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된 체육복과 15년된 선풍기

손때 묻은 삶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by 힐링튜터

오늘의 기본 p.101 일상을 이루는 것들을 두 손으로 직접 만지고 경험하는 감각은 인풋의 세계와 만나는 소중한 지혜를 안겨다 줍니다.


코스모스 p.346) 인류 사상사에서 위대한 혁명이 기원전 600년과 400년 사이에 일어났다. 혁명의 열쇠는 손이었다. 이오니아의 뛰어난 사상가들 중에는 항해사, 농부, 직조공의 자식들이 있었다. 그들은 손을 써서 물건을 주무르고 고치고 만드는 일에 익숙했다. 다른 나라의 사제들이나 서기들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사치 속에 자라서 손을 더럽히기를 싫어했지만, 이오니아 인들은 그 근본부터 그들과 달랐다.


얼마 전 친정에 다녀왔다. 아침 일찍 엄마와 함께 집 뒤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결혼 전, 매일 아침 엄마와 걷던 익숙한 길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그 길에는 세월의 변화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산책로 입구에 새로 생긴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벤치에 앉으면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만든 구조였다.

“엄마, 여기 한 번 앉아봐요. 사진 찍어 드릴게요.”

내 말에 엄마는 조용히 벤치에 앉아 자세를 가다듬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몇 번 찰칵, 찰칵. 그렇게 사진 몇 장을 남기고 다시 산책길을 걸었다.



그땐 몰랐다. 엄마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조차. 하지만 집에 돌아와 사진을 들여다보던 순간, 문득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입고 있던 바지. 놀랍게도 그것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입던 학교 체육복이었다. 무려 31년 전, 내가 입었던 옷. 편하기도 하고, 아직도 낡지 않았고, 무엇보다 엄마에게 맞으니 굳이 버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그렇게 지금까지 간직하고 입고 계셨다. 집 안 여기저기에 그런 물건들이 있다. 골동품처럼,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 10년 넘게 집을 비운 탓도 있겠지만, 엄마는 물건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아껴 쓰신다.


결혼 후 나는 늘 남편의 잔소리를 듣고 살았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그런데 요즘 읽고 있는 《오늘의 기본》을 통해 남편의 잔소리도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며칠 전,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주말 동안 선풍기를 꺼냈다. 결혼할 때 사은품으로 받은 선풍기니 벌써 15년째다. 플라스틱 부분은 삭아 가루가 떨어졌다. 이제 그만 버릴 때도 됐다 싶은데 남편은 조용히 선풍기 머리를 분해해 욕실로 가져간다. 그리고 선풍기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 올 한 해 잘 버텨 보자!" 그리고 물소리가 들려온다. 남편은 선풍기를 깨끗이 씻기 시작했다.


그런 남편을 뒤로 하고 나는 아이들과 밖으로 나왔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보니, 선풍기는 말끔히 닦인 얼굴로 다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루가 떨어지는 플라스틱 주변에 깔끔하게 붙인 청테이프가 한 눈에 들어온다.

남편은 전자제품이 고장 나거나 작동되지 않으면 그냥 버리지 않는다. 어느새 다가와 “줘봐” 하더니, 도라이버 몇 개를 들고 앉아 뚝딱뚝딱 손을 본다. 놀랍게도, 다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내심 버리고 새로 살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 순간이 아쉽기도 하다.


《오늘의 기본》을 읽다 보면, 나 스스로 삶을 얼마나 성의 없이, 무심하게 살아왔는지 깨닫게 된다. 나는 늘 ‘무엇이 좋은 삶인가’를 고민해왔지만, 어쩌면 내가 중요하게 여긴 삶은 손을 더럽히고 싶어 하지 않는, 안락함과 소비의 틀 안에서만 움직이는 코스모스에 나오는 다른 나라의 사제들이나 서기같은 부류는 아니었을까. 반면 이오니아인들은 삶을 대하는 근본부터 달랐다고 칼 세이건은 말한다. 그 구절이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아직은 엄마나 남편처럼 행동할 순 없지만, 그들의 삶에 밴 ‘근본적인 태도’를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버리는 대신 아껴 쓰고, 고치고, 닦아내며 살아가는 그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며 배워본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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