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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pr 25. 2018

걸어서 스페인까지

생장피드포르(프랑스)- 론세스바예스(스페인)

  

생장피드포르(프랑스)- 론세스바예스(스페인)     


11살 일기      

오늘은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힘든 날이었다. 힘들어서 계속 눈물이 나왔다. 아빠와 한라산 백록담을 오를 때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아빠가 순례 길을 끝까지 가자고 할까 봐 무섭다.     


9살 일기

초코바가 다 떨어져서 너무 힘든 하루였다. 형에게 초코바를 빌려달라고 했다. 형은 “네 꺼 다 먹었으면 그만 먹어.”라고 말했다. 형이 미웠다. 아빠가 초코바만 많이 사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다.




드디어 순례 길의 첫날이 열렸다. 잠자는 사이 혁우는 악몽을 꿨는지 어느새 좁은 내 침낭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밤새 뒤척인 혁우 덕분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 한 내 몸의 컨디션은 완전 바닥이었다. 감기 기운에 두통마저 느껴졌다. 식당에 비치된 우유와 시리얼을 아이들과 대충 먹은 후 한국서 가져온 두통약을 꺼내 먹었다. 이미 한국인 청년 둘은 출발 채비를 갖추고 숙소를 나서려 하고 있었다. 다음 알베르게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그들이 떠났다.

     

짐을 챙겨 나오다가 식당 구석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수염 덥수룩한 백인 남자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 알베르게에 머물고 있는 순례객 중 유일하게 한국인이 아닌 사람이었다. 화가냐고 물어보자 그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 잘 그린다.”


아이들이 그가 그리고 있던 그림을 보더니 탄성을 질렀다. 그는 아이들의 감탄이 싫지 않은지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여주었다.


숙소의 공기는 추웠지만 따뜻했던 그의 그림

“까미노 중이라고요?”

“예.”

“당신들은 정말 용감해요.”

“왜요?”

“이 추운 겨울에 순례 길을 떠나고 있으니 말이죠.”


그의 말에 나는 가만히 웃어주었다.

     

위대한 예술가의 응원을 받으며 한 컷

 아침부터 도진 길치 병 때문에 목적지와는 반대방향으로 한참을 돌았다. 혼자 여행을 할 때는 이 정도로 방향 치가 아니었는데 아이들과 함께하니 자꾸만 길을 놓치고 있었다. 아마도 고려해야 할 항목이 늘어난 내 두뇌에 버퍼링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골목길 중간에 영화 ‘나의 산티아고’에 나왔던 순례 길 장비를 판매하는 상점이 보였다. 주인공 ‘하페’는 순례 길을 이곳에서 출발하면서 지팡이를 구입했다. 영화 상으로는 굉장히 큰 상점처럼 보였는데 실제로 보니 무척 협소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니 피레네 산맥을 가로지르며 가는 길과 도로로 우회하는 길로 나뉘는 갈래길이 나왔다. 잠시 앉아서 쉬기로 했다. 길을 헤맨 까닭일까? 본격적인 여정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지치는 느낌이었다.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프랑스 노인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 어디 가나?”

“ 산티아고 갑니다. "

" 오우 용감하군."

    

용감하다는 이야기를 아침부터 두 번이나 듣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힘들기에 다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내딛는 오른발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겨울임에도 들판은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랬다. 낮게 드리워진 아침 안개가 신비한 기운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안개 너머로 어제 만났던 여성 순례자가 힘차게 걷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모른 척하려는데 일우와 혁우가 동네 누나를 만난 것 마냥 먼저 인사를 하며 달려갔다. 일우는 아껴두었던 초코바를 꺼내어 그녀에게 건넸다. 자기 초코바를 이미 다 먹어치운 혁우가 그렇게 달라고 애원하던 초코바였다. 혁우가 어이없다는 듯 형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잠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 그녀는 인사를 한 후 먼저 떠났다. 혹시라도 같이 가자고 할까 봐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잘됐다. 그녀가 아이들의 느린 걸음에 보폭을 맞추기란 무리였으리라.  

   

 걷기 시작한 지 세 시간이 넘어갈 무렵 일우가 어깨 고통을 호소해왔다. 아무래도 일우의 배낭이 너무 무거운 모양이었다. 일우의 배낭에서 짐을 빼 내 배낭에 넣어보려 했지만 이미 다른 짐으로 꽉 찬 내 배낭에 더 이상의 여유는 없었다. 안타까웠지만 힘들어하는 일우를 달래며 천천히 갈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프랑스를 넘어 스페인 국경 마을에 들어섰다. 마트를 발견한 우리는 마트에 들어가자마자 물이며 빵이며 과자를 닥치는 대로 샀다. 겨우 몇 시간의 순례 길은 우리를 순식간에 사나흘 굶은 난민처럼 만들었다.


