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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Aug 08. 2021

스마트폰으로 쓴 동유럽 기행기 2

체스키크룸로프, 장크트길겐, 잘츠부르크,비엔나




2016.12.10.

도착까지 27분 남았다. 프라하가 가까워진다. 겨울 여행이 비용은 약간 싸지만 확실히 해가 짧아 볼 시간은 적을 것 같다. 드디어 바츨라프 하벨 공항에 도착한다. 조용하고 평온한 프라하의 밤이다. 출입국심사대도 짐 찾는 곳도 매년 수천만 명이 드나든다는 공항 치고는 참 소박하다. 나무로 조각한 체코의 특징물들이 인상적이다.


S가이드가 9일 동안 지낼 일행들을 소개하고 함께 움직일 기사 "아이터"씨를 소개한다. 버스로 체코에서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는 두브로브니크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와야 하는 일정이니 가이드 못지않게 기사도 중요하다. 유럽은 직원이 "갑"인 서비스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할 때는 눈도 마주 치치 않는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좋고 나쁜 것을 떠나 모든 것이 너무 느리다. 한번 사는 세상, 굳이 안달하며 살 필요 있느냐는 느긋한 잠재의식이 있는 듯하다.


이번 여행길은 버스로 매일 600~700km 달릴 것이다. 버스길에서 보는 풍경도 즐거운 경험이고 다른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볼 것이다. 밤길을 달려 체스케부데요비체로 와, 호텔에 든다. 여기는 호텔 1층이 0층이다.  2호 방을 배정받았다. 유럽 방들은 대부분 작다. 함께하는 거실은 넓은 편이지만, 침실은 좁은 편이다.


2016.12.10  

새벽 두 시경 한 무리 손님이 들어왔는지 너무 시끄럽게 해, 엎치락뒤치락거리다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잤지만, 전기담요 덕에 땀까지 흘리면서 잘 잤다. 전기담요를 가져가야 되나 많이 망설였는데 정말 잘 가져온 것 같다. 여행 중에 컨디션이 제일 중요한데 따뜻하게 자니까 아주 좋았다.


유럽 호텔 아침은 동남아에 비하면 무척 간단한 편이다.  아침 메뉴는 달걀, 빵, 요구르트 여기에 컵라면을 곁들이니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 날씨도 아주 춥진 않은 맑은 날씨다. 아침 8시에 아들러 호텔을 떠나 체스키 크룸로프로 출발한다. S가이드는 유럽 쪽 가이드 경력이 꽤 된 능력 있는 친구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코로나로 어려운 이 시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을지 염려가 된다. 부디 잘 견디고 앞으로 올 좋은 날들 생각하며  힘을 얻기를 바래본다. 차 안에서 체코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는다.


체코는 천백만 명 정도의 인구로 면적은 남한의 80% 정도이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보헤미아 왕국"으로 독립하려 했으나 군주제를 폐지하고 1918년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1960~1990년 까지 사회주의 공화국이었지만, 벨벳혁명 후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나뉘게 되었다. 밀밭이 많아 여러 동유럽의 국가처럼 곡창지대이기도 하며 국민소득은 1,8000달러로 동유럽 중에서는 경제 상황이 좋은 편이고, 공업국 이미지가 강한 나라다.


체스키 크룸로프는 체코의 남 보헤미아주에 위치한 인구만 명을 좀 넘는 작은 도시로, 유명한 체스키 크룸로프 성이 있으며 구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체코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체코 사진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중세도시 모습이 그대로 살아있는 고풍스러운 오래된 도시다. 겨울이라 그런지 관광객도 많지 않아 크룸로프 성으로 올라가는 길이 스산했다. 크룸로프 성은 구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었다. 사진을 찍고 슬픈 전설을 가지고 있는 "이발사의 다리"를 지나 마을로 들어갔다. 글을 쓰다 보니, 사진을 써먹을 수 있을 만큼 멋있게 찍어둔 것이 별로 없다. 눈으로 마음으로 찍고 다니느라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는 여행사진들과 비교하면, 돋보이는 사진이 없어 아쉽기도 하다.


마을 광장에서 9살 강아지 "자스"를 만났다. 나이가 많은데도 가족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인지, 아주 활달한 강아지였다. 여행하면서 그 지역의 개를 만나는 것은 나의 작은 즐거움 중의 하나다. 두고 온 우리 강아지가 벌써 보고 싶어 진다. 문짝 하나, 창문 하나까지 옛것대로 보존되어 있는 오래된 역사 유적지라고 해도 사람 사는 동네다. 다소 불편하게 살긴 하지만, 아름다운 경관 못지않게 그들의 조상들이 살아왔던 것처럼 자연과 세월과 더불어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해가 떠오르는 체스키 크룸로프 정경

소박한 체스키 크룸로프 표지판과 크룸로프 성으로 올라가는 길

체스키 크룸로프 성과 블타바 강


모차르트의 어머니가 태어난 마을, 볼프강 호수와  츠뵐퍼호른 산을 곁에 두고 있는 장크트 길겐으로 왔다.

