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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Aug 16. 2021

스마트폰으로 쓴 동유럽 기행기 3

크로아티아 1 (라스토케, 스플리트)


2016.12.12

3일째 저녁 슬로베니아의 마리보르에서 묶는다. 이 호텔은 현대식이라 비교적 넓고 좋은 편이다. 저녁 후에 근처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고 해 가보니 무대에서 가수가 노래 부르고 따끈한 맥주를 한잔씩 마시면서 흥겨워하고 있다. 비엔나에서 처럼 다양한 마켓이 열려있는 것은 아니고, 노래도 듣고 어울리면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미리 즐기는 풍경이었다.


막 산책을 하고 욌는지 엄청 큰 개들 네 마리가 주인과 함께 프런트로 들어선다. 이렇게 큰 녀석들을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들어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기습 뽀뽀를 당한다. 버니즈 마운틴 도그(Bernese Mountain Dog)종으로 알프스 산맥에서 낙농업자들에 의해 개량된, 일명 "스위스의 산개"다. 사람들이 워낙 개를 좋아하고 공격하지 않으니, 녀석들도 방어본능이 없어 순하기 그지없다.


유럽은 올 때마다 느끼지만 남녀노소 큰 구분 없이 함께하는 분위기다. 낮에 오스트리아에서도 나이 든 분들과 젊은이들 식당에서나 카페에서 함께 식사하고 담소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사람끼리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급속한 경제발전 때문인진 몰라도 우리나라는 세대 구분이 너무 확실하다.  어른 아이 노인 청년 등의 세대 구분, 차이가 너무 확실 공감하는 문화가 별로 없다.  마치 어릴 때 마당에서 "네 땅, 내 땅" 하고 선 긋고  놀던 것처럼... 이런 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이 매스미디어,  방송과 인터넷이란 생각이 개인적으로 든다면 잘못된 것일까.  살아온 이 지구를 생각하면 길어야 한세대, 백 년 사는 우리 인간들에게 "세대차이"라는 말조차 우습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석양에 물든 슬로베니아의 마을

호텔에서 만난 친구들


한 해가 저물어 갈 때라 다른 사람들 입장을 더 생각하게 된다. 저 친구는 하루 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나하고 같은 방을 쓰게 되어 더 쉬지도 못하는 것도 미안하다. 가이드는 대부분 혼자 방을 쓰는데, 싱글 차지(charge)를 원치 않는 나 같은 손님 때문에 어쩌면 희생하는 것이다. 나는 저 나이에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늘 갈급했고 뭔가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분주히 살았던 것 같다. 이렇게 만난 인연으로라도 저 친구는 이번에 방을 함께 쓰게 된 나를 보면서 앞으로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나보다는 멋진 인생을 살면 좋지 않을까.


약간 흐리고 스산한 날씨에 버스는 크로아티아를 향해 가고 있다. 여행은 자기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정경도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우리나라의 산도 아름답지만, 여긴 넓고 넓은 평야가 보여 답답하지 않고 좋다. 9시 슬로바키아 국경에서 내려 도장받고 옆에 크로아티아에서 내려 다시 도장을 받는다. 크로아티아로 입국하는 중 핸드폰에선 요란하게 문자가 온다. 외교부와 핸드폰 회사에서. 우리가 지금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 우리나라가  IT 산업에서 세계적인 국가라는 증거 아니겠는가. 겨울인지라 남쪽으로 내려가도 날이 차다. 비슷하지만 또 다른 느낌의 동유럽을 보면서 간다.


유럽의 겨울 여행은 해가 일찍 져, 여행 시간이 짧긴 하지만 사람은 적어 덜 번잡스러우니 괜찮은 점도 있다. 물론 봄이나 가을에는 천연계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볼거리가 훨씬 많을 것은 분명하다만. 가만히 있으면 불안한 전형적인 Korean 이여! 아무 생각 말고 망망히 차창만 바라보고 있어도 좋지 않은가. 아파트로 답답하지 않아 좋고, 집 가꾸고 소박하게 살며 인생에 엄청난 기대하지 않고 자연 속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넓은 초원에서 뛰노는 자유로운 영혼들과 잠시라도 함께하니 좋지 않은가 말이다.