‘겨울인데 물이 많이 먹히겠어?’


생각보다 아이들은 물을 많이 찾았고 숙소에서 준비해 간 물은 금방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걱정이 된 나는 물을 3리터나 샀다. 덕분에 배낭은 더욱 무거워졌다.

다시 힘을 내보는 형제들

마트 앞 주차장 턱에 털썩 주저앉았다. 허겁지겁 목을 축이고 배를 채우고 나니 그럭저럭 다시 힘이 생겼다. 그 여세를 몰아 다시 출발해야 했다. 하지만 그 힘은 한 시간도 지속되지 못했다. 우리는 한 시간 간격으로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부터 챙겨 온 짐이 너무 무거웠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쉬다 가다를 계속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발 한발 내놓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구불구불한 산길이 끝이 났다.


쉽지 않네, 순례길.


 이젠 편한 길인가 싶었더니 설상가상 이제는 갓길 표시조차 없는 자동차 도로가 나왔다. 혹시라도 다리에 힘이 풀린 아이들이 차도 쪽으로 넘어질까 걱정스러웠다. 아이들을 앞에 세우고 내가 그 뒤로 따라붙었다. 커다란 트럭이 도로를 울리며 지나갈 때면 제 몸만 한 배낭을 멘 아이들의 몸도 함께 흔들렸다. 자동차들이 엄청난 굉음을 내며 무서운 속도로 나를 지나 아이들 옆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내 가슴도 함께 철렁했다. 무거운 배낭이 기울어진 탓에 자꾸만 도로 안쪽으로 쏠리는 혁우에게는 계속 ‘조심해!’ 라며 소리를 질러야 했다. 이렇게 위험한 차도를 따라갈 바엔 차라리 피레네 산맥으로 넘어가는 쪽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어 있지 않은 국경의 도로는 아이들에게 너무 위험했다.


 순례길임을 표시하는 이정표 또한 너무 드물었다. 덕분에 안 그래도 길치인 나는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다. 순례자라도 보이면 물어서 가려했지만 걷는 동안 단 한 명조차 만날 수 없었다. 체력이 바닥나면서 아이들의 걸음은 자꾸만 더 느려져갔다. 게다가 중간에 길을 헤매면서 도착 예상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어지게 되었다. 위험한 도로를 간신히 빠져나오니 다시 산길이 나왔다. 하지만, 산속은 이미 한껏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아빠 아직 멀었어요? 무섭고 힘들어요.”

“아빠 언제 도착해요? 힘들어 죽겠어요.”

“조금만 더 가자.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나조차도 얼마나 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끝도 없이 이어진 오르막 산길은 입을 벌린 괴물의 컴컴한 목구멍 같았다. 급기야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아, 아빠 앞에 길이 막혀 있어요."    


설상가상으로 아이들 키만 한 너비의 거대한 고목나무가 쓰러져 길을 떡하니 가로막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둡고 추워지는 산속에서 멍하니 있을 여유는 없었다. 엉켜있는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꺾어가며 아이들이 지나갈 구멍을 만들었다.

     

천신만고 끝에 숲을 빠져나오자 평평한 산 정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득한 저녁 안개 사이로 하얀색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아빠, 나 도저히 못 가겠어요.”

“아빠! 저 차에 가서 좀 태워달라고 해요.”

    

땀과 얼룩으로 가득한 일우와 혁우의 얼굴은 너무도 간절했다. 차 안에 어떤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 나는 체면이고 뭐고 다 벗어던진 채 가까이 다가갔다. 다행히 자동차 안에는 나이가 지긋한 엄마로 보이는 여자와 아들로 보이는 선한 인상의 젊은 남자가 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마을까지 좀 태워주실 수 있을까요?”

“예?”

“저희는 까미노 중인데요. 론세스바예스 마을까지만 태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론 세스 바예스면 여기서 조금만 내려가면 돼요.”

    

사람 좋아 보이는 아들은 내가 그냥 길을 물은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의 대답이 끝나도 움직이지도 않은 채 멍하니 있자 그제야 무슨 의미인 줄 알았다는 듯 얼른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뒷좌석에 놓여있는 카시트와 잡동사니들을 치워서 우리가 앉을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고맙다는 얘기만 연신 반복했다. 


길바닥 아무 데나 던져 놓고 쉬는 바람에 한껏 더러워진 배낭이 혹시라도 좌석 시트를 더럽힐까 봐 가슴에 꼭 끌어안은 채 올라앉았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서로를 쳐다보았다. 땀과 눈물과 흙으로 범벅된 시커먼 얼굴이 그야말로 거지꼴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앞자리에 앉은 모자 역시 우리를 향해 가만히 웃어주었다. 그 미소가 마치 우리들 웃음의 의미를 알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국경의 첫날이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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