작은 마을이지만, 산과 호수에 둘러싸여 있는 천혜의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먼저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둘러본 후 마을로 올라가 점심을 하기로 했다. 호수 주위로 예쁜 집들과 아름다운 조망은 동화 속에 나오는 요정나라 같았다. 유람선을 타고 잠시나마 모차르트를 생각해 본다. 볼프강 호수가 너무 아름다워 모차르트의 어머니가 모차르트의 이름을 지을 때 볼프강을 가운데 넣었다는 얘기에 공감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테마곡이기도 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2악장(KV622)의 클라리넷 선율이 볼프강 호수의 하늘에 메아리친다.

https://www.youtube.com/watch?v=5wPJWloT6-g


일요일이라 마을 사람들이 교회를 가는지 어디론가 모여 가고 있다. 우리도 식당을 찾아 올라가는데,  길옆으로 "모차르트 하우스"라 새겨진 집이 있다. 모차르트의 어머니 태어나고, 피아니스트였던 모차르트의 누이 마리아 안나(나네를) 모차르트가 평생 살았던 집이라 한다. 모차르트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었는지, 그의 어머니 생가까지 유명 장소로 보존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시간이 허락했다면 들러보고 싶었지만, 함께하는 일정이니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 자유롭게 오겠다는 작은 꿈으로 다독이며 지난다.


츠뷜퍼호른 산에 오르기 위해 케이블카를 탄다. 마침 "나니와 얌빈"이라는  슈나우저 두 마리를 데리고 주말 캠핑을 왔다는 독일 분을 만나 같이 올라갔다. 몇 주에 한 번씩 개를 데리고 체코와 오스트리아를 여행 다닌다고 했다. 너무 부러운 모습이었다. 함께 사진을 찍고 보내주겠노라 이메일 주소까지 받아두었다.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제법 시간이 걸린다. 문득 고개를 들어 케이블카 옆쪽을 보니 낯익은 글자가 보인다. "K 세 모녀 기념" 아름다운 한글이다. 아주 긁어놓아 지워지지도 않게 각인되어 있다. 혹여 나니 엄마가 한글이라도 알아볼까 봐 부끄러웠다. 이들은 여기까지 와서 저런 흔적을 남겨놓고 싶었을까. 이제는 경제적으로 성장한 것 이상으로, 문화적으로 성숙해진 우리의 모습이 보여야 할 때가 아닌가 말이다.


정상의 츠뷜퍼호른 산에서 바라본 볼프강 호수는 저 멀리 알프스까지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움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을 오랜 세월 품어온 어머니의 마음 같다. 이 지역을 배경으로 찍은 영화"사운드 오브 뮤직"의 장면 장면이 생각나는 아름다운 장크트 길겐 마을과 볼프강 호수를 뒤로 하고 잘츠부르크로 향한다.  


유람선을 타고 보는 볼프강 호수

츠뷜퍼호른 산에서 내려다본 풍경과 지우고 싶었던 낙서

장크트 길겐의 모차르트 하우스


잘츠부르크 (Salzburg)는 문자 그대로 소금성(Salt Castle) 또는 소금 요새(Salt Fortress)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겐 모차르트의 고향으로 유명하지만 아름다운 미라벨정원, 잘츠부르크 성당 등 많은 바로크 건축물과 역사가 오랜 도시다. 로마가 알프스의 관문으로 점령하여 세운 도시로 AD 700년에 로마 교회가 설치된 후에 바바리아 대교구로 성장했다. 당시 도시는 암염 채굴을 통한 소금 생산으로 경제적인 기반을 닦아가고 있었다. 중세의 화폐와도 같았던 소금이었으니 당시 이 지역 경제가 얼마나 호황이었을지는 짐작할 수 있겠다.


유럽 음식이 짠 이유 ~ 나름의 분석

1. 소금은 역사적으로도 부의 상징이었다. 친근감의 상징으로 요리에 비싼 소금을 많이 넣어 주었다

2. 메인 요리는 소금 간으로 한다. 유럽은 본질적으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다. 설탕은 쓰지 않는다.

    단맛은 디저트에만 사용하므로 두루 소금을 많이 썼다.

3. 지중해 소금이 대부분인데 지중해염이 염도가 높다

4. 유럽 사람들의 주식은 밀과 감자다. 밍밍해서 소금을 쳐야 맛이 난다


잘츠부르크 시내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그런진 몰라도 사람들로 무척 붐비고 있었다. 게트라이트 (Getreidegasse) 거리는 모차르트 생가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지만 길거리 가게들의 철제 조형물로 만들어진 간판들이 각각의 독특한 예술 작품처럼 매달려 있는 아름다운 거리로도 유명하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건물의 미관을 해치는 것 하나가 천편일률적인 간판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의 간판은 마치 하나하나 전시된 예술작품 같다.


