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날, 목이 늘어난 셔츠의 품격

by 힐링튜터

<오늘의 기본> - 소원

p.93) 마음에 든 저렴한 옷 10벌보다 아까워서 든 마음에 들어서든 오래 입고 싶은 좋은 옷 1벌을 신중히 구매하는 습관을 들여 봅시다.




6월 3일 투표날이다. 24년 12월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전 윤석열대통령의 사건으로 선거일이 앞당겨 졌다. 불안과 공포로 밤을 지새웠던 시민들. 투표결과는 어쩌면 당연했다. 당연한 투표 결과 일지라도 시민으로 지켜 보고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기위해 남편과 나갈준비를 했다. 큰아이는 서점에 가는 게 목표라 옷을 빼입었고, 셋째는 나가자는 말에 싫은 내색을 하며 꾸역꾸역 옷을 입었다. 둘째는 친구와 약속이 있어 먼저 나갔다. 그때 핑크색 옷을 입고 나오는 남편. 문득 옷을 보니 목 주변이 늘어난 듯 보였다. 새옷을 사주고 싶은 마음에 "오빠 옷 목이 늘어난 것 같네?"라며 넌지시 말했다. "이거 결혼전에 산 옷이야. 총각때는 손빨래를 했으니 그나마 지금까지 입을 수 있었지." 라고 아주 당당한 눈빛을 쏘으며 답한다. 한껏 자신감을 뽑내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큰아이는 웃음을 터트린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니 귀엽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다.



남편이 옷을 오래 입을 수 있는 데는 쇼핑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나는 쇼핑을 좋아하지만 눈요기 하는 게 좋고 가게에 들어가면 대충 입어 보고 이거다 싶으면 사서 나온다. 반대로 남편은 쇼핑을 좋아하지 않지만 한 번 가면 매장에 있는 옷은 거의 다 입어 보고 다음 매장으로 간다. 착용감, 디자인, 수선상태 등등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옷을 고르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해서 고른다. 쇼핑에도 집중력과 몰입이 필요하다는 것을 남편을 통해 배운다.



내가 오래 옷을 입는 방법은 외출복이 후줄근해지면 집에서 막 입는 잠옷으로 활용한다. 반면 남편은 외출복으로 산 옷은 외출복으로 몇 십년을 입고 버릴 때에도 작업복, 농사일을 거들 때 등 어떻게 입을지 고민한 후 한 번 더 활용하고 신중하게 버린다. (내가 버린 건 있어도 남편이 버린 옷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집을 둘러보면 남편의 소지품은 거의 없다. 해봐야 옷이 다다. 옷이라고 해도 4자 장농하나와 계절옷과 추리닝을 보관한 각각의 박스 2개가 끝이다. 충동구매를 잘하고 귀가 솔깃해 살지 말지 고민이 될 때는 남편에게 한 번 더 물어본다. 정말 마음에 드는 건 누구의 허락없이도 저지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남편에게 물어보면 거름망 같은 역할을 해준다. 예전엔 그 모습이 나와 다르다며 불만을 말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그 다름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조금씩 이해해간다.



자식 키우며 돈 들어갈 일도 많은데 자신을 위한 꾸밈비나 취미생활에 쓰는 비용은 아끼면서도 가족들에겐 후한 남편이 고마우면서도 안쓰럽다. 예전엔 그 모습이 나와 다르다며 불만을 토로했지만, 이제는 그 다름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조금씩 이해해간다. 선거 날, 투표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은 건 남편의 늘어난 티셔츠였다. 그 티셔츠 한 벌이 나에게 '소비'와 '태도'를 돌아보게 한 하루였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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