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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Oct 07. 2024

사과의 고장, 아오모리에서

아오모리의 깊은 밤

아오모리항 위를 가로지르는 베이 브릿지의 모습

삿포로에서 출발해 바다 밑으로 연결된 세이칸 해저터널을 지나 사과의 산지로 유명한 아오모리에 도착했다. 아오모리 사과에 대한 유래는 다음과 같다.


아오모리 사과의 유래는 일본의 근대화 시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1875년, 일본 정부는 서양식 농업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미국에서 사과 묘목을 들여왔으며, 그중 일부가 아오모리 지역에 심어졌다. 아오모리는 독특한 기후 조건과 비옥한 토양 덕분에 사과 재배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하였으며, 이후 사과 농업은 빠르게 확산되었다.

특히, 아오모리 지역의 농민들은 현지 기후에 맞는 재배 기술을 꾸준히 개발하고, 품질 관리에 주력하면서 일본 내에서 사과 생산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아오모리 사과가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고품질 농산물로 인식되는 데 기여하였다.

결과적으로, 아오모리 사과의 유래는 단순한 외래 작물의 도입을 넘어, 지역 농민들의 노력과 기술 발전, 그리고 자연환경이 어우러져 형성된 일본 농업의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과정으로 평가할 수 있다.


자, 이제 일본 사과의 유래도 잘 알았고 총리도 바뀌었으니 우리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한 번쯤 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싱거운 각을 하며 아오모리 역에 발을 디뎠다.


오후 세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날이 궂은 탓인지 벌써부터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래서일까? 도시의 첫인상이 음습하게 다가왔다. 사림들로 가득했던 삿포로의 거리와는 다르게 인적이 유난히 드물었다.

아오모리 역 주변에는 도보로 둘러볼 수 있는 다양한 관광 명소가 있어 짧은 일정으로도 충분히 즐길 거리가 있었다.  내겐 하루의 일정 밖에 없었다. 뭐 하루라고 해봐야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뿐이었지만 그래도 알차게 보내기로 마음먹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먼저, 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위치한 아오모리 항구로 향했다. 이곳에는 유명한 와라세 네부타관(ねぶたの家 ワ・ラッセ)이 위치하고 있다. 전시관에는 아오모리의 대표적인 축제인 네부타 마쓰리의 화려한 장식물과 역사를 전시하고 있었다.


지만, 시간을 보니 벌써 네 시가 넘었다.  네부타관의 관람시간이 곧 끝날 예정이었으므로  전시관은 내일 오전에 돌아와 관람하기로 한다. 마침 티켓 오피스에서는  와라세 네부타관과 아스팜 전망대, 세이칸 연락선 전시관을  모두관람할 수 있는 콤보 티켓을 판매하고 있었다.

"지금 사면 이걸로 내일 관람도 가능할까요?"

"예. 가능해요." ( 하지만, 다음 날 왔을 때는 직원이 다른 이야기를 해서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콤보 티켓을 바로 구입한 나는 얼른 아스팜 전망대로 향했다.  시간이 늦으면 아스팜 전망대 역시 관람할 수 없을지 몰랐다. 항구를 따라 빠르게 걷다 보니 아스팜(ASPAM, 아오모리 관광물산관)에 도착했다. 이 건물은 마치 피라미드와 같은 독특한 모양으로 아오모리의 특산품을 구입하거나 지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이었다.

나는 곧바로 전망대로 올라갔다. 그리곤 내가 오늘 아침까지 머물던 홋카이도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오모리 항구는 일본 대부분의 도시가 위치한 혼슈 북쪽에서도 깊은 항아리 모양으로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한 터라 아무리 높이가 있는 전망대라고 해도 이곳서 홋카이도는 이지 않았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아오모리 시내의 모습



2층으로 내려가 이곳 지역 축제인 네부타 공연장면을 촬영한 3D영화를 관람했다. 아오모리는 작은 지방 소도시였지만 네부타 축제만큼은 대도시인 도쿄나 교토 못지않은 화려함이 있어 사뭇 놀랐다.


