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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Feb 22. 2023

당신의 옆자리 운은 오늘 최악입니다~




서울로 항하는 출장길이었다.

아침 7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6시 20분 무렵 공항에 도착했다. 바코드를 찍고 손바닥을 펴 손가락의 지문을 찍은 후 자동인식 게이트를 통과했다. 문득 기계가 내 손바닥의 손금도 인식하는지가 궁금했다. 만약 인식을 할 수 있다면 거기서 더 나아가 손금을 봐주는 건 어떨까? 물론, 재미로 말이다. 딱딱한 출입 절차에서 한 모금의 여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에게는 오늘 재물운이 찾아올 것입니다.


당신은 오늘 귀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이번 여행에서 인연을 찾을 것입니다.



우와! 생각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공항 측에서 그런 서비스를 해줄리는 만무하다. 아마도 본연의  보안업무에 집중하는데 방해된다고 하지 않을까?



어쨌든 나는 손금 서비스를 해주지 않는 자동인식기계를 통과한 후 비행기 탑승 게이트로 향했다.



비행기를 타는 일은 언제나 화물이 되는 기분이다. 웃음으로 무장한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승객들은 좁은 기내에 차곡차곡 횡으로 종으로 포개진다. 돈을 많이 낸 승객은 1.5배에서 2배의 공간을 제공받는다. 개중에 어떤 승객은 자신도 화물 중 하나임을 망각한 채 겨우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뭐라도 된 것인 마냥  갑질을 부리다 감옥에 가기도 한다.




배정받은 복도 쪽 자리에 앉은 나는 옆자리 승객 운이 좋기를 기도했다. 부디 날씬한 남자가 앉아 어깨를 부딪히며 신경전을 펼치고 가지만을 않길 바랐다. 혹시라도 여성이 앉으면 신체 접촉이라도 있을까 조심해야 했기에 그냥 평균 체형 이하의 남성이길 바랐다. 하지만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내 옆자리에 앉기 위해 복도 쪽 내 옆에 우뚝 선 남성은 실로 건장하기 짝이 없었다. 두꺼운 패딩을 입어서인지 한결 더 거대해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나를 통과해 앉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는 한마디 말도 없이 내 몸 전체를 빗자루로 쓸듯 지나가더니 털썩 자리에 앉았다.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두꺼운 패딩을 벗어 짐칸에 넣거나 무릎 위에 놓을 줄 알았는데 그가 패딩을 벗지를 않고 있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커다란 그의 몸이 패딩으로 잔뜩 부풀어 올라 마치 거대한 풍선이 자리 위에 놓인 것처럼 보였다. 나와 그 사이의 경계선을 한참이나 넘은 그의 거대한 몸은 나를 강력하게 압박해 왔다. 그와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몸을 복도 쪽으로 붙였지만 그건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 압박감으로 인한 답답함과 그로 인한 피로감이 나의 온몸을 덮쳐왔다.


결국 짜증이 난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거기에는 거대한 흑곰이 웅크리고 있었다. 나름 자신의 몸을 작게 만드려고 하는지 그가 잔뜩 몸을 앞으로 말고 있었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여 화조차 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행하는 한 시간 내내 이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뭔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어떻게든 그로 하여금 두꺼운 패딩을 벗게 해야 했다. 승무원에게 말을 할까? 하지만 승무원이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그냥 정중하게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죄송하지만 그 패딩 좀 벗어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면 선생님도 저도 지금보다는 훨씬 편해질 것 같은데요.



그는 마치 내가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재빠른 동작으로 패딩을 벗어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놨다. 성공이었다. 순간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인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는 북풍과 남풍의 일화가 떠올랐다. 나그네에게 따뜻한 바람을 불어 스스로 옷을 벗게 만든 남풍이 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패딩도 패딩이었지만 문제의 원인이 바로 그의 거대한 몸 자체에 있었던 탓이었다. 패딩을 벗은 그의 몸이 직접 내게 닿는 것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유난히 뜨거운 그의 체온이 문제였다. 아마도 패딩을 껴 입은 동안 꽤 많은 땀을 흘린 모양이었다. 그와 어떻게든 닿아보지 않으려고 몸을 이리저리 틀어보았다. 하지만 전혀 소용없는 일이었다.




만약 자동 인식 게이트에 손금으로 보는 운세 기능이 설치되어 있었다면 내게 이렇게 말했을  같았다.



오늘 당신의 옆자리 운은 최악입니다!!
최악입니다~~


내 귀로 실제 있지도 않은 기계의 환청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 정녕 나는 앞으로
한 시간 동안
이러고 가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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