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어학습을 위해 몇 년 전부터 화상영어를 하고 있다. 캠블리라는 어플인데 이곳에서 나는 많은 원어민 영어 선생님을 만나왔다. 그러다가 한 반년 전부터는 지금 하는 두 명의 선생님으로 정착이 되었다. 한 명은 런던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3세의 디자이너 선생님이고 다른 한 명은 일본 쿠마모토에서 생물학 박사 후 과정을 밟고 있는 아프리카에 위치한 나라 말라위 출신의 선생님이다. 두 분 다 공교롭게도 젊은 여성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한국에 계시는 세대주님의 심기가 사뭇 신경이 쓰인다.
'알죠? 내 선생님들이 여자들인 건.왜 내가 지난번에 모두 이야기한 거잖아요.'
어쨌든 오늘은 이 두 분 중 말라위 출신의 루스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아니다. 우선, 어제 만나 잠시 30분 수업을 함께 했던 이곳 발리에 거주하는 선생님에 대해서부터 먼저 이야기해야겠다.
사실 어제는 원래 런던에 있는 선생님과의 수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호텔의 와이파이 환경이 불안정했던 건지 그녀의 통신 환경에 문제가 있었던 건지 연결이 잘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다른 선생님을 찾아야만 했다. 나의 선생님이 어제 그 시간 말고는 이번 주는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고, 캠블리 정책 상, 한 주에 주어진 수업시간은 그 주 내에 소진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현재 발리에 살고 있다는 선생님과 접속이 되었다. 그녀는 온몸에 문신을 한 ( 사실 이곳 발리에서 문신을 한 사람을 보는 것은 한국에서보다 자주 있는 일이긴 하다. ) 강한 인상의 젊은 여성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내가 한 문장을 말할 때마다 나의 문장과 발음을 고쳐주었다. 그렇게 고쳐주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계속 말이 끊기니 그녀와의 대화가 지루하게 느껴지면서 계속 혼이 나는 느낌마저 들었다. 거기에는 그녀의 무심한 표정과 팔에 그려진 다양한 색깔의 무서운 문신들도 단단히 한 몫했다.
'그래도 이렇게 문장을 계속 고쳐주는 일도 쉽지는 않을 텐데 자기 일에 열심히 하는 것만큼은 인정해 줘야지.'
하지만, 그렇게 한 문장을 말하고 한 문장을 고치고 그것을 다시 읽어나가는 수업을 30분 동안 반복하는 것은 이 캠블리를 오랫동안 해 왔던 나 같은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와의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도 모르게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 드디어 끝났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두들겨 맞으면서 배웠던 30년도 더 전의 학창 시절 영어 수업을 다녀온 느낌마저 들었다.
자연스럽게 지금 나를 가르쳐주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향했다. 특히, 오늘 내게 특별한 선물을 주었던 말라위 출신의 선생님 루스에게 더욱 그러했다.
두 달 후, 재팬 레일 패스를 이용한 일본 전국일주를 계획하고 있다고 그녀에게 이야기하자, 고맙게도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 쿠마모토에 들러 자신과 같이 초밥을 먹자고 이야기해 준 그녀였다. 그녀는 자신의 분야인 생물학, 정확히 말하면 배아세포 관련 연구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최근 뉴욕으로 연구 발표를 다녀오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이 주가 넘는 시간 동안 실험실에 박혀 있느라 단 하루만 뉴욕 시내 관광을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오늘 내게 문제가 생겼다. 나는 나의 일본여행 기간을 21일 동안 무한정 일본 국철을 이용할 수 있는 재팬 레일 패스의 기간에 맞췄다. 그리고 그중 하나의 일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본 싱어송라이터 가수 '아이묭'의 콘서트를 보기로 했는데 그 티켓 구입에 있어서 문제가 생기고 만 것이었다. 그녀의 콘서트가 스마트폰으로 발송하는 전자티켓으로만 판매되었던 까닭에 반드시 일본 국내의 휴대폰 번호를 입력해야만 했던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한국에서 직접 일본 유심을 직구해서 등록을 하는 번거로운 절차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지금 이곳 발리에 있는 나로서는 그 방법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
사실, 어떤 가수의 콘서트를 예약해서 직접 보는 것은 생애 처음이었다. 그 처음 보는 콘서트가 하필 일본의 젊은 여성 가수라니... 그나마 아이돌이 아닌 기타를 메고 직접 노래를 하는 싱어송라이터라고 하는 사실이 내게 위안을 줬다. 그녀는 비록 국적과 성별은 달라도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찾기 힘든 젊은 시절의 김광석을 떠오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쨌든, '내가 뭐 이렇게까지 해서 일본 가수의 콘서트를 볼 필요가 있을까?' 하며 포기하려는 순간에 문득 일본에 살고 있는 나의 영어선생님 루스가 떠올랐다. 그녀에게 최근 이곳 발리에서 다시 시작한 인스타그램 디엠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바쁜지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무리한 부탁을 해서 미안하다는 내용의 디엠을 보낸 후 기다렸다.
몇 시간 후, 기다리던 그녀의 답장이 왔다.
"오늘은 바쁜 하루였어요. 메시지를 늦게 확인을 해 미안해요. '아이묭'의 콘서트면 당신이 이야기해 줘서 나도 좋아하게 된 가수인데, 당신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요. 내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 줄 테니 티켓 구매자 정보란에 입력해 사용하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나중에 당신에게 전송된 전자티켓을 이 디엠으로 제게 보내주시면 정말 감사할게요. 물론, 당신이 그 티켓을 그대로 사용한다고 해도 저로선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