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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Sep 28. 2024

일본여행에 필요한 자세

내가 일본 정부의 사과를 믿지 않는 이유




본 정부에서는 이미 몇 번인가 자신의 침략행위에 대한 사과를 했다고 한다. 물론, 그때마다 '통석'같은 그들도 잘 쓰지 않는 이상한 단어를 써서 여전히 우리를 헛갈리게 하지만 일단 공식적으로는 사과의 시늉을 한 것으로는 보인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의례 하던 이러한 사과조차도 최근 정부가 들어서고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정말 그들의 주장대로 사과를 한 것인가? 나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사과는 사과의 진정한 요건인 진정성의 결여로 사과라고 볼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그들 또는 우리 사회의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은 그들의 사과가 진심이 아니라는 근거가 도대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들의 사과가 진심이 아니라는 것쯤은 바로 알 수 있다. 그들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교과서를 들여다보면 된다. 특히 역사 교과서를 보면 된다. 역사 교과서에서 그들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한 행위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면 된다.



불행히도 교과서만을 놓고 봐도 일본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의 침략행위를 숨기는데 급급하다. 기술을 하더라도 아주 간단하게 무슨 재수 없이 교통사고가 났던 것 마냥 간략하게 적어놨다.



내가 동남아시아 여행을 하면서 본 그들의 침략에 대한 역사만 해도 한 가득인데 그들은 그것을 단 몇 문장으로만 적어 놓았다. 그들은 심지어 '침략'이라는 명백한 용어대신 '진출'이라는 애매한  단어로 그들의 침략행위를 덮고 있다. 그들은 마치 이런 침략행위를 자신들의 영광스러운 역사의 작은 흠집정도로 생각하는 듯 보인다. 때문에 이들의 사과에는 진정성이 없다.



백번 양보해서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는 게 무슨 문제냐고 물을 수도 있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고, 왜 그렇게 과거에만 집착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현실의 것이라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는 것은 자신들의 침략행위에 대해 후회와 반성이 없다는 것이고 시간이 흘러 힘을 얻는다면 이를 얼마든지 다시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집권 세력의 중추는 메이지 유신 이후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심지어 미군이 점령했을 때조차도 현실 통치의 용이함을 위해 심각한 전범들을 제외하곤 집권 세력을 바꾸지 않았다. 미군은 같은 시기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행동을 해 친일파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내주었다.



미군정의 배려로 양국에서 살아남은 일본 제국주의 이상을 가진 세력은 지금도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살아남아 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20세기 초와  비슷한 상황이 되면 동아 사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허울 좋은 목표를 내세워 다시 한번 야욕을 드러낼 것이다.



일본은 한 번도 민중의 힘으로 그들의 집권세력을 바꾼 경험이 없는 나라라고 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천황은 천년 이상의 기간 동안 같은 왕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일본의 집권당인 자민당은 단 한 번을 제외하고 근 팔십 년 동안 정권을 잃은 경험이 없다. 이는 세계사적으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없는 아주 특별하고도 독특한 역사적 사실이다.


 '만세일계'라는 말은 한 나라의 역사와 한 왕조의 역사가 같다는 그들의 자부심을 표현한 말이다. 과연 이것이 자랑할만한 일인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리 훌륭한 정치세력도 주기적인 교체가 없다면 고인 물과 같이 썩기 마련이란 걸 인류의 오랜 역사는 증명을 해주고 있다.



그러기에 지금의 극우화된  일본 정부의 모습이 나는 더욱 두렵다. 일본이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바뀌는 데 있어서 그들 내부에 실질적인 브레이크가 없는 것이다. 개개인으로 보면 선하고 얌전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일본 개인들의 성정은 이러한 변화에 크나큰 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 번도 그들의 힘으로 정치체제를 바꿔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대다수의 일본 국민들 역시 또다시 2차 대전 당시의 전체주의 전쟁 국가의 병사와 노동자로 전락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믿고 싶다.



최근, 일본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일본 문화를 좋아하고 일본 여행을 가고 일본 음식을 먹는 것까지 이 세계화된 시대에 비난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일본제품은 써서는 안 되고 일본 여행은 가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이제 와서 그러한 답답한 과거로 회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최근 일본 넷플릭스 순위에는 상당수의 우리나라 드라마와 영화가 놓여있다. 시내 곳곳에는 제법 우리나라 음식점들도 보인다. 이처럼 일본 사람들이 우리의 문화를 즐기듯, 우리도 그들의 문화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저 이탈리아 요리인 파스타를 먹는 것처럼 메밀 소바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 대해서 만큼은 경계를 100퍼센트 풀고서 마냥 편하게만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진정한 사과 없이 그들의 젊은 이들에게 반성 없는 역사를 가르치고 틈만 나면 독도가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그들의 미소에 빠져 일종의 환상을 갖는 순간 우리는 다시 한번 그 옛날의 치욕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벌써 최근 500년 동안 두 번이나 뼈 아픈 침략을 당했다.




배울 것은 배우고


경계할 것은 경계함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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