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pera Aug 01. 2021

스마트폰으로 쓴 동유럽 기행기 1

출발,체코 비행기 안에서


2016년 12월 크리스 마켓으로 분주한 동유럽을 여행했다. 가는 곳곳 느꼈던 즐거운 감동을 갤럭시 노트 1로 기록했고, 2021년 7월 다시 정리하여 글로 쓴다. 한 달 내내 아니, 근 두 달 동안 기다리던 비가 쏟아진다. 부엌 창문 쪽 지붕에서 내리는 낙숫물은 양동이로 쏟아붓는 것 같다. 반가운 비가 너무 갑자기 많이 쏟아져 폭우가 되는 건 아닌지 염려가 될 정도로 쏟아진다. 집안의 후덥지근한 열기나 빼갔으면 좋으련만 비가 그쳐도 폭염은 계속될 것 같다니, 5년 전 겨울의 여행기를 정리하면서 기억의 시원함으로라도 대신해 봐야겠다. 쏟아지는 비 사진을 다시 찍으려니, 어느새 비는 부드러워져 있다. 이 못 말릴 날씨가 변덕 심한 사람들은 저리 가라다. 그래도 타들어가던 마당의 초목들에게 냉수마찰이라도 시킨 것 같아 마음이 좋다.   

2021.08.01. 동유럽 기행기를 시작하면서...



2016.12.09. 

커다란 눈으로 오늘도 어디 가냐는 듯 쳐다보는 승리와 여전히 아쉬워서 끙끙대는 샐리를 뒤로하고 8시에 집을 나왔다. 감기 기운이 며칠째 계속된다. 목이 싸해서 염려가 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나섰다. 10시 조금 넘어 공항에 도착하니 S가이드는 벌써 나왔다. 9일 동안 함께 지내게 될 룸메이트다. 단체로 좌석을 끓어야 한다고 해서 여권 주고 스타벅스커피 한잔 선물한다. "열흘 동안 잘 지내봅시다" 홀스와 껌을 사고 옆에 앉은 가족은 두 자녀와 부부가 가는 것 같았다. 가족이 함께 여행 다니는 것이 참 보기 좋다.


해외로 나갈 때도 현금은 많이 가지고 가지 않는 편이라 유로화 약간과 유로화를 쓰지 않는 나라, 체코( 1 코루나= 47원), 크로아티아(1쿠나=190원) 돈을 조금씩 환전한다. 더 쓸 일이 있으면 카드를 쓰면 된다. 뭐 특별히 쇼핑할 것도 없으니, 그때그때 먹고 싶은 것 사 먹고 비상금으로 쓸 정도면 된다.


불경기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로 나가는 사람은 많다.  "미국이나 영국 사람들 중에 죽을 때까지 자기 나라를 벗어나 보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 줄 아느냐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다"던, 지인의 얘기가 생각난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노래처럼 문화 영향도 있을까?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래지향적"이라 현재보다는 미래를 위해 죽어라 일하는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돌아보면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하며, 인생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요즘 사람들이다. 있던 없던, 추려서 가든 간에 여행을 떠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단지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폭넓게 보고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세상도 간접 경험한다는 뜻에서 말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이래서 카피라이터에게 "반짝이는 시사"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오후 1시 50분 체코항공 기내 탑승 시작 2, 4, 2 열 비행기다. 장거리 치고는 작은 비행기긴 하지만 만석이 아니라 여유가 있다. 가족들과 흩어졌던 사람들은 자리를 모여 와 함께 앉았다. 우리 일행은 17명이다. 좋은 동행이 되길 바란다. 출발할 땐 언제나 들뜬다. 나이가 들수록 그 들뜸도 약간씩 가라앉는 듯해 일부러라도 들뜬 기분을 잡는다. 기분 좋고 행복하게 다녀오고 싶다. (지금 보니, 체코항공이 2021.03.21 파산했다는 기사가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글로벌 항공산업 위기로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되었다는 얘기다. 코로나가 미치는 영향을 여행기를 쓰면서도 체감한다. 결국은 코로나를 이겨내겠지만, 코로나로 인한 상처와 복구를 위한 여러 분야에서의 노력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요구될까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좀 전에 가이드 S 선생과 얘기했는데, 두브로브니크가 정말 아름답다고 한다. 처음에 계획했던 것이 무산돼, 오히려 두브로브니크 하루 추가된 것이 다행이다 싶다. 중국 하늘이 혼잡하다고 30분이나 지체되고 있다. 인터넷을 보니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 탄핵소추 투표 10분 전의 혼란한 상황이다. 45분 지나서 드디어 이륙한다. 세상이 하나로 연결되다 보니, 하늘길도 러시아워가 생기는 것 아닌가 싶다. 비행기가 작아서 좀 흔들린다. 이제 11시간을 날아가야 한다. 기내식을 먹고 이번 여행은 영화나 실컷 보자는 마음으로 편하게 갈 요량이다.