네부타 축제 때 사용하는 대형 종이등인 네부타의 모습, 마치 만화같은 외관이었다.

우리나라의 지방 도시들도 이런 축제를 육성하면 어떨까? 싶다가도 이렇게 사람들이 한데 모여 거대한 가마를 옮기는 작업은 오로지 집단을 우선시하는 일본 사람들만이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가로젓고 만다. 말이 축제라고는 도 지역 사회의 일원들이 평소에도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어야만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좀 숨 막혀하지 않을까 싶었다. 우선 나부터도 그러할 것 같았다.

아스팜 전망대를 나와 '러브릿지'라는 다소 유치한 이름의 다리를 걸었다. 이곳은 특히 저녁 무렵에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로,  사람이 없는 아오모리 시내와는 다르게 젊은 연인들이 삼삼오오 데이트를 즐기고 있어 하늘을 붉게 물들고 있는 저녁노을과 제법 어울리는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은퇴한 세이칸 연락선 내부를 활용한 세이칸 전시관에 도착했다. 홋카이도와 아오모리를 연결했던 세이칸 연락선(青函連絡船, Seikan Ferry)의 세이칸이란 이름은 아오모리의 앞 글자와 하코다테의 앞글자를 붙여 만든 이름이다.  세이칸 연락선은 일본의 본토인 혼슈와 최북단인 홋카이도와의 교통을 오랫동안 담당했던 중요한 해상 교통수단이었다. 1908년에 처음 운항을 시작해, 세이칸 해저터널이 개통된 1988년까지 약 80년 동안 운행했다.


세이칸 연락선 내부를 활용한 세이칸 전시관의 모습



세이칸 연락선은 아오모리 항과 하코다테 항을 오가는 해상 운송수단으로, 주로 사람과 화물 운송에 사용되었다. 철도 교통망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홋카이도와 본토를 연결하는 항로는 중요한 교통로로 자리 잡았고, 이를 통해 홋카이도와 본토 간의 물자 교환과 여행이 활발해졌다. 거대한 세이칸 연락선에는 화물을 실은 화차와 기관차가 통째로 실어져 홋카이도의 농산물 및 수산물을 본토로 운송했으며, 이는 홋카이도 개발과 일본 경제 발전 큰 기여를 했다.


화물이 가득 실은 열차를 세이칸 연락선에 그대로 실을 수 있게 만든 거대한 구조물의 모습



1988년, 일본 최초의 해저 터널인 세이칸 터널(青函トンネル, Seikan Tunnel)이 개통되면서 세이칸 연락선은 그 역할을 터널에 넘겨주고 운항을 중단했다. 세이칸 터널은 아오모리와 홋카이도를 철도로 직접 연결하며 세이칸 연락선의 기능을 완전히 대체하고 말았다. 하코다테에 있는 기념관에서도 아오모리와 같이 연락선의 일부가 전시되어 역사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흡사 유령선처럼 보이는 낡은 배 위로 컴컴한 어둠을 뚫고 들어섰다. 거대한 배의 구조를 활용한 전시물의 아기자기한 배치가 오랜 세월 이곳을 오가던 서민들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현재에는  한 눈에도 쇠락해 보이는 아오모리이지만 흔히 쇼와시대라고 이야기하는 1960년대 중반에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게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질퍽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전시관에는 당시 시장에서 생활을 이어가던 서민들의 모습을  음향 효과와 함께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었다.

지금과 비교도 안되게 많은 사람들로 붐비던 쇼와시대의 아오모리 모습
아오모리 사과를 팔고 있는 시장 상인의 활기찬 모습





배의 움직임을 조종하는 조타실을 지나 바깥으로 나갔다. 선체를 비추고 있는 붉은 조명이 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무척이나 스산하게 하고 있었다. 기관실 내부의 연기를 뽑아내던 거대한 연통실에 올라갔다. 그곳서 내려다보는 야경이 제법 아름다웠다.  


붉은 조명 때문에 스산하게 느껴진 전망대의 모습



다시 조타실을 지나 내부로 내려갔다. 거대한 배를 움직이는 동력을 공급하던 기관실과 전기를 생산해 내던 발전실이 있었다. 하지만 은 시간이어서일까? 관람하는 사람이 나 하나뿐이었다.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정체 모를 기계음은 금방이라도 귀신이라도 나올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안 그래도 50년 대 중반, 큰 사고를 당해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다는 자료를 봤는데 왠지 이 낡은 배에는 아직도 그때의 원혼이 남아 있을 것 같았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데 거대한 괴물의 울음소리가 같은 굉음이 "끼익 끼익" 거리며 항구를 울리고 있었다. 아마도 아까 기관실에서 들은 소리인 듯했다. 


거대한 화물칸의 모습

'정말 원혼들의 울음소리일까?'

화물칸에 실었던 디젤 기관차의 모습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니 원혼의 울음소리 따위는 아니었다.  그저 항구에 묶어둔 배가 파도에 부딪칠 때마다 요동치며 내는  배를 묶어 놓은 쇠줄의 마찰음일 뿐이었다. 치 그 소리가 파도에 부딪혀 아파하는 비명소리처럼 들렸다. 오랜 세월 바다를 누비다 쇠줄로 묶인 세이칸 연락선이 다시 자유를 그리워하며 고통에 겨워 내뱉는 신음과 같이 느껴졌다.

 아오모리 항의 검은 밤은 깊어만 고 있었다.




다음 부타 전시관을 다시 찾았다. 네부타 축제는 일본 아오모리 현에서 매년 8월 2일부터 7일까지 개최되는 전통 축제로, 그 규모와 화려함에 있어서 일본 대표 축제 중 하나로 불리고 있다. 이 축제에 대해. 일부 연구에서는 중국에서 기원한 등불 행사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네부타 축제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거대한 종이등(ねぶた, Nebuta)을 제작하여 도시를 행진하는 것이다. 이 종이등은 나무와 종이로 만들어지며, 일본 전통의 사무라이, 또는 중국의 전설 속 인물, 혹은 신화적인 존재를 주제로 한다. 나무와 종이로 만들어진 거대한 네부타는 극도로 정교하게 제작되며, 화려한 불빛과 함께 사람들에 의해 옮겨지게 된다.


화려하고 다양한 네부타의 모습



축제의 핵심은 화려한 행진으로, 수십 대의 네부타가 전통 음악에 맞춰 도심을 누비며 펼쳐진다. 이 행진에는 축제 참여자들이 '하네토'라는 전통 의상을 착용하고 참여하며, 이들은 '랏세라'(ラッセーラ)라는 구호를 외치며 활기찬 춤을 춘다. 이 춤은 한 다리로 두 번씩 깡충 뛰는 춤인데 워낙 쉬운 춤인 까닭에 방문객들도 어렵지 않게 춤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축제의 참여는 단순한 관람을 넘어 지역 주민과 방문객이 한데 어울리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어쩌면 여타 다른 일본 축제와는 다른 네부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아닐까 싶었다. 관객과 어울려 한 마당을 펼치는 우리네 마당놀이와도 일맥 상통하는 면이 있지 않을까하생각도 들었다.


작년에 대상을 수상했다는 네부타의 모습, 하얀 눈을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엇다.



네부타 축제는 자꾸만 움츠러드는 아오모리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아오모리 현의 대표적인 관광 자원으로서, 매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며,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 네부타 제작과 관련된 전통 공예 기술의 전승 역시 축제의 중요한 부분으로, 축제를 통해 지역 공예는 지속적으로 계승 발전되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도 전통 공예 기술이 사라지고 있는데 이러한 축제와 접목시키는 것은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네부타 축제 모습을 묘사한 모형의 모습


열차의 시각이 임박했던 까닭에 얼른 전시관을 나섰다. 어제 봤던 아오모리의 검은 하늘이 어느새 한없이 투명하고 파란 하늘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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