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 그런 5월에 엄마는 어깨수술을 했다. 아쉬운대로 어버이날은 병원에 찾아가 얼굴을 뵈었다. 다행이 아빠 생신 전에 퇴원하셔서 아빠생신 날은 온가족이 친정집에 모였다. 아픈 와중에도 야채도 씻어 놓고 필요한 음식준비를 거의 마친 엄마. 옆에서 별로 도와줄 게 없었다. 한편으론 감사하고 한편으론 짠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걸 너무나 당연시 하는 엄마 모습이. 곧이어 동생네가 도착했다. 동생이 사온 회를 올리고 엄마가 준비한 야채와 밑반찬을 올리고나니 어느새 상은 풍성해졌다. 친정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 소식이 되지 않는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나면 언제나 나온 배를 두드리며 엉덩이를 뒤로 빼고 무거운 몸을 이끌어야 했다.
그날도 그랬다. 그냥 집에 퍼져 있으려니 내 몸에 대한 조금의 양심과 죄책감이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대청공원에 가면 진짜 재미있는 거 많은데 같이 갈사람?" 내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우리집 2호가 대답했다. "좋아. 엄마 나가자! 그런데 남포동 가자.", "아니야 남포동은 안갈꺼야. 갈꺼야 안갈꺼야?" 2호에게 딱잘라 말했다. 그러자 표정이 약간 뚱해지는 2호였다. "숙모 저는 갈꺼에요." 조카가가 가겠다고 대답한다. "옥심이 너 갈꺼야?" 엄마가 물었다. "응. 엄마 나가자." 우리집 아이들 네 명, 조카와 엄마랑 나 총 여섯명이 함께 집을 나섰다.
대청공원에 가면 엄마와 함께 걷는 산책 코스가 있다. 항상 왼쪽으로 시작해서 오른쪽으로 끝나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오른쪽으로 시작했다. 오른쪽 길에 들어셔면 오른쪽에는 민주항쟁 기념관이 있고, 왼쪽에는 민주도서관이 있다. "숙모 우리 도서관에 가봐요." 조카의 말에 옳다구나하고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두 딸들은 "엄마 가기 싫어요."라고 눈빛으로 속삭였지만 조용히 무시했다. 도서관 대문을 들어와서 계단위를 절반 정도 오른 뒤, 뒤로 돌아보는 순간 반짝이는 나뭇잎과 촘촘하게 모여있는 집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순간 중학생 때가 떠올랐다. 6월, 친구들과 기말고사 시험공부하겠다며 처음 찾았던 곳. 그 시절의 기억을 안고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이들을 어린이 열람실에 들여놓고 반항적인 1호와 엄마와 나 셋이 도서관 구경을 했다.
먼저 지하로 내려갔다. 발을 디디자마자 코를 찌르는 쿰쿰한 냄새와 라면냄새. 도서관에 흥미를 붙이게 된건 아마도 쿰쿰한 냄새와 어울리지 않는 깨끗한 지하 열람실에서의 추억과 주린 배를 채우며 수다떨던 식당에서의 기억들이 한 몫했던 것 같다. 저렴한 가격에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곳. 메뉴는 라면과 떡라면 만두라면과 정식이 있었다. 난 정식보다는 늘 짭쪼름하고 쫀득쫀득한 떡라면을 먹었다. 만약 식당이 없었더라면 도서관에 흥미를 가지지 못했을지도. 한참 옛기억에 빠져 있는데 1호가 말한다. "엄마 영양갱 사줘" 할머니는 그런 딸에게 먹고 싶은걸 고르라고 한다. 손주가 먹고 싶은 걸 사주는 엄마의 모습에서 기쁨이 느껴져 '안돼'라는 말을 애써 삼킨다. 계산해 달라고 손을 내미는 거칠거칠한 엄마의 손. 언제 보드라웠던 적이 있었던가. 옛 사진 속에서 본 솜털 같은 아기를 안고 있던 엄마의 보드라운 손은 내 기억 속엔 없다. 하지만 엄마의 거친손을 볼 때마다 엄마의 사랑을 느낀다. 어릴 때 못느꼈던 엄마의 사랑을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조금 알 것 같다. 엄마의 거친 손을 통해 알게된 깊은 사랑을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해주리라 다짐해본다.
이대로 돌아가면 아이들이 아쉬워 할 것 같아 운동코스를 한 바퀴 돌았다. 곳곳에 엄마와 함께 했던 흔적들. 비록 죄책감때문에 나왔지만 엄마와 아이들과 추억하나 남길 수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