크로아티아로 가는 길에서 


스플리트 389km 표지판이 보인다. 라스토케를 경유하긴 하지만 아직 멀었구나. 코리안의 저력을 보여준 방송의 힘 "꽂누나 크로아티아" 편으로 한국 관광객 급증! 돌아가면 방송과 인터넷을 확실히 줄여야겠다. 정말 좋아하고, 해야 하는 일에 시간을 더 많이 보내야겠다. 대충 알고 모르는 것도 없는 인터넷인(N인간)은 되지 말아야겠다. 어설픈 결심이 드는 것은 왜일까...


라스토케 마을에 들른다. 겨울이라 그런지 동네가 한산하다. 가이 드말로는 전에는 여행객을 데리고 가면 동네분들이 친절하게 차도 대접하곤 했는데, 꽃누나 방영 후 한국 관광객이 넘치도록 와서 이제는 시큰둥하다고 한다. 이 지역은 크고 작은 폭포수가 집을 에워싸고 있다. 폭포가 내는 소리니 자연의 소리긴 하지만, 얼마나 요란한지 시끄러워 어떻게 사나 싶었다. 물론 풍광이 아름답기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지만,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내줘야 하는 게 자연의 섭리인듯하다.

 

지중해도 좋지만, 또 다른 역사를 품고 있는 아드리아해를 보러 간다. 어제까지 중세와 근대의 역사였다면 오늘부터는 고대 로마의 역사도 접할 수 있다. 지인이 카톡으로 김난도 교수의 chicken run 동영상을 보내준다. 내년 준비에 바쁜 우리나라의 지성인들... 나는 Yolo!  내게 이 순간 Yolo (You Only Live Ones)를 누리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오스트리아와 또 다른 느낌이다. 집 모양만 빼면 우리나라 중소도시 같다고 할까. 크로아티아는 자국 돈(쿠나)을 쓴다. 45유로를 바꾸는데 18:1 정도다. 애국자는 아니지만 외국에 나와서 돈을 많이 쓰지 못하겠다. 물론 돈도 부족하긴 하지만,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쓰지 않게 된다.


물의 마을 라스토케


크로아티아는 예전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한 공화국으로 발칸반도 서북쪽에 있으며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다.  기원전 2세기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일리리아"라고 불려 왔다. 로마 속주로써 "달마티아(Dalmatia)"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디즈니 만화 "101마리의 달마티안"으로 유명한 달마티안의 원산지라고 한다.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처럼 슬라브 민족이며 동로마의 지배를 받던 중세에서, 오스만 제국의 위협 때문에 인근 헝가리 등과 같이 합스부르크 왕조에 귀속되어 제1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온 근대와 19세기 초 "크로아티아 독립국"시절에는 세르비아인 인종청소로 얼룩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렇듯 외세의 침입을 많이 받고 견뎌내느라 크로아티아는 보수성이 강하고 배타적이라 한다. 일례로 전 세계 어디나 있다고 할 정도로 성공한 스타벅스가 없다. 이탈리아와 가까워서 인지 이탈리아와 여러 면에서 많이 닮아있고, 크로아티아에는 김태희도 밭을 매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잘 생긴 사람이 많다고 가이드가 우스갯소리를 한다. 넓은 땅에 허브가 널브러져 있다. 라벤더와 로즈메리 허브향이 너무 좋다. 이 일대는 일조량이 풍부하고 날씨가 따뜻해 자연스럽게 허브가 많이 재배되어 예로부터 약재와 화장품 등의 원료로 많이 쓰였다고 한다.


해 질 녘에 스플리트에 도착했다. 해변가에서 바라보는 노을이 물든 고대도시 모습에 격한 감동을 느꼈다. 이천여 년을 이어온 역사 속에서 지은 터전 위에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물론 세월을 거쳐오며 보수도 있었고 많은 변화도 있었겠지만,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어느 누군가와 같은 하늘 아래서 삶을 누리고 있는 것 아닌가. 그곳에서 살다 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벽돌 하나하나, 돌바닥 하나하나에 온갖 사연을 담고서 오늘날의 후손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스플리트에서 어찌 디오클레이티아누스 황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황제는 AD. 244년 달마티아 지방 (스플리트)에서 태어났다. 속주국이었던 달마티아 지방 출신이었지만 로마의 천년 역사를 가능케 한 "관용과 포용"의 정신 덕에  로마 군인으로 성공하여 누메리우스 황제의 경호대장까지 오르게 된다. 디오클레이티아누스는 황제 누메리아누스가 살해되어 284년 황제가 된다. 황제는 반세기 이상 혼란스러웠던 로마제국을,  20여 년의 재위 기간 동안 과감하고 단호하게 개혁하고 되살리는데 이바지한다. 방대해진 로마를 4두 정치로 개혁하고자 했으며, 그로 인해 기독교를 탄압하기도 했지만 재위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로마를 구축한다. 황제는 4두 정치의 동반자였던 콘스탄티누스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준 후, 은퇴하고 고향에 지어놓은 황궁으로 와서 조용히 살았다고 한다. 역사의 여러 이유야 있겠지만, 황제의 권좌를 두고 낙향한다는 것은 지금도 어려운데 그때는 훨씬 더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니 오늘날의 스플리트를 있게 해 준 황제의 용단이 존경스럽다. 


디오클레이누스 황제의 궁에 왔다. 이 멋진 곳을 가이드는 한 시간 내에 소개하고 일정을 끝내려 하니, 한 바퀴를 돌았지만 어딘지도 모르게 돌았다. 열주 앞에서 아카펠라 남성 4 중창이 울려 퍼진다. 수천 년의 역사가 서려있는 건물 속에서 푸른 하늘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음색에 숙연해진다. 붉은 노을에 울려 퍼지는 아카펠라의 장중한 하모니는 기억에 오래 남을 만큼 아름다웠다. 마치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도 "인간의 삶" 은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이어짐에 불과한 것"이라는 아이러니(irony)를 말하기라도 하듯, 온 하늘로 퍼져 나간다.


황제는 재위 중 10년 동안 궁을 지었으며, 이곳으로 와 5년 살았다고 한다. 요즘 읽고 있는 “로마의 일인자”에서 로마시대 건물이 2층, 3층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을 실제로 볼 수 있어 좋았다. 시간이 너무 짧고, 있고 싶은 곳에서 더 머무를 수는 없었으나 내겐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오래된 역사적인 건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기에,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갈 수 있을까 는 생각에 앞서, 문화재와 더불어 역사를 보존하고 불편과 피곤함도 감당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용기가 부러웠다.

이런저런 이유로 맘에 들지 않는 역사의 흔적은 없애고 후다닥 바꿔버리고 새로운 건물로 들어서는 인근을 보면 오래된 것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겸손과 존중"의 의미 없이는 힘든 법이다.


스플리트 전경 (위키 대백과)

디오클레이티누스 황궁 (위키 대백과)

디오클레이티아누스 황궁

 열주 아래 울려 퍼지는 아카펠라


보스니아의 네움으로 가는 중에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를 틀어준다. 짤쯔캄머굿에 다녀오니 마치 나도 영화 속의 한 인물이 된듯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맞다. 마리아를 위한 원장수녀의 노래 "문제들과 맞서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해. 무지개를 쫓아라 너의 꿈을 찾을 때까지 네가 살아가는 동안 모든 산을 오르며 강을 따라서 무지개를 쫓아라 꿈을 찾을 때까지..."

달리는 버스 안에서 무지개를 찾아 알프스를 넘어가는 폰 대령과 마리아, 아이들의 삶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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