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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Oct 02. 2024

가을의 설국에서

에치고 유자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로 시작되는 유명한 소설 '설국'의 고장인 에치고 유자와에 도착했다. 소설 설국은 일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이다. 그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3년이 지난 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 시마무라처럼 현실에 발을 디딜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스스로 대지와 이별하는 선택을 했다.


원래 이곳에 올 계획은 없었는데 브런치 작가님인 꽃작가님의 추천으로 일정에 넣은 도시였다. 이곳은 설국이라는 별칭대로 겨울이 유명한 도시이다. 눈이 2미터가 넘게 쌓여 겨울 시즌에는 스키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한다.


메이지 유신에 의해 막부 시대의 행정구역인 번을 폐지하고 새로이 현을 설치하는 폐번치현 정책이 실시되었다. 원래 서로 다른 지방영주인 다이묘가 다스리던 곳이었던 까닭에 소설 설국은 '국경'이라는 표현으로 군마현과 니이가타현을 연결하는 터널을 표현다. 겨울이 아니라 방문 시기가 아쉬웠지만 가을의 설국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한 마음을 가진 채 에치고 유자와로 향했다.


오래전에 읽은 소설인지라 도착 전 기차에서 다시 한번 작품의 줄거리를 찾아봤다.



소설 설국의 배경은 일본의 눈 덮인 시골 온천 마을로, 이 마을은 폭설로 유명한 외딴곳이다. 기차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이 고립된 마을은 그 자체로도 이야기 속 인물들의 고독과 단절된 감정을 상징한다. 기차를 타고 온 시마무라는 이 마을을 여러 번 방문하면서, 도쿄에서의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안을 찾고자 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시마무라가 기차 안에서 본 요코라는 여자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요코는 마치 투명한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며 시마무라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녀는 아픈 남성을 간호하는 역할로 등장하며, 그와는 대조적으로 차분하고 미스터리한 인물로 묘사된다.

마을에 도착한 시마무라는 고마코라는 젊은 게이샤를 만나게 된다. 고마코는 시마무라에게 순수하고 직설적인 애정을 드러내며, 그의 관심을 끌지만 시마무라는 고마코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지 않는다. 고마코는 자신이 시마무라에게 다가가면서도 그와의 관계에 대한 불확실함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갈등한다. 그녀는 시마무라와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하면서도 슬프고, 둘의 관계는 깊어지면서도 어느 순간 한계를 느끼게 된다.

한편, 시마무라는 고마코와 가까워지면서도 여전히 요코에 대한 관심을 놓지 못한다. 요코는 계속해서 시마무라의 머릿속에 남아 있으며, 그녀의 신비로운 분위기는 그에게 마치 꿈속의 존재처럼 다가온다. 시마무라는 요코를 통해 현실과 이상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낀다.

결정적인 사건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고조되며,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시마무라와 두 여인의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일어난 불은 인물들의 감정을 상징적으로 불태우는 사건으로 묘사된다. 마을의 창고가 불에 타는 장면에서, 요코가 자살하고, 코마코와 시마무라가 은하수의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것으로 작품은 끝을 맺는다.


호텔 근처에 위치한 설국관에 방문했다. 주인공 시마무라가 여주인공 코마코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만큼의 청결함이 돋보이는 젊은 여성이 친절하게 반겨 주었다. 혹시나 그녀가 코마코의 실제 모델인 마츠에이와 관련이 있진 않을까 하는 실없는 상상을 해보았다. 하지만 상상은 그저 상상의 모습으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전시관 1층은 설국의 세계를 묘사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2층에서는 코마코의 실제 모델인 마츠에이의 생전 모습이 관람객을 반기고 있었다. 시마무라를 사랑했던 코마코의 실제 모델인 마츠에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나마 볼 수 있어 좋았다.

사친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구글에서 찾은 마츠에이의 이미지

나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아름답게 묘사된 다른 여주인공 요코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직설적인 코마코에게 더욱 매력을 느꼈다.

실제 게이사몄던 마츠에이가 머물던 방의 모습

설국관을 나오자 작은 다리가 보였다. 그 다리에는 오랜 세월을 간직한 이곳 에치고 유자와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한편에 길게 전시되어 있었다.


영화 속 요코와 시마무라의 한 장면 당시 요코를 연기했던 배우의 나이는 18세로 그녀를 본 사람들은 모두 인형같이 생겼다고 감탄을 했다고 한다.



시마무라가 머물며 설국을 집필했을 당시의 온천 여관의 모습


온천가를 걷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


길의 끝에 산으로 오르는 케이블카가 있었다. 원래 겨울의 설경이 제 맛이라는데 가을에 온 나는 이곳의 가을을 온전히 즐기기로 했다.  이곳에서는 로프웨이라고 부르는 케이블카를 타고 10분 정도 올랐다. 그곳에는 청명하기 짝이 없는 가을 하늘이 운 좋은 방문객들을 환한 표정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리프트로 갈아타고 고산 식물원에 도착했다. 습지의 물이 어찌나 맑은지 소금쟁이들을 오랜만에 볼 수 있어 반가웠다. 식물 하나하나 정성스레 가꾸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이 식물들의 모습만큼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에치고 유자와 역을 빠져나와 나가노로 향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다시 현실이 반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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