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떠나야 했기에 서둘러 목욕을 한 후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어제와는 다르게 식당 앞에는 몇몇 사람들이 입장하지 못한 채 서성이고 있었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한국 사람들이었다.
"아, 서둘러서 나왔는데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하는 거야."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투덜거렸다.
"야!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좀 물어봐."
"나, 일본어 못하잖아."
"너, 영어는 좀 하잖아?"
"그러지 말고 그냥 좀 기다리자."
"아냐. 안 되겠어. 내가 물어봐야겠어."
남자는 좀 더 기다려보자는 친구의 만류를 뿌리치고 호텔 직원에게 다가갔다.
"웨이팅 타임?"
센스가 있는 질문이었다. 호텔 직원은 그 의미를 바로 알아듣고는 10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남자는 무엇이 그리 급한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한국 사람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제 자리에 앉아 호텔 직원이 자신의 순서를 부르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기다리는데 아직도 여섯 팀이나 남았다고."
그의 말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이 그들 부부의 번호를 호출했다. 잠시 후, 나 역시 입장할 수 있었다.
오늘은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투숙을 했는지 식당 곳곳에서 한국말이 들리고 있었다. 얼핏 10명이 넘어 보였다. 하지만 못해도 70명가량의 인원이 식사를 하고 있는 넓은 식당이었지만 내 귀를 뚫고 오는 소리는 모두 한국말이었다. 목소리가 유난히 큰 사람들이었다.
뷔페식이었던 까닭에 음식코너에서 음식을 뜨고 있는데 한 여성이 내 옆으로 바짝 붙어 내가 음식을 뜨자마자 따라붙어서는 황급히 뜨곤 했다. 그녀가 얼마나 가까이 붙었는지 그녀와 나의 팔이 부딪힐 정도였다. 그녀와 부딪히기 싫었던 나는 음식을 다 뜨지도 못한 채 서둘러 그녀에게서 도망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가 나를 따라왔다. 알고 보니 그녀는 내 옆자리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아까 성마르게 굴던 남자의 아내이기도 했다. 부부가 모두 성격이 급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바로 다음 장면이었다. 그녀가 자신이 가져온 비닐봉지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바로 포장 김치였다. 그녀는 그 작게 포장된 김치를 개봉한 후 남편과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00 엄마! 여기 자리 비었어. 얼른 이리 앉아."
나와 좀 떨어진 테이블에서 한 중년 여성이 멀리 앉아있던 다른 여성을 부르고 있었다. 그쪽을 보니 이미 테이블을 이어 붙이고서는 아침부터 한바탕 잔칫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거 먹어봐. 이거 진짜 맛있네. 아까 거기에 많더라. 떨어지기 전에 얼른 가져다 먹어."
시계를 보니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이 호텔은 비즈니스 급의 호텔인 까닭에 대부분의 투숙객들은 이 지역으로 출장을 온 일본 직장인들과 서양인 관광객들이었다. 그들이 힐끔힐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든 잔칫상을 못 마땅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 앞으로 누군가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까 포장 김치를 까서 먹던 부부였다. 남자의 말대로 정말 무슨 급한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식판을 반납하지 않은 채 그냥 가버린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식당에서는 식판을 놓고 가는 경우가 많으니 몰라서 그랬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이내 들고일어나는 생각이 있었다. 최소한 다른 나라에 왔다면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고 그것을 따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분명, 식당 입구에 식판을 반납하라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판을 반납하고 있었다면 식판을 반납해야 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여행을 하든 이민을 와서 살든 기존의 사회 구성원과 함께 하기 위해선 반드시 그들과 어울려 사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첫 단추가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관찰하는 것이다. 그 관찰을 토대로 자신의 상황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그들과 비슷하게 행동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요즘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외국인 이민자 문제의 원인 중에는 기존 주민들의 차별적 행위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민자들이 기존 사회와 융합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는데도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오로지 자신의 문화와 종교만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기존 사회구성원들과의 괴리감을 만들어 낼 뿐이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 음식은 꼭 먹어야 하고 아무리 급한 일이 있더라도 이 행위는 꼭 해야 한다는 일종의 신념들은 기존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들을 포용하려는 노력을 단념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배척하게 만든다. 때문에 외국인 이민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차별적인 행위를 줄이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이민자들의 기존 사회에 동화하려는 노력 역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여행자 역시 한시적인 이민자로 볼 수 있기에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내 옆의 부부가 머물다 간 자리에는 먹다 만 음식이 담긴 식판과 함께 김치를 포장했던 비닐이 흉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한 직원이 그들이 식사를 마치고 간 건가 생각하고 자리를 살펴보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뭔가를 확인하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들이 아직 식사 중을 표시하는 팻말을 그대로 올려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많은 호텔에서는 식사 중과 식사 종료임을 표시하는 팻말을 배부하는데 그들 부부는 식판을 그대로 두고 떠나면서도 팻말 역시 식사 중 상태로 두고 떠났던 것이었다.
그들 옆에서 식사를 하던 일본 중년 남자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그들 부부가 두고 간 식판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결국 그 시선이 불편했던 내가 그 자리로 가 그들 부부의 식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호텔 직원이 다가와 나를 도왔다. 그녀 역시 그들이 식사를 마친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해서 좀 더 두고 봤던 모양이었다. 나는 마스크로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린 맑은 눈의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