여행할 때 신세대(?) 답게 비행기, 기내식 등의 사진도 잘 찍어두면 이럴 때 요령껏 써먹을 수 있을 텐데, 이번 여행에선 기내 사진을 찍어둔 것이 없었다. 서양사람들은 마음이 가는 대로 신속하게 행동한다. 질질 끌지 않고 벨트 사인이 꺼지자마자 빈자리들을 찾아 이동한다. 나도 제일 뒤쪽 두 자리 남은 곳으로 왔다. 어떤 사람들은 네 자리를 펴고 잠도 잔다. 잠을 푹 자 둬야 편하게 다니긴 할 텐데.. 하기사 동유럽여행도 거의 버스여행이라니 차에서도 잘 시간은 많을 것이다. 창문을 열었다. 석양의 노을이 아주 진홍색이다. 여기선 이렇게 지고 있지만, 반대편에선 떠오르고 있겠지. 뜨는 곳에서나 지는 곳에서나 모두 강렬한 제 빛을 품어낸다. 자신이 지는 쪽인지 떠오르는 쪽인지 상관하지 않고, 제 모습을 한껏 드러낸다. 인위적이지 않은 곳에 정열은 더 불타오르는 법이다.


여러 영화를 뒤적거리다 "플로렌스 (Florence Foster Jenkins)"를 고른다. 좋아하는 배우 메릴 스트립과 휴 그랜트가 출연진이라 보고 싶었다. 사상 최악의 소프라노로 불리는 "플로렌스 포스트 젠킨스"의 자전적 영화다. 플로렌스 부인(메릴 스트립)이 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마다 관객들은 모두 귀를 닫고 있지만, 자신은 최고의 열정으로 부른다. "이 맛으로 사는 거지요" 메릴 스트립의 연기도 휴 그랜트의 연기도 일품이다. 이 저녁의 석양과 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까.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중의 유명한 아리아 "여보세요 후작님"을 너무 열정적으로 부른 후, 거의 실신상태가 되어 의사에게 진단을 받는다. 알고 보니 플로렌스 부인은 첫 남편에게서 매독이 걸려 몸이 망가져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근근히 버티며 살고 있었다. 누군가, 그 비결이 뭐냐고 젊은 남편(휴 그랜트)에게 물으니 "음악"이라고 한다. 영화와 창밖의 분위기가 묘하게 잘 어울린다. 지금 우리 비행기는 어느 상공을 날고 있는 것일까. 점점 더 검어지는 하늘을 보고 있다. 밤으로 간다. 저너머엔 아침으로 가고 있겠지.


"50년 동안 싸우고 지켜내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매 순간 두려움에 떨었지만, 죽음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싶은 열망으로 버틴 것이다. 플로랜스는 카네기홀에서 노래하는 게 꿈이다. 연주하다 쓰러져도 행복하겠다고 했다. 음악을 사랑하니까, 조롱 따위는 상관없다는 거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카네기홀에 서게 되는 플로렌스 부인. 그의 유명한 대사, "내게 노래를 못한다고는 해도 안 했다고는 못하죠 (People may say I couldn't sing, but no one can ever say I didn't sing) 이게 명언이다. 


