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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Oct 14. 2024

과연 일본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일까?

히로시마 가는 길



기차역으로 오는 길이었다. 도로포장이 잘 안 되어 있어 트렁크를 끄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바퀴가 자꾸 도로의 움푹 파인 곳에 걸려 그걸 빼내는데 힘이 많이 들었다. 그냥 택시를 블러 올 걸 하는 후회가 올라왔다. 하지만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마이너스 통장의 잔고를 보면서 태평스럽게 그 비싼 일본 택시를 호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진땀을 흘려가며 트렁크를 끌고 있는 상황이었다.  내 왼쪽 옆으로 한 대의 승용차가 머리를 디밀었다. 좌회전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얼른 도로의 가장자리로 붙었다. 하지만 자동차는 지나가지 않았다. 나는 내가 그가 지나갈 도로의 왼쪽방향으로 붙어서 그런 건가 싶어 얼른 다시 오른쪽으로 붙었다. 그랬더니 그제야 자동차가 내 앞으로 지나갔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운전자인 중년남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돌아온 건 그의 언짢은 표정과 욕이라도 내뱉는 듯한 입술의 우물거림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그저 뭔가 바쁜 일이 있어 그런 거려니 넘어가기로 했다.



일본 방송은 드라마를 포함해 예능 프로그램까지 교훈적인 주제의 내용을 많이 방송한다. 혼신을 다해 자신의 일을 완수하는 소시민의 모습부터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정치인의 모습까지 그들의 말대로 잇쇼켄메이' 즉, 목숨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주인공들의 모습들을 그려낸다. 뭐 이러한 것은 열심히 하는 사회전체의 분위기를 위해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가 최근 들어 이상해지고 있다. 바로, 그 최선을 다하는 인물에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군인이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제국주의 이념에 헌신을 하고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군인을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는 드라마가 일본 최대의 공영 방송인 NHK에서 막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아직 그 내용을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군인이라는 주인공의 설정만으로도 앞으로의 전개가 충분히 그려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부디 나의 예상이 틀리기를 바란다. 주인공이 조국의 침략행위를 반성하는 것과 같은 전개로 흘렀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간 내가 보아온 비슷한 시기를 소재로 한 그들의 영화로 짐작하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는 듯하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육붕사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역사 교과서의 기술 내용이다.



"러일전쟁이 시작되자 일본은 무력을 배경으로 한국과 일한의정서를 체결했습니다. 한국의 영토를 타국(러시아)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일본군을 한국 내에 배치하는 것을 인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러일전쟁 중에는 미국이 필리핀을 영유하고 일본이 한국을 보호령으로 하는 것을 서로 지지한다는 내용의 미일 간 합의도 성립되었습니다. 갱신된 영일동맹과 포츠머스조약에서도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보호권이 인정됐습니다. 그 후 일한협약에 따라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잡게 되고, 한국통감부를 설치, 초대통감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부임했습니다. 이윽고 통감의 권한은 내정에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에서 저항운동도 일어났으나 진압되었습니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에서 한국인 안중근에 암살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910년 정부는 한국병합에 착수해 통치를 위해 조선총독부를 설치했습니다. 구미열강도 조선반도의 문제에 있어서 일본에 간섭할 의향이 없었습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지 않은가? 바로 최근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른바 뉴라이트의 식민지근대화론에 기반을 든 주장이다. 우리나라 뉴라이트의 주장을 그들이 옮겨 적었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우리나라 뉴라이트가 그들의 주장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횡석영 작가가 한 이야기가 있다.


"도둑놈이 도둑질하려고 쓴 사다리를 담장에 두고 갔다고 도둑놈에게 고마워해야 하는가?"


그들이 남기고 간 공장과 철도를  비롯한 생산설비들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닌 그들의 생산활동을 위해 만든 것들에 불과하다. 만약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도움이 된 점이 있다면 이는 그저 그들의 식민통치 과정에서 나온 우연에 불과하다. 당시 교육제도 또한 이를 증명한다.  그들은 의무교육 제도에 있어서도 일본인들은 소양교육 중심인 6년 제인 소학교로 하고 우리는 기술교육 중심인 4년제 보통학교를 실시했다. 그들은 우리를 그들에게 단순 노동력을 제공하는 말 잘 듣는 이등 국민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었다



일본 방송을 보다 보면 일본사람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자막을 곧잘 보게 된다. 뭐 실제로 거리에서 상점에서 만나는 믾은 일본인들의 예의 바르고 친절한 모습은 마치 그 사실을 증명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 오늘같이 날 선 사람도 만날 때도 있지만 그건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개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개인이 아닌 집단이 되었을 때에는 그들은 다른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여전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고  제국주의 시대의 군인을 영웅처럼 그려내는 드라마를 버젓이 공영방송에서 방영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과연 그들이 그들의 주장대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인가 싶다.  



오늘 나는 평화공원이 위치한 히로시마로 향한다. 그곳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으로부터 원폭 공격을 당한 일본인 희생자들을 기리장소이다. 분명 무고한 이들도 있었겠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희생자인 동시에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가해자였음을 잊지 않는 장소이기 바란다.


 반성 없는 평화의 외침은 공허한 위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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