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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Oct 08. 2024

불편한 눈물

가나자와 호텔에서


가나자와 시내는 아침부터 비가 퍼붓고 있었다. 이제 날씨 요정은 내게서 완전히 떠난 모양이다. 호텔 조식을 먹는데 식당 한 편에 위치한 TV에서 세계의 젊은 영화감독들이 모여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대담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었다. 마침, 요즘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하여 이스라엘의 젊은 여성 영화감독이 자리하고 있어 그녀가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하며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독일에서 온 젊은 영화감독이 그녀에게 물었다.



"요즘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안타깝게 느끼고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는 2차 세계대전에 독일로부터 잔인하기 짝이 없는 홀로코스트를 당했어요."



독일인이 물어서 독일로부터 당한 홀로코스트를 이야기한 걸까? 그녀는 질문에는 얼렁뚱땅 대답한 채 자신의 선조들의 억울한 과거만을 하소연하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일본인 남자가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어쨌든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고 그렇다고 해서 현재 아무 상관이 없는 민간인까지 죽일 권리는 없지 않아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속 시원히 내뱉어준 그가 내심 고마웠다. 하지만, 정작 나를 황당하게 했던 것은 그녀의 다음 반응이었다.



"흑흑흑,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얼마나 억울하고도 잔인하게 가스실에서 돌아가신 줄 알아요? 우리는 어릴 적부터 매일 그 슬픔을 겪으면서 살아왔다고요."



그녀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억울함과 비통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어쩌면  현재를 살아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억울한 희생에만 초점을 맞춘 채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오로지 자신들만이 희생자라는 망상에 빠져서 말이다.



누군가의 눈물을 보면서 이토록 불편한 감정이 들었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상처와 슬픔을 부정할 생각도 없으며 또한 부정해서도 안된다는 생각이다.  단, 이스라엘 사람들의 상처와 슬픔과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상처와 슬픔도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잔인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라 하더라도 보복 또는 반격의 정도는 어느 정도 자신이 당한 선을 감안해 가며 결정해야 한다. 이른바, 전쟁에도 비례의 원칙이라는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희생자를 만들어내는 현재와 같은 이스라엘의 전쟁 방식은 지양되어야 한다.


그녀의 눈물이 불편한 이유를 알았다. 그녀의 눈물에는 희생당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희생과 상처에 대한 공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커다란 호텔 유리벽 너머로 지금도 전쟁의 폐허 속에서 수시로 날아드는 포탄의 공포 속에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눈물 같은 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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