영화를 광고한 포스터에 크게 쓰여 있는 글 "1%의 재능과 99%의 자신감으로 카네기홀에 서다"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딨어! " 좌절하고 싶은 현대인들에게 도전의 마인드를 부추겨주는 멘트로 쓰였다. 플로렌스 부인은 카네기홀 연주 며칠 후, 사랑하는 남편의 품 안에서 행복하게 세상을 떠난다. 자신만의 길을 간다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힘든 길이다. 힘든 길이기에 성취했을 때의 보람도 더 큰 것 아닐까. "성취의 대가"가 아니라, "성취의 과정"이 중요함을 마음에 남긴다.


밤이 찾아오는 이 시점, 아니 밤으로 가는 시점이라 해야 맞을까. 주는 대로 받아먹다 보니 속은 더부룩한데 잠은 오지 않는다. 차창을 바라보니 뜬금없이 서울로 이사 오던 어릴 때가 생각이 난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인생, 그런 건가 보다. 많은 추억과 현실들이 공기 속에 녹아있다. 내 것만이 아니라 모두의 것들이 함께 모여 숨 쉬는 공기가 된다. 대기가 된다. 저기 노을에도 있고 창밖의 성에에도 있다. 창밖의 밤은 검은색과 붉은색과 흰색과 파란색의 조화를 업고 찾아왔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별이 하나 떠 있다. 이 장관을 인간이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이번 여행도 오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운 좋게 날짜를 맞췄다. "실패해도 하지 않는 것보단 하는 것이 낫다"는 말을 실감한다.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보리라.


아이패드로 스크랩해둔 기사들을 뒤적거리다, 어느 신문사 기사를 읽는다. 트럼프가 당선되고 나니 욕하던 사람들조차 당선된 긍정적 이유를 분석하느라 난리다. 

1. 미디어리서치를 맹신하지 말라 

2. 혜택에 중점을 두라 (트럼프는 명확하게 혜택을 제시했고 ( make great America again! ) 

   힐러리는 트럼프 비방에만 앞섰고 "오바마 정책을 이어 가겠다는 차이 없는 비전을 제시했고 트럼프는 

   사람들이 얻게 될 혜택에 우선 한다는 것 )  

3. 가치의 힘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말 것 (가치는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다는.) 

4. 메시지는 간결해야 한다. (트럼프는 간결하게 말했다고. 결국은 이겨야 인정받는다는 것! 이겼으니, 

   그 모든 언행이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가치도 부여되는 게 현실이다.)


이미 트럼프는 야인이 되어있는 지금,  이 글을 쓴 사람은 분명 또 다르게 적절한 평가를 할 것이다. 그것이 평하는 사람의 일이고, 어떤 경우라도 필요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 사람들의 일이니까... 표리부동한 인간사(人間事)엔 영원한 승자(勝者)도 패자(敗者)도 없다는 것은 오래된 진리 아닌가. 웅켜쥐고 놓지 않으면 영원히 내 것인 것 마냥 착각하고 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주어진 것의 소중함에 감사해야 한다고, 창밖의 하늘은 말하고 있는데 말이다. 별 하나는 계속 떠있다. 머나먼 인생길을 인도해주는 가이드처럼...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별을 보고 수천 년을 이어 왔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힘이 될까 싶다.


평소 많은 시간 들여 보지 못하는 영화들을 여행하는 동안이라도 볼 수 있어 좋다. 영화를 두어 편 봤지만, 잠도 오지 않고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멀고 먼 비행길이긴 하다. 이제 자도록 노력해 보자.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오래된 체코항공의 파산신청...


차창에서 본 일출과 일몰




매거진의 이전글 함부르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