초콜릿 가게가 유명하다. 여행객들은 모차르트 얼굴이 있는 초콜릿 등을 기념으로 사지만, 이곳 사람들은 초콜릿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주식도 중요하지만, 후식도 중요하게 여긴다. 삶의 목적만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의 소중함을 아는 것 같다. 모차르트가 태어난 집 앞에는 사진을 찍느라 장사진이고, 거리마다 인파로 북적였지만 한결같이 즐거운 얼굴들이다. 그 와중에도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얘들은 확실한 가족이다.


당대에도 천재로 인정받았지만, 짧은 생을 살다 간 모차르트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처럼  하고 싶은 대로 즐기며 멋지게 (?) 살다 간 사람 아닐까 싶다. 음악 역사상 모차르트처럼 다양한 음악분야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긴 사람은 찾기 힘들 것이다.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작품을 남겼기에 그의 작품을 구별하는 퀘헬 번호(KV)(Köchel-Verzeichnis)까지 생겼을까. 모차르트가 즐겨 커피를 마셨다는 카페(Cafe Mozart)에 갔는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앉아 보지도 못했다. 여행객이 가득하리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현지 사람들이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 담소하며 카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카페 내의 의자나 테이블도 옛날식 그대로였다. 조금 불편해도 문화를 즐기며 오래된 것들과 함께 사는 것을 좋아한다.


잘츠부르크 시내

모차르트의 생가 앞


2016.12.11

아침 햇살이 오랜만에 밝게 비쳐 잠시 마을 구경을 하니 여행하는 기분이 난다. 비엔나로 향해 가는 차창밖을 내다보는 묘미도 좋다. 어젯밤엔 꿈과 생시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비몽사몽이었다. 부족한 잠과 시차 때문에 피곤한 것이 몰려왔던 것 같다. 여행하는 동안은 피곤을 즐거움으로 여기면서 다녀야 한다. 이런 느낌이 들 때면 시공을 초월한다, 무의식의 세계라는 표현이 맞다는 생각도 든다. 아침 들녘에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넓고 광활한 대지에 드문드문 있는 집들 그 사잇길로 개와 산책하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유럽이다.


쉔부른 궁전에서 현지 가이드가 합스부르크 왕조에 대한 설명을 잘해 주었다. 긴 역사와 그 영향을 짧은 시간에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힘들었지만 예술 위에 세워진 도시 빈, 빈이 오랜 시간에 걸쳐 예술의 도시로 된 데에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역할이 지대했던 것 같다. 물론 유럽 대부분의 역사가 그렇듯이 "정복과 유지"의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인간 역사가 "도전과 응전"의 역사이다 보니, 뭐라 평가하기도 어렵지 않을까 싶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렸다. 사람들은 따뜻한 맥주 한잔씩 들고 다니면서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된 이동식 가게들을 다니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12월의 유럽은 아름다운 자연을 보긴 힘들지만, 크리스마스가 있어 이 시즌에만 볼 수 있는 마켓과 분위기가 있어 겨울여행도 좋다고 한다. 슈테판 성당 앞에서 오페라 티켓 파는 청년들이 많다. 암표인지 몰라도 오늘 저녁에 "피가로의 결혼" 공연이 있다는데, 42유로라고 한다. 우리나라 티켓 가격에 비해 비싸진 않다. 베토벤 모차르트 브람스 같은 위대한 음악가들이 활동했던, 빈필이 있는 예술의 도시에서 오페라를 볼 수 있는 기회... 단체 여행이 아니었다면 이런 호사도 누릴 수 있었겠지만 아쉬운 마음으로  다음을 기대하며 발길을 돌린다.


흐린 겨울의 쉔부른 궁전

빈 시내 풍경

차창밖으로 본 비엔나 시내 풍경


전형적인 유럽인의 모습은 "게르만 민족"이라는 S가이드의 해박한 역사 지식을 들으며 휴게소에서 잠깐 쉬고, 잘츠캄머굿에서 찍은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면서 간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내 가방은 몇 개나 될까… 얼마나 많은 욕심의 잔재물들이 여기저기 늘어져있는 것을 알기에, 여행할 때마다 비워야 한다고 하면서도 돌아오면 못 버린다. 온전히 버려야 함을 배우는 것이 여행길이다. 한쪽 문이 닫혀야 다른 쪽 문이 열리는 법이다. 새로운 길로 가기 위해서 먼저 버려야 한다. 오스트리아를 지나 슬로바키아로 가고 있다. 슬로바키아를 지나 크로아티아로 가기 위해서 버스는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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