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준비를 하는 분주한 아침은 3월임에도 화장하던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게 한다. 아침 출근복은 코트대신 얇은 자켓으로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 차를 몰고 도서관을 향하는 길.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였다. "쑥 떡했는데 노포동 지하철역으로 받으러 올래?" 쑥떡? 순간 1초의 망설임을 느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나는 수업을 위해 도서관으로 가야만 했다. “엄마 오늘은 수업이 있어서 안되겠는데. 다음에 집으로 가지러 갈께요.”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갓 뽑아낸 따끈따끈한 떡을 먹을 수 없다는 것도 아쉽지만, 엄마의 전화에 거절해야만 하는 상황도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이미 예전 된 일정이라 아쉬움과 불편한 마음은 이내 정리되었다.
곧 도서관에 도착했다. 첫 수업이라 어떤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할지 설레였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는지 도서관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는 더워서 땀을 삐질삐질 흘렸는데,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10분이란 짧은 시간동안 시원했던 바람은 조금씩 차가워졌다. 수업시작 시간이 되었는데 인기척이 없다. 이상하다 싶어 조금더 기다리다 도서관 관장님한테 전화를 했다. "어머! 선생님 이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놀란 관장님의 목소리를 통해 뭔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했다. 곧이어 관장님이 말한다. "선생님, 다음주 월요일이에요. 항상 마지막주 월요일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아뿔싸!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 짧게 통화하는 사이 순간 머릿속에서 엄마가 떠올랐다. 동시에 요즘 한참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이 떠올랐다. 전화를 끊고 차로 가는 동안 태백산맥 9권을 읽을지, 엄마를 만나 쑥떡을 받을지 잠시 고민 했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미 지하철을 타고 제법 갔을 텐데도 딸에게 따끈한 쑥떡을 챙겨주고픈 엄마는 멀리 안갔다며 노포동에서 만나자고 한다. 나는 알았다고 답한다. 마음 한구석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책을 읽고 싶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쑥떡도 먹고 엄마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를 귀찮게 하면서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오려면 귀찮을 법도 한데 엄마는 그런 내색 없이 ‘노포동에서 만나자’고 시원하게 결정 내려 준다.
“쑥떡을 나누려면 비닐팩이랑, 장갑이 필요한데 혹시 있나?” “차에 없지. 가는 길에 사갈게.” 엄마와 통화 후 급하게 근처 마트에 들려 비닐장갑이랑 비닐팩을 샀다. 엄마가 기다릴까봐 혼자 마음이 급해졌다. 필요한걸 산 후 곧장 노포동으로 향했다. 아직 엄마가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도착 전인가 보다. 조금 천천히 올걸 괜히 혼자 서둘렀나 싶은 생각도 든다. 마트 장보고 덕계에서 노포까지 15분거리. 소요시간 30분 정도면 엄마랑 비슷하게 도착 할 줄 알았는데도 엄마는 오지 않는다. 제법 멀리까지 갔나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얼른 차에서 내려 엄마가 끌고 오는 시장바구니를 차에 실었다. 노포역에선 떡을 나누어 담을 수가 없어 노포동에서 차로 5분 거리인 스포원파크로 향했다. 차에서 시장바구니를 내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동네 떡집도 떡 한 대 하면 규격 박스에 담아서 주는데, 이 떡집은 비닐에 뭉뜽그려 담아줬다. 엄마는 그걸 보자기에 싸서 바퀴달린 네모난 시장바구니에 가득 실어 왔다. 막내가 4살 때였다. 시장에 함께 가는 길에 다리가 아프다고 징징거리자 엄마는 아이를 들어 올려 시장바구니에 태운 채 시장으로 데리고 갔었다. 아이 하나도 거뜬히 들어갔던 바퀴달린 네모난 시장바구니에서 떡을 꺼내 간단한 작업을 시작했다. 엄마는 달라붙은 쑥가래떡을 적당한 양만큼 떼어 주면 나는 봉지를 벌려 그것을 담았다. 떡을 떼어내면서 가래떡을 입에 넣어주는 엄마. 아빠와 나는 엄마가 주는 가래떡을 오물오물 씹어 먹었다. 곧이어 입안 가득 퍼지는 쑥향과 엄마의 사랑에 봄처럼 따스함이 온몸을 감싼다. 혼자 책을 읽었더라면 느끼지 못하는 엄마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따스함. 이 시간이 소중해 엄마에게 같이 점심 먹으러 가자고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