게 한다. 적당하게 대지를 오염시키고, 숲을 황폐화시키고, 물과 공기를 더럽히고, 적당하게 타인이 누리는 편리함이나 행복의 몫을 완력으로 빼앗는다. 그러한 양심의 가책을 어느 정도 줄이고자 노력할 때 비로소 인간은 조금이나마 타인을 배려하는 행동을 취하게 된다.
나는 평생 적당하게 나쁜 일을 해왔기에, 적당하게 좋은 일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살아가고 싶다.
'적당한 악'과의 공생
'적당한 악'과 공생하며 살아간다는 인식은 내게 대단히 중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만약 내 의식에 '적당한 악에 대한 자각이 없다면 나는 바로 인간성을 잃는다. 자신이 대단한 인도주의자라 생각한다면 그 순간부터 누구든지 악취를 뿜어내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적당한 악을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결코 인정하지 않는 자칭 휴머니스트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오늘날 사람들이 향유하는 모든 편리함을 똑같이 누리면서도 발전소의 건설에는 반대하며, 언론에 발언하여 돈을 벌면서도 종이의 원료인 숲을 베는 일에는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