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아무 문제도 없는데 이유 없이 무너지는 날들이 있다.
그 조용한 무너짐 속에서 비로소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결혼하고 아이 넷을 낳고 키우는 동안
나는 그저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아냈다.
출산과 육아, 집안일이 매일같이 반복됐고
늘 집 안에 있으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 잊고 살았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었고
돈을 벌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이 크게 사고를 치는 것도,
부모님이 부담을 주는 일도 없었다.
겉보기에 우리 가족은 별문제 없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자꾸만 지쳐갔다.
에너지가 떨어지고, 괜스레 짜증이 솟구쳤다.
어느 날은 인사를 하다가도 눈물이 고였다.
몸이 아픈 건 아닌데
마음은 마치 무인도에 혼자 떨어져 있는 것처럼
외로웠다.
보험 사기를 당하고,
주식에 넣은 돈을 모두 잃었을 때도
나는 담담하게 일상을 이어갔다.
크게 놀라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다음 끼니 준비를 하고, 아이들을 돌봤다.
잃어버린 건 숫자일 뿐,
손에 쥔 적도 없는 돈이었기에
체감조차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마음은 별다르게 요동치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허전하고 무거웠다.
마음의 여유 없는 평범한 일상에 갇혀버린 나의 감정은
그렇게 어딘가로 꼭꼭 숨어버린채
에너지가 고갈될 때면
불쑥 짜증과 분노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이들은 네 명이고,
살아갈 날은 아직 한참 남았는데
앞날은 이유 없이 막막했다.
아이가 자랄수록
나의 욕망은 하나씩 내려놓아야 했다.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점점 줄이고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은 늘어갔다.
그렇게 나의 또다른 욕망은 점점 더 커져갔다.
그 욕망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보기에 괜찮은 엄마'가 되고 싶은
타인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나는 깨닫지 못했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려 애썼다.
남들 다 보내는 학원에 애들을 보내고
남들 다 입는 브랜드 옷을 사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해외여행을 가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그래야 '괜찮은 사람, 괜찮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문득,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은 하루를 보내며 깨달았다.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나를 외면해 왔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