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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Feb 23. 2023

바다 건너, 어느 선술집에서



겨울이 문틈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기 시작한 12월의 어떤 날, 나는 후쿠오카의 어느 선술집 카운터에 혼자 앉아 있었다. 마침, 내 옆에서 먹고 있던 한국인 선남선녀 커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나가자마자 그들의 왼편에 앉아있던 일본인 부부가 자리를 정리하는 여자 사장님에게 방금 나간 한국인 여성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한국인 여성 너무 예쁘지 않아요?


그러게요. 여배우인지 알았다니깐요.


한국 여성들은 모두 예쁜 것 같아요.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라며 냉큼 그들의 대화에 끼고 싶었지만, 듣기 능력에 지나치게 치우친 나의 일본어 실력과 부족한 용기로 인해 상상에 그칠 따름이었다. 그렇게 하이볼만 홀짝 거리며 대화에 껴도 될지 말지를 주책없이 고민하던 내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혹시 한국에서 오셨어요?


약간 어눌했지만 분명 한국어였다. 내 오른편에 앉아있던 남녀 중 여성분이었다.


아... 예.


우리말임에도 그녀보다도 어눌하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가게 안에 있던 여섯 명 정도의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꽂혔다. 모두 한국 사람이 더 있는 줄은 몰랐었다는 표정이었다. 이 가게는 후쿠오카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까닭에 평소 한국 관광객이 그리 많이 찾아오는 곳은 아니었다.


저 부산에서 10년 정도 유학을 했었어요. 혹시 한국 어디에 사세요?


그녀는 처음보다도 더 능숙한 한국어로 내게 물어왔다. 그제야 자세히 보게 된 그녀 나이는 조금 있어 보였지만 고급스럽게 차려입은 미인이었다.


저는 제주도에 살아요.


아! 제주도! 저도 제주도 좋아해요. 제주도 살기 좋죠?


예. 물가 비싸고 바람 많이 부는 것 빼고는 살기 좋아요. 근데 한국어를 아주 잘하시네요.


제가 부산에 있을 때 꽤 오랫동안 한국 남자친구를 사귀었었거든요. 그때 사귀던 남자친구가 지금 제주도에서 카페를 하고 있어요.


나는 살짝 놀랐다. 그녀의 곁에 남편 또는 남자친구로 보이는 마동석을 닮은 건장한 남자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이 친구요? 우리는 그냥 친구예요.


그녀가 그와는 아무 관계도 아니라며 내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한데 그 말을 듣고 있는 그의 표정이 왠지 어색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비록 그녀가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로 말했지만 그는 방금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방금 한 남자가 오랫동안 좋아하던 한 여자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차이는 장면을 본 것인지도 몰랐다. 뭐,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왠지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저는 지금도 가끔 친구의 인스타그램에 몰래 들어가 안부를 확인하고 있어요. 보고 싶어서요.


그녀의 속없는 말이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도무지 그녀의 말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내 눈에는 온통 붉으락 푸르락 변하고 있는 마동석을 닮은 남자의 얼굴만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봐요, 제발 더 이상 나를 보며 말하지 말라고요. 나는 드라마 '심야식당'을 꿈꾸고 이곳에 온 거란 말이에요.'


불안한 마음에 아무런 대꾸도 못한 체 마음속으로만 중얼거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서비스예요.


그렇게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내게 종업 오토오시인 양배추 샐러드를 리필해 주었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에게 외쳤다.


여기 계산해 주세요!  


가게를 나오자 12월의 스산한 바람이 내 뺨을 후려치고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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