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오카에 도착했다. 기차를 타고 오는 내내 찌푸리던 하늘은 내가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트렁크를 끌고 호텔을 찾아가는 길이 사뭇 처량맞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깟 날씨에 이 소중한 시간과 여행자의 기분을 망칠 수는 없었다. 짐을 얼른 호텔에 놓고 실내 관람이 가능한 시즈오카시 역사박물관을 찾아가기로 한다.
비오는 슨푸성의 모습
시즈오카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여러모로 인연이 깊은 도시이다. 당시에는 '슨푸'라는 이름으로 세계각국에 알려졌으며, 이에야스는 어린 시절 이곳 이와가미 가문에서 성장을 하였으며 중년과 말년 역시 이곳에서 보냈다.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모습들
우리나라의 기록으로는 임란 이후인 1507년 조신통신사로 파견된 경섬(慶暹)이 쓴 해사록(海槎錄)이 있다. 이 해사록의 한 부분이 시즈오카시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 반가웠다. 당시 번성했던 슨푸의 상업지역과 거대한 서양범선을 묘사한 내용에 후지산을 바라본 소회가 적혀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의 정권이 임란을 일으킨 도요토미가 와는 다른 것임을 강조하며 국교 재개를 요청하였고 이에 조선은 일본의 정세를 살피고자 통신사를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당시 통신사가 지나가는 행렬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는데 이는 조선에서도 준비를 많이 해 보낸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 토쿠가와 막부에서 정권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한 선전효과로 활용한 측면이 더 컸다. 통신사가 지나가는 각 지역 다이묘들은 최선을 다해 통신사를 영접해야 했으며, 이것이 점점 심해지자 그 사치스러운 접대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생기며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흔히들 통신사에 대해 '일본에 조공을 바친 것이라거나 일방적으로 문화를 전파한 것이다.'라는 단편적인 측면을 강조한 왜곡된 시선이 있지만, 이는 모두 잘못된 주장이다. 조공이라는 표현은 토쿠가와 막부가 정권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일본 국민들과 서양세력에 거짓말을 한 것이고, 또한 일본의 지식인들에게 서신교환을 통한 문화를 전파한 것은 그저 문화를 전파한 것이 아닌 일본에게 재침을 당하지 않기 위한 정보 수집에 수반된 부가결한 행동으로 보아야 한다.
토쿠가와 막부가 인질로 지방 다이묘들을 다스리던 참근교대 루트가 통신사들의 루트로 활용되었다.
시즈오카시 역사박물관에서 특이한 인물도 한 명 발견하였는데, 그녀의 이름은 '줄리아 오타'였다. 그녀는 임란 때 조선에서 끌려간 우리나라 소녀로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을 위해 일하며 스페인에서 파견된 사절과도 교류를 했다고 한다. 전쟁포로인 그녀가 스페인 사절과 교류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이었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머나먼 이국 땅으로 끌려와 보편적 사랑을 강조한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게 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막막한 심정을 떠올리니 마음이 아려왔다.
이튿날 아침, 후지시로 떠났다. 후지산을 보다 가까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곳 후지시에는 후지산의 전경을 볼 수 있는 명소가 여럿 있었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보았던 '꿈의 대교'로 향했다. 원래 그저 139번 국도의 한 군데에 놓인 육교에 불과한 구조물인데 워낙 SNS에서 입소문을 타다 보니 어느새 꿈의 대교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시즈오카현은 후지산으로 유명한 지역으로 지역의 상징으로도 활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도 역시 '오버 투어리즘'의 몸살에 시달리고 있었다. 마을 곳곳에 중국어와 우리나라말, 영어로 된 '이곳은 주거지니 함부로 주차하지 말고 조용히 해 달라.'는 문구가 살벌한 기세로 적혀 있었다. 그래도 자기 나라에 찾아온 손님들인데 너무 박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섭섭한 마음이 들다가도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시끄럽게 했으면 이럴까 싶어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과 함께 이해가 되었다.
마을 곳곳의 경고 문구들
원래는 이 장면이 나와야 할 터였는데...출처: 구글 이미지
육교 계단을 오르며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는데 바로 옆 가정집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중년 여성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하지만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이 하도 사나워 나는 얼른 발을 재촉해 도망쳤다.
그녀의 저주 때문이었을까?
새벽같이 거의 한 시간을 넘어 신간센을 타고 왔건만 거대한 후지산은 하얀 구름 떼에 숨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이에 비하면 우리 한라산은 웬만하면 그 모습을 드러내 방문객들을 반기고 있으니 제주로 돌아가면 그녀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리라 마음먹어본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보이는 여성 한 명이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