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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Feb 19. 2023

그의 얼굴이 궁금하다.



일 년에 한 번씩 해야 하는 스케일링은 내겐 너무 힘든 숙제다. 입부분만 구멍이 뚫린 천을 뒤집어쓴 채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입안 내부 여기저기에 강력한 물총을 맞는 결코 유쾌한 경험 아니었다.


잇몸이 아플 정도로 강한 물줄기가 치아와 잇몸 곳곳을 들쑤시내내  영화 속 외계인이 보내는 주파수 같은 강력한 소음을 계속 듣고 있어야 하는  역시 엄청난 고통이다. 내게 있어 스케일링은 눈이 안 보이는 공포와 치아가 시리고 잇몸이 아픈 통각, 그리고 소음으로 인한 청각의 고통이 한데 어우러진 아비규환에 다름 아니다. 그동안은 이러한 고통을 1년에 한 번씩만 참으면 된다는 것으로 버텨올 수 있었다.


지난주에 했던 정기건강검진에서 만난 의사는 내게 치아상태가 좋지 않아 이제는 6개월에 한 번씩 스케일링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청전벽력 같은 이야기를 던졌다. 큰일이었다. 1년에 한 번 받는 것도 죽을 것 같은데 6개월에 한 번이라니... 그 수술대 같은 의자에 앉아 입만 뻥 뚫린 두건을 강제로 쓰고 구강 전체가 철공소가 돼야 하는 경험을 이제는 일 년에 두 번씩이나 해야 하는 것이었다.


치과로 향했다. 치과의 문을 여는 일은 언제나 두렵기 짝이 없다. 유난히 친절한 간호사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한 표정의 나를  수술대 모양의 의자로 안내했다. 그녀의 미소조차 무섭게  느껴졌다. 그녀가 내 얼굴 위로 예의 입만 뚫린 천조각을 올렸다. 눈이 가려진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얼굴 전체가 두건에 덮혀 붕어 마냥 입만 뻥긋 벌리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뭔가 웃기면서도 기괴느낌의 장면이었다.


잠시 후, 병원의 원장이 헛기침을 하며 나타났다. 문득 지난 5년 동안 치과를 다녔지만 그의 얼굴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는 언제나 내 얼굴이 입만 뚫린 두건으로 덮혀 있을 때만 나타나 말을 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를 목소리로만 아는 것이었다. 그 역시 내 얼굴을 모를 것이었다. 어쩌면 그는 병원에 온 모든 환자를 얼굴이 아닌 이빨 모양으로만 인식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5년 정도 지났으니까 다시 잇몸치료를 하셔야겠네요.


원장이 건조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했다. 권유형의 말이었지만 내게 선택의 여지 따위없는 문장이었다.


꼭 해야 하나요?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원장은 지극히 담담한 어조로  치료를 받고 안 받고는 네 자유지만 만약 치료를 지 않는다면 조만간 치아는 작살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필요하다면 해야겠죠.


결국, 원장의 뜻대로 나는 치료를 선택하고 말았다. 처음부터 승부가 정해진 지극히 당연한 게임의 결말이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원장은 바로 원장실로 사라졌다. 나의 두건은 여느 때와 같이 그가 사라진 다음에야 제거되었다.


오늘도 나는 원장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나는 언제쯤 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출처: 내 얼굴, 